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CPU 박사’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 CPU·GPU 넘어 ‘NPU 시대’ 도전장 [CEO LOUNGE]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9.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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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과/ MIT 전기공학·컴퓨터과학부 박사/ 인텔(Intel Labs)/ 스페이스X/ 모건스탠리/ 리벨리온 대표이사(현) [일러스트 : 강유나]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이 곧 출범한다. AI 반도체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SK텔레콤 AI 반도체 계열사 사피온코리아 간 합병 본계약 체결로 통합법인 출범이 임박했다. 지난 6월 두 회사 합병이 결정된 이후 합병비율 등을 놓고 난항을 겪었으나 반도체 초격차 속도전에서 밀려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통합 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리벨리온이 주력하는 AI 반도체는 신경망처리장치(NPU)다. NPU는 AI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딥러닝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다. NPU는 범용성은 다소 부족하지만 딥러닝 연산에 특화해 GPU보다 빠른 연산 작업이 가능하다. 전력 소모를 줄여 전성비도 개선할 수 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40)가 통합법인 경영을 맡아 속도감 있는 의사 결정과 기술 개발을 주도한다.

최근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는 합병 본계약을 체결했다. 재무적투자자(FI) 사이에 논란이 일었던 합병비율은 2.4(리벨리온):1(사피온)로 결정됐다.

연내 통합법인 출범이 목표로, 존속법인은 사피온코리아다. 통합법인 경영은 리벨리온이 담당하고 대표 또한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맡는다. 스타트업 주도로 시장 대응력과 민첩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피온이 존속법인으로 남지만 경영과 연구개발을 리벨리온에서 총괄하는 것은 통상적인 합병 사례에서 접하기 힘든 특이한 구조다.

사피온을 존속법인으로 둔 것은 세금 문제를 고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사피온은 일종의 ‘미니 지주사’ 체제다. 사피온 미국법인-사피온코리아로 이어지며 사피온코리아는 미국법인 100% 자회사다. 이런 구조 아래 사피온코리아가 소멸법인이 되면 사피온 미국법인은 소멸 후 발생하는 자본 이득에 대한 세금을 미국 과세당국에 내야 한다. 스타트업 특성상 자기자본 기반이 취약하므로, 사피온이 소멸법인이 되면 주요 출자자인 SK텔레콤 등이 세금 부담을 떠안을 수 있었다.

박성현 대표를 비롯해 기존 리벨리온 경영진은 콜옵션 등으로 통합법인 주요 주주 지위를 보장받는다. 소유 구조 재편으로 리벨리온 경영진에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를 보장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SK그룹이 합병법인 지분 약 6%를 양보한 것에는 공정거래법상 불가피한 속사정도 고려됐을 것으로 시장은 해석한다. 공정거래법상 지분 구조와 이사회 구조 등에 비춰 SK그룹이 리벨리온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통합법인은 SK그룹 계열사 편입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내부거래 제한과 까다로운 공시 의무 등 의사 결정 관련 제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통합법인 주요 주주 지위 보장

빠른 연산 특화 NPU 개발 강점

박성현 대표 이력은 화려하다. 1984년생으로 경남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한 뒤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과 02학번으로 입학했다. 학과 수석으로 카이스트를 졸업했고 미국 MIT 전기공학·컴퓨터과학부에서 5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삼성 장학생 출신으로 박사 과정 내내 수혜를 받았다. 박사 학위는 CPU 전공으로 마쳤다. 박사 학위 논문은 ‘저전력이면서도 고성능을 낼 수 있는 네트워크온칩(NoC) 설계(Towards Low-Power yet High-Performance Networks-on-Chip)’에 관해 썼다.

