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광산 유가족, 외교부 접촉한 적 없어... 정부 대응 아쉬워"
[이영광 기자]
지난 7월 27일 일본의 최대 금광인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에 사도 광산 등재는 일본의 오랜 염원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사도 광산은 강제 동원의 역사가 서려 있는 만큼 반대도 많았기 때문에 '굴욕외교'란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지난 6일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거둔 성과와 미래 관계 발전 방향을 논의했지만, 이 자리에서도 '사도 광산' 언급은 없었다.
일본의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를 어떻게 봐야 할까. 마침 지난 3일 MBC에서 '사도 광산, 누가 역사를 지우려 하나' 편이 방송됐다. 이날 방송을 연출한 김보람 PD는 직접 사도 광산을 방문해 강제 동원 역사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고 대일 외교 문제를 짚었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4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김보람 PD와 만났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 MBC 의 한 장면 |
ⓒ MBC |
"해외 출장도 길게 다녀왔고, 국내 취재한 부분도 많았는데 못 담은 것들이 많아 아쉽습니다. 사도 광산 보도는 많이 나왔는데 우리에겐 낯선 곳이라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모습을 꼼꼼하게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 사도 광산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저도 사도 광산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거든요. 그래서 예전 뉴스들을 찬찬히 보며 협상의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니, 우리가 이렇게까지 양보하면서 진행할 일인가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제일 처음에 만난 분이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님이셨어요. 이슈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먼저 만나서 객관적으로 얘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취재원 중에서 정혜경 박사님의 자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도 광산에 대해서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깊이 있게 접근한 연구자세요. 그래서 그분이 쓰신 책부터 먼저 읽기 시작했고, 그다음 사도 광산과 관련된 지난 언론 보도들을 쭉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 사도 광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면요.
"사도 광산은 일본 최대의 금광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한때는 전 세계 금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지만, 우리에겐 아픈 역사의 현장이고요. 미쓰비시 광업이 태평양 전쟁 때 전쟁 물자용 광물을 캐려고 1500여 명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가서 일을 시켰던 곳이죠."
- 사도 광산이 왜 문화유산일까요.
"기술적인 부분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에도시대에 금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어떤 독자적인 기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라고 해서 등재를 했다고 들었어요. 우리에게는 어두운 역사의 유산이죠. 그런데 언제나 밝은 역사를 가진 곳만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예전에 나치의 집단 학살이 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도 가봤는데요, 거기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잖아요. '부(負)의 유산'도 역사니까 그걸 솔직하게 기록해서 후세에 이런 것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교훈을 남기는 것도 의미 있는 유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지금 사도 광산 같은 경우는 그런 게 아니죠. 어두운 역사를 교묘하게 가렸고, 사도 광산 본 유적지의 경우는 아예 현지서는 '사도 금산'이라고 부르는데, 정말로 금과 관련된 대표적인 관광지 느낌이었어요."
- 방송을 보니 등재를 에도시대로 한정했더라고요.
"에도시대만 한정해서 등재했다는 게 사실상 꼼수 등재라고 봐야 하는데요. 전체 역사 기간을 다 선정하면 당연히 한국의 반발이 있을 거니까 일제강점기를 제외한 거예요. 그렇다고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시기를 제한해서 등재 하는 게 굉장히 웃긴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유네스코에서도 에도 시대에 한정해서 등재 하더라도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는 권고를 내리거든요."
- 직접 사도 광산에 가보니 어땠나요.
"사실 많이 화가 났어요. 본 유적지엔 2개의 갱도가 있고, 하나는 에도시대 갱도 하나는 메이지 이후의 갱도로 조선인 강제 노동자가 일했던 걸로 추정되는 곳이었는데 너무 비교되는 느낌이었어요. 이를테면, 에도시대 갱도는 관광객이 조금 더 많았고, 작업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한 마네킹들도 잘 전시돼 있었어요.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일했던 메이지 이후의 도유갱도 같은 경우엔 마네킹이 딱 하나였어요."
▲ 김보람 MBC PD |
ⓒ 이영광 |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이라는 표현을 정확하게 안 썼고, '전체 역사'를 밝히겠다고만 했죠. 근데 그게 심지어 사도 광산 내부에는 없어요. 사도 광산에서 2km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 박물관이라고, 심지어 유네스코 역사 유적으로 지정된 공간 밖에 있는 곳이거든요. 거긴 렌터카가 없으면 가기도 힘들어요. 하루에 버스도 8개 정도 있는데 시간 맞추기도 엄청 어려워요."
- 아이카와 향토 박물관은요.
"일단 사람이 정말 없었어요. 외교부가 성과로 내세우는 게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실질적인 이행 조치를 선제적으로 끌어냈단 건데요. 그게 조선인 관련 역사적인 내용을 아이카와 향토 박물관에 전시했단 거예요. 그런데 전시 장소가 2층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3층 구석에 6평 남짓의 작은 방이에요. 실물 전시는 도시락통 하나고요. 나머지는 다 문서 복사본이고, 원본도 없어요."
- 조선인 비하하는 내용도 있다면서요.
