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과 장혜영, '딥페이크 무관심'을 찔렀다
[복건우, 남소연 기자]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 남소연 |
8월 26일 새벽 2시 40분 카카오톡 대화방에 한 여학생이 보내온 문자가 찍혔다.
"딥페이크(불법합성물) 피해 학교 지도에 저희 대학도 올라와 있어요. 어떡해요."
박지현(28·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분 뒤 여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특정 학번 학생들이 '집단 피해자'로 분류돼 있다며 그 학생은 엉엉 울었다. 정치인들이 여성들의 공포를 '이슈'에서 제외하고 있을 때 여성들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떠다니는 '피해 학교 지도'를 자발적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일부. |
ⓒ 페이스북 |
▲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월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일부. |
ⓒ 페이스북 |
장혜영(37·전 정의당 의원)은 그날 페이스북을 뒤지다가 박지현이 올린 글을 읽었다. 거대 양당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박지현의 글에서 발견됐다. "정부는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장혜영도 여성들의 목소리에 문장을 보태기로 했다. "권력을 분점하는 국회 양당의 공식 입장"을 촉구하기 위해 그는 국회 밖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무작위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장혜영은 국가의 특별수사를 촉구하는 정의당 논평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리고 피해자 목소리를 경청하는 정치가 시급하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디지털 기술 발전과 결합한 성폭력 착취 구조로부터 여성들이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 원내외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오른쪽)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 남소연 |
그러면서 "성범죄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을 결정하고 보여주는 것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며 "당리당략을 넘어 공동 대응이 필요하고 상임위를 넘어 국회 차원의 특위도 필요하다. 디지털성폭력이 대한민국에서 용납되지 않도록 모든 정치인이 합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싸워야지 바뀌는 여성들의 현실"과 "성폭력을 박멸하기 위한 정치"를 말할 때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 남소연 |
"자라나는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성폭력에서 안전한 공간이 대한민국에 없다고 느끼고 있어요. 더는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사회를 믿을 수 없다고 느끼고 있어요. 이전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신뢰의 붕괴예요."
▲ 딥페이크 피해학교 지도 |
ⓒ https://deepfakemap.xyz/ |
이번엔 박지현의 말을 장혜영이 받았다.
"이준석 의원은 딥페이크를 플랫폼의 문제로만 규정하고 윤리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어요. 사실 이 의원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딥페이크 사태가 엄중할수록 개혁신당과 이 의원이 져야 하는 정치적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큰 위협이 아니라고 축소해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거죠."
국회가 성폭력에 주목하지 않고 정치가 약속을 배반할 때 디지털성범죄는 '텔레그램'에서 사라지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N번방 사태로 여론이 들끓었던 2020년 정치에 입문한 장혜영은 지금의 상황이 "처절한 정치 실패"라고 진단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우리가 처음 다뤄보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4년 전 N번방 방지법을 입법하고 또다시 이런 국면을 마주하게 된 거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그 시기 정치를 했던 모두의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자며 텔레그램 핫라인으로 딥페이크를 자율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박지현은 이 '자율 규제'의 문제점을 분명히 꼬집었다.
▲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왼쪽)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대화하고 있다. |
ⓒ 남소연 |
"대통령의 언어에 진정성이 없어요.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말하고 법무부 TF를 해산했으면서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건 앞뒤가 안 맞거든요. 일말의 진정성이라도 있으려면 여성가족부 폐지를 철회하고 여성들의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정책적인 행보가 없다면 이번 국면이 지나고 반여성 정치로 회귀될 게 뻔해요."
국회도 뒤늦게 딥페이크 관련 대책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지난 8월 말부터 발의된 딥페이크 관련 법 개정안은 34건이다. 대부분이 성폭력처벌법(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소지·구입·저장·시청한 사람도 처벌토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처벌 범위를 넓히고 수위를 높이는 것 말고도 장혜영은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초부터 두 달간 나온 딥페이크 관련 법안들을 보면 교육 관련 법이 하나도 없어요. 딥페이크 가해자는 대부분 청소년이에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했는지, 대한민국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데 왜 이토록 실패했는지 이제는 교육이 답을 해야 합니다."
▲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왼쪽부터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원하영 고대문화 편집위원, 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수진 초등성평등교사모임 아웃박스 교사,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 |
ⓒ 복건우 |
이날 토론회 패널로 참석하거나 글과 영상을 보내온 여성들의 말은 활활 타올랐다. 3시간 가까운 토론이 이어졌다(온오프라인 270여 명 참석). 디지털성폭력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철저히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온라인의 특성상 온전한 피해 회복이 어렵다고, 정부가 여성들의 피해 사실을 부정해선 안 된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었다.
"사건 발생 4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들 속에 살아요."(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자)
"여성 예술인은 현대판 기생이라 불리며 온갖 성폭력을 감당해 왔어요."(손수현 배우)
"지난달 중학생 딸이 피해 학교 리스트를 거론하며 불안함을 호소했어요."(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
ⓒ 복건우 |
"정의당 장혜영과 민주당 박지현이 이렇게 같이 목소리를 내는 건 당리당략을 넘어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저희는 국회 차원의 특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요. 현재 상임위 구조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법안들을 논의하기 위한 특위 말이에요. 적어도 이런 종류의 디지털성폭력이 대한민국에서 용납되어선 안 된다고 모든 정치인이 합심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장혜영이 박지현에게 말했다. "오늘 토론회 한 번으로 끝나선 안 돼." 토론회를 마친 박지현은 관객들에게 말했다. "오늘 자리가 결코 끝이 되어선 안 돼." 성폭력이 일상이 된 여성들과 그런 일상에 저항하는 여성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스스로와 다짐했다.
인터뷰와 토론회가 끝났다. 끝나도 끝나지 않았다. 국회 바깥 여성의 목소리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마라도 바다에 미역이 없다고? 지금 벌어지는 무서운 일들
- 영부인 마음 얻고, 남편 출세시킨 그 여성의 실체
- 집권 2년차에야 복지 꺼낸 김대중, 지금 그 리더십이 필요할 때
- 이사하면서 이 앱 덕에 백 만원 넘게 아꼈습니다
- 초고령사회 일본의 키오스크는 한국과 다르네요
- 가지 말릴 때 이것만큼은 꼭 조심하세요
- '일본에 살려 달라 않겠다'며 죽은 이 남자, 노래로 남다
- 1년 쉬어도 괜찮아... "확 달라진 아이들, 놀랍고 부러웠다"
- 의협 "의대증원, 26년까지 백지화하고 27년부터 논의해야"
- 은퇴 후, '두 놀이터'에서 신나게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