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살을 막으려 할까요?

박성현 당신의숲정신건강의학과 부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24. 9. 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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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선생님, 제가 왜 죽으면 안 되나요?" 진료실에서 이 질문은 언제나 가슴을 철렁하게 합니다. 그건 지금 내 앞에 있는 누군가가 치명적인 '존재론적 고민'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삶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말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지만,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위대한 철학자조차 고심하게 만든 질문 앞에서 정신과 의사들은 너무나 초라해집니다.

그저 어떤 대답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고민할 뿐이지요. 이럴 땐 신이 주신 목숨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고 근엄하게 꾸짖을 수 있던 몇 백년 전 사제들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파편화된 세상에서 자살 역시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는 주장에 맞서는 것은 역시 한낱 개인일 뿐인 의사들에게도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만약 자살이 단순한 '선택'이라 한다면 의사가 감히 그것을 막아도 되는 자격이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자살을 막기 위해 관련 보도 내용을 규제하거나 자살 위험성이 높은 개인을 입원시키는 등의 다양한 일을 합니다. 이런 조치들은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화하기 위해 적절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심지어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이 해외 몇몇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의사조력자살은 회복의 여지가 없는 말기 환자들이 치사량의 약물 투여 등 의료진 도움을 통해 자살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의사가 자살을 도와주게 되는 셈입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자살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윤리학자들은 먼저 생명 존중의 의무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생명을 가진 것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해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신고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이런 의무가 좀 더 강하게 적용됩니다. 심지어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비밀 보장의 의무조차 잠시 예외가 될 수 있지요. 미국 정신의학회를 포함한 다양한 단체의 윤리 규정에서는 자살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경우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보호자에게 경고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서 존중하려면 그 선택이 온전한 판단력을 갖춘 상태에서 이뤄지는 게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살이 평소의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만취한 상태에서 하는 결정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자살 시도가 정신질환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누군가 자살을 결정할 때 그것이 정말로 자율적인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살 사망자들의 삶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유를 밝혀내는 작업을 '심리부검'이라 합니다. 심리부검에서는 사망자의 행적 추적, 주변인 면담, 의무기록 및 수사기록 검토 등 다각도 분석을 통해 죽음에 의도성이 있는지, 어떤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정하게 됩니다. 1950년대 미국의 특정 지역에서 한 해 동안 발생한 모든 자살 사망자를 대상으로 최초의 심리부검 연구가 수행됐습니다. 이 연구에서 134명의 자살자 중 약 90%가 자살 시점에 우울증이나 알코올 사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을 겪고 있던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유사한 다른 연구들에서도 이 비율은 공통적으로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자살은 정신질환과 연관돼 있습니다. 정신질환은 생각이나 감정, 행동에 직접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런 왜곡은 특히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같은 중증 정신질환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급성기 환자들은 갑자기 대통령이 되겠다며 선거에 출마하거나 사악한 비밀 조직의 미행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우울증과 같이 좀 더 흔한 질환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울증의 핵심 요소는 부정적 인지왜곡으로, 자신이나 주변 환경, 미래에 대해 별다른 근거 없이 실제보다 더 나쁘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의 늪에서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의 고통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는데 치료를 통해 나아지면 사실은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우울증으로 인한 생각의 왜곡이 바로잡히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울증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은 환자 스스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이 먼저 정신질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합니다. 누구에게나 온전한 상태에서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죽겠다는 마음의 반대편에는 종종 다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종종 죽음 그 자체를 좇는다기보다는 지금의 고통을 끝내고 싶어서, 가까운 누군가가 나의 고통을 알아주었으면 해서, 현실적인 문제가 막막하게 느껴져서 등 숨은 이유가 많습니다. 물론 이것이 그저 '자살하는 척' '쇼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의식하는 것만이 마음의 전부가 아니고, 때로는 주의를 기울여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마음이 너무 지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은 누군가의 죽겠다는 마음을 바로 수긍하기에 앞서 도움을 청하는 다른 목소리가 있는지를 주의 깊게 듣고자 합니다.

물론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죽음을 바라는 누군가에게 정신질환이나 다른 의도가 있는지 여부를 100%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자살하려는 누군가가 완전히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결정을 한 것이라면, 막으려 드는 것은 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니라면?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이 회복돼 죽음을 대신할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영원히 사라져 버립니다. 어느 쪽도 확신을 갖고 택할 수 없지만, 자살의 결과는 절대 돌이킬 수 없다는 점, 자살 시도자에서 정신질환 유병률이 높다는 점, 망자의 주변인들이 받을 추가적인 고통 등을 고려하면, 자살 시도에 대해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개입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결론입니다.

정리하면, 정신과 의사들은 누군가가 자살이라는 결론에 이르러도 그의 자율성과 의도가 진정으로 반영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살 시도를 멈추도록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죽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의사들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우리는 정신의학 전문가로서 정신질환으로 인한 고통이 때로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적절한 도움이 있다면 빠져나오는 게 가능하다는 점을 추가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마음을 동정이나 연민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아래 시인의 말처럼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사랑의 발명 - 이영광>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진료실에서 반복해 결심합니다. 당신이 산비탈로 떠나지 않도록 곁에 있겠다고, 필요할 때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하고 또 재발명해 낼 것이라고. 이런 사랑의 마음을 담아 대한정신건강재단과 함께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9월 '자살 예방의 달'을 맞아 자살 예방을 위한 칼럼을 한 주에 한 건씩 연재할 예정입니다.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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