구체적으로는 ‘매니코어(Manycore) 칩에서 저전력이지만 고성능을 낼 수 있는 NoC 설계’에 관해 쓴 논문이다. ‘코어’는 작업 처리 단위로 보면 된다. 매니코어는 싱글-멀티코어보다 진화된 개념으로, 독립적인 프로세서 코어가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에 달하는 칩이다. 코어가 많을수록 작업 처리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로, 매니코어 칩은 AI 같은 고성능 컴퓨팅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NoC는 컴퓨터가 네트워크로 인터넷에 연결돼 있듯 칩 내 모듈 간 연결에도 네트워크 개념을 도입한 기술이다. 싱글-멀티-매니코어로 진화 과정에서 칩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각광받는다. NoC는 코어 수가 증가해도 ‘라우터’와 ‘스위치’만 추가하면 쉽게 확장할 수 있다.

‘고성능 CPU 박사’ 타이틀을 단 그는 인텔 랩스(Intel Labs), 스페이스X를 거쳐 모건스탠리에서 경력을 쌓았다. 인텔 랩스는 신기술과 고성능 컴퓨팅 형태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글로벌 연구 조직이다. 상업적 결과보단 선행 연구와 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조직으로 알려진다. 스페이스X에서도 인공위성용 칩 설계자로 경력을 닦았다.

모건스탠리에서는 금융 반도체 담당 임원을 지냈다. 그는 당시 초단타 매매(High Frequency Trading)에 특화한 알고리즘 설계와 관련 AI 칩 개발을 주도했다. HFT라고도 불리는 초단타 매매에서는 시장 정보를 경쟁자보다 최대한 빨리 확보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게 관건이다. 각국 거래소 위치가 모두 달라 시장 정보 접근성에 매우 근소한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 틈을 타 차익 거래를 노리는 게 HFT 매매다. 당시 그는 HFT 거래 알고리즘 설계,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개발 등을 주도했다. 이름도 생소한 FPGA 칩은 개발자가 설계를 변경할 수 있는 반도체다. 용도에 맞게 회로를 다시 새겨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간 단계 칩으로 보면 된다.

창업자로서 위험 감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그의 군 입대다. 박 대표는 통상적인 카이스트 학생처럼 산업계 취업-병역특례라는 예측 가능한 ‘선형궤적(Linear Track)’을 밟지 않았다. 카이스트 학부 3학년을 마치고 육군 입대를 한 박 대표는 돌연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자원했다.

박 대표는 “당시 여느 카이스트 학생과 다르게 현역 군 입대를 했고 여느 군인과 다르게 아프간 파병에 지원했던 경험이 창업 과정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고 돌아봤다.

우여곡절 끝에 합병 ‘9부 능선’을 넘었지만 그가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은 주주 구성은 물론 칩 공급망 등에서 차이가 크다. 합병 이후 주요 주주로 남을 KT와 SK텔레콤은 통신업계 숙적이다. 향후 사내이사 등 이사회 구성과 운영에서 두 진영 간 신경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주요 주주 간 이해관계와 사업 방향 조율은 그가 직면할 주요 과제 중 하나다.

AI 칩 공급망 재편도 관건이다. 리벨리온은 삼성전자와 협업하며 삼성 파운드리를 기반으로 차세대 칩을 개발해왔다. 반면, 파운드리사업부가 없는 SK하이닉스는 삼성에 맞서 대만 TSMC와 손잡고 전선을 구축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투트랙’ 등 여러 시나리오가 가능할 수 있지만, 종국에는 리벨리온이 삼성 파운드리에서 이탈해 TSMC에 합류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리벨리온이 스타트업일 때는 TSMC를 상대로 협상력이 거의 없었지만, SK하이닉스가 주요 주주로 합류한 만큼 앞으로 공급망 구성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투자받은 돈의 가치를 숫자로 증명해내는 것도 박 대표에게 주어진 숙제다. 리벨리온은 스타트업 고속 성장 모형을 뜻하는 ‘J커브’ 초입에 놓였다는 게 VC업계 시각이다. 기업공개(IPO) 작업도 차근차근 진행한다. 리벨리온은 지난 7월 상장 대표 주관사로 삼성증권, 공동 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을 선정했다. 박 대표는 “본 게임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치열한 ‘AI 반도체 전쟁’ 속에서 글로벌 AI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서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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