기시다, 협력 구상 내놨지만…과거사는 못 넘었다
9월 말 퇴임하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사진) 일본 총리가 지난 6~7일 임기 중 마지막 방한에서 “다음 총리가 누가 되든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 다양한 협력 구상을 공개했다.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를 체결해 제3국에서 자국민을 긴급 대피할 시 협력하기로 했고, 양국 국민이 상대국을 방문할 때 자국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미리 하는 제도 도입도 적극 논의하기로 했다. 정부 소식통은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관계 개선의 혜택을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하나씩 현실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일본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재확인하거나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가슴 아프다”고 했던 지난해 5월 개인적 소회를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또 1년 반 만에 판결금 지급 재원 고갈 사태를 맞고 있는 강제징용 제3자 변제와 관련한 일본의 협조나 사도광산 문제는 회담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조치를 취한 건 기시다 총리 방한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가 담긴 자료 19건을 뒤늦게 전달한 게 전부였다. ‘고별 방한’에서 불편한 이슈는 피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연유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시다 총리는 차기 정부에서도 원만한 한·일 관계가 지속하기를 바란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핵심 갈등 사안을 피하기만 하는 건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 방안을 모색하고 관련 대화를 지속적으로 타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도 향후 한·일 관계의 위험 요소로 역사 문제를 꼽았다. 한국 내 정치 상황에 따라 한·일 관계가 윤석열 정부의 ‘성과’가 아닌 ‘약점’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는 이번에 양국 정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건 “야당의 공격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한국 측 우려에 따른 것”이라는 보도했다. 요미우리도 “윤석열 정부가 ‘매국 정부’라는 야당의 비판을 받는 점은 한·일 관계의 위기 요소”라며 “한국은 일본의 새 총리가 한국과의 외교에서 어떤 자세를 보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박현주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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