"저는 그게 가장 화나고 충격적인 일이었어요. 전시실에 영어와 일본어가 병기된 설명들도 있었거든요. 가혹한 노동 환경을 전시하겠다고 약속했고, 그건 영어로 설명해 놓은 부분들도 있었는데 조선인 멸시 비하 발언들은 일본어로만 적혀 있었어요. 같이 간 통역가님이랑 같이 현장에서 고문서를 일일이 다 읽어보고 찾았어요. 조선인은 둔하고 기능이 떨어져서 갱내 업무에 적합하다, 불결한 악습을 고치기 힘들어 위생 관념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 옆에 가혹한 노동 환경을 전시해 놓으니까 마치 조선인들이 아둔하고 불결해서 저런 노동을 시킨 건가 이런 인상을 주는 비하 발언이 전시된 게 굉장히 불쾌했죠."
- 사도 광산에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게 드러난 건 1990년대인데 사도섬 주민들이 밝혀냈다던데 우리 정부는 몰랐던 건가요.
"그걸 맨 처음 알아낸 게 미쓰비시 담배 배급 명부에서 조선인 이름을 본, 사도섬에 살던 한 스님이셨대요. 뜻있는 사도 주민 몇 분들이 모여 알음알음 기록을 찾고, 사도 광산 강제노동 피해자 증언까지 들으려고 한국을 찾아오기도 하고, 대전일보 측에 요청해 생존자 관련 취재가 진행됐어요. 그러면서 90년대에 묻혀 있던 사도 광산 강제징용 노동자들 생존 증언도 들었더라고요."
- 이런 건 먼저 정부가 파악해야 할 것 같은데요.
"방송에도 나오지만, 유가족들에 대한 공식적인, 정식 조사가 안 돼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정확한 현황 조사도 안 돼 있고요. 저희가 방송에 아쉽게 못 쓴 내용이 유가족을 찾는 과정이었어요. 외교부도 유족 접촉한 적이 없다는 보도를 봤어요. 그런데 유가족 연락처를 구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팀 정재홍 작가님이 일본 역사학자 다케우치 야스토 선생님의 연구자료와 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사료 정리 집을 모두 보고 몇몇 주소를 찾아주셨어요. 그 몇 줄로 김지훈 PD가 무작정 면사무소 가서 이장님 수십 명 번호 받고 그랬죠. 그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사신 어르신 일일이 만나서 '이 마을에서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 다녀오신 분 누구냐, 자녀분 누구냐'라고 물어물어 취재한 거예요."
- 2년 전인 2022년에 사도 광산 문제가 떠올랐었잖아요. 당시 뭐라도 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요.
"일본이 등재 하겠다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 대응해야 하잖아요. 유가족이나 생존자 증언도 확보해야 했고요. 저희도 방송을 만들려면 유가족이나 생존자 증언이 필요한데 어디서도 현시점까지 정리된 '공식 조사 현황'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그냥 발로 뛰는 취재를 했는데 그걸 방송 분량 때문에 못 담아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작진이 발품 팔아 다 찾은 거예요."
- 강제 동원된 사람들은 임금을 제대로 못 받았잖아요. 그래서 국고로 편입된 게 당시 돈으로 23만 엔이라고 나오던데 지금 돈으로 얼마일까요.
"저희도 그게 궁금했는데 정확히 환산이 안 돼서 방송에 못 썼어요. 당연히 전문가들에 이 금액이 지금으로 따지면 얼마나 몇 배냐고 물어봤는데 잘 모르세요. 저희도 불친절하게 방송 만들지 않으니까 보통 '우리 돈으로 따지면 얼마입니다'라고 써야 하는데 아무도 정확히 확인을 못 해 주시더라고요."
- 일본이 2015년에 군함도를 유네스코 등재할 땐 강제 동원에 대해 인정했지만 사도 광산 때는 언급을 안 했던데요.
"취재하면서 전문가들에게 들었던 게 군함도 때는 모두 다 열심히 했다는 말이었어요. 의지의 문제도 있었다 생각하는데요. 저희 방송에 나왔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직접 만나서 '군함도 등재는 국가 간 불필요한 분열을 만드는 것'이라고 반대 의사를 전했고, 당시에 굉장히 열심히 외교전을 펼쳤대요. 그러나 사도 광산 때는 뉴스 보도로는 정부가 무슨 노력을 했는지가 명확히 보이진 않더라고요."
- 일본이 강제 동원을 인정하면 식민지의 불법성과 연결되니 안 하는 건가요.
"그런 부분도 있고요, 생존자나 유족들의 소송과 보상 문제도 의식했을 거고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공식적으로 얘기하는 용어는 Forced labor예요. '강제 노동'은 명백히 불법이거든요. 근데 그 단어를 일본이 쓰면 국가적으로 불법 저질렀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거니까 그 파장이 클 거고 일본은 절대 그 말을 양보할 수 없는 거예요. 또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이라서 표결권이 있었어요. 그리고 일본은 이미 군함도에서 역사를 부정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평판의 문제도 있었고. 우리가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끌고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았어요. 설령 표결로 가서 불가피하게 사도광산이 등재되더라도 우리 정부는 명확하게 '강제 노동을 명시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사를 반대표로 남길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었다면요.
"어쨌든 이 사도 광산 등재 문제라든지, 과거사 문제는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죠. 대한민국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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