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환자 못 받아 속타"…추석 앞 상황 더 나빠졌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A씨는 요즘 근무 때마다 “속이 탄다”고 한다. 119가 응급환자 이송이 가능한지 문의해도 받아줄 수 없는 경우가 점점 많아져서다. 응급실에서 급한 처치를 하더라도 수술 등 최종 치료가 가능한 배후 진료과에 여력이 안되면 환자를 수용하기 어렵다.
A 교수는 “당장 숨 넘어가는 사람이야 당연히 일단 받아 살리지만, 그 다음 진료가 안되는 경우가 많아서 환자를 받지 못할 때가 많다”며 “며칠 전 밤 장 파열로 출혈이 심한 채 실려온 환자도 마취과 당직 의사가 이미 다른 수술 중이어서 못 받을 뻔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일단 받아서 혼자 몇 시간을 매달려 환자를 살려 놓고 수술이 가능해진 뒤 수술실로 보냈지만 도저히 여력이 안돼 환자를 받지 못할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전공의 이탈 이후 응급실 의료진의 피로도가 높아진 가운데, 응급의료센터가 있는 전국 대형병원의 후속 진료 역량이 지난 일주일 사이 더 악화한 것으로 8일 나타났다.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중증·응급질환 진료 역량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라 우려를 더한다.
이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표출된 권역ㆍ지역응급의료센터 180곳의 후속진료 가능 여부를 분석한 결과, 27개 중증ㆍ응급질환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모두 88곳이었다. 지난달 29일만 해도 102곳이었는데, 일주일 사이 14곳이 줄었다. 전공의 집단사직 발생 이전인 평시(2월 첫째) 109곳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0%(21곳) 가까이 감소했다.
진료 가능 병원이 가장 크게 줄어든 분야는 성인 대상 기관지 응급내시경으로, 평시에는 109곳에서 진료 가능했지만, 현재(지난 5일 기준) 60곳에서만 가능하다. 45%나 감소한 것으로, 일주일 전 100곳과 비교해도 40% 급감한 것이다. 중증 화상의 경우 평시에는 44곳에서 치료할 수 있었으나, 지난달 29일 38곳으로 줄었고, 현재는 28곳에서만 가능하다. 안과 응급수술이 가능한 응급실도 평시 75곳에서 현재 47곳으로 줄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27종 중증ㆍ응급질환 중 다수는 환자 발생 빈도가 높지 않아 모든 응급의료기관에서 진료하기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며 “또한 진료 가능 여부에 가변성이 있어, 추세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6일 정오에는 평균 진료 가능 기관 수가 101개소 수준으로 (다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정부는 배후진료 문제를 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배후진료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대안을 모색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혼란 거듭하는 군의관 파견…‘징계 조치’ 논란에 “검토 안해”
정부는 응급실 인력난이 심해지자 군의관을 파견했지만, 이들의 진료 참여가 순조롭지 않다. 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실 상황이 어려운 대형병원 5곳(이대목동·강원대·세종충남대·충북대·아주대병원)에 지난 4일부터 군의관 총 15명이 투입됐다. 하지만 현재 이들 모두 기존 근무지로 복귀하거나 응급실이 아닌 곳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파견 군의관들은 익숙하지 않은 응급실 업무에 투입된 데 따른 의료 사고 부담 등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군의관·공중보건의사(공보의) 등의 파견인력 과실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이 2000만원까지 배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대체 인력(공보의·군의관)의 과실에 의해 배상 책임이 발생한 경우, 해당 의료기관에서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동의서를 65개 기관에서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지난 4월 제출했다”며 “병원의 의료사고 배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배상책임을 담보하는 단체보험에도 지난 6월 가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청구당 2억원까지 보상 가능하도록 계약을 완료했다”며 “파견인력 과실에 의해 배상책임이 발생한 경우 의료기관에서 자기 부담금 2000만원을 책임 부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군의관이 응급실 근무를 거부하는 데 대한 대책 중 하나로 “징계 조치를 국방부와 협의하겠다”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번복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복지부는 취재진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을 통해 이렇게 밝혔으나, 국방부는 “징계 조치 관련 복지부 요청을 받은 바 없으며, 징계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냈다.
이에 복지부는 다시 설명자료를 내고 “근무지 명령 위반에 따른 징계조치를 국방부와 협의하겠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파견 군의관의 의사와 의료기관 필요 등을 조율해 의료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 소통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복귀 전공의는 ‘수련 공백’ 3개월 면제
한편, 정부는 병원을 떠났다가 지난 8월까지 복귀한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추가 수련을 일부 면제해주기로 했다. 전공의들은 3~4년의 수련을 마쳐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데, 지난 2월 의대증원 발표 이후 근무지 이탈로 생긴 수련 공백기 일부를 사실상 없던 것으로 해주는 것이다. 정부는 이달 2~5일 이런 내용의 ‘전공의 수련특례 적용 기준안’을 공고하고 의견수렴을 실시했다.
공고된 안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복귀해 근무 중인 레지던트에 대해 추가 수련 3개월을 면제해주고, 인턴의 경우 수련 공백 기간 만큼 수련 기간을 단축해준다. 단 수련 기간이 단축돼도 ‘전공의 연차별 수련교과과정’ 상 핵심역량을 갖췄는지 여부를 판단해 수료 조치한다.
8월까지 복귀하지 않은 대신 9월 1일부터 시작된 하반기 모집에 응시한 전공의에 대해서는 내년 1월 실시되는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를 가능케 했다. 원래대로라면 9월에 수련을 재개한 경우 내년 8월 31일 수료 예정이지만, 당해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열어준 것이다. 복지부는 이런 수련특례 적용의 목적을 “수련 과정에 복귀한 전공의가 정상적으로 전문의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 수련 안정성을 유지하고 적정 의료인력을 수급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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