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서 행복해요... 탁월한 감독의 '모성 강조'가 아쉽다

최해린 2024. 9. 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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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

[최해린 기자]

팀 버튼 감독의 신작 <비틀쥬스 비틀쥬스>가 개봉했다. 국내에는 <유령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수입되었던 1988년 영화 <비틀쥬스>의 후속작으로, 위노나 라이더와 캐서린 오하라를 비롯한 원작의 주·조연들이 모두 귀환한 데다 <웬즈데이> 등으로 이름을 날린 신예 배우 제나 오르테가도 합세해 기대치를 높였다.

1편과 2편 사이 3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팀 버튼 감독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미학은 변하지 않았다. 버튼 감독과 오랜 세월 함께 작업해 온 작곡가 대니 엘프먼이 다시 한번 OST를 담당했고, 버튼 감독의 의상 세계를 오랫동안 맡아 온 콜린 애트우드도 의상 디자이너로 복귀했다.

전작의 아이콘이었던 '리디아(위노나 라이더 분)'가 사후세계로 건너간 자신의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 분)'을 찾기 위해 오래전 무찔렀던 악마 '비틀쥬스(마이클 키튼 분)'를 불러낸다는 스토리는 다소 난잡하지만 그만큼 즐겁게 전개된다. 여러모로 전작에 버금가는 작품이 탄생했다.

마냥 호평하기 어려운 건...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그런데도 본작을 마냥 호평할 수 없는 건 본작에서 주연급으로 비중이 상승한 캐릭터 '리디아'의 운용 방식 때문이다. 전작에서 새엄마와 아버지의 결합을 견디지 못하고 유령 부부 '바바라'와 '아담'을 통해 대안 가족을 형성한 리디아는 갑자기 혼외 관계에서 낳은 딸과 갈등을 겪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전작에서 나타난 '영매 능력'을 통해 전국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게 된 리디아는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겪고 딸 아스트리드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송 생활을 뒤로한다. 방송 자체가 리디아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의 음모라는 설정이 있긴 했지만, '커리어가 아닌 모성적 교감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케케묵은 주제를 식상하게 사용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처럼 여성 인물이 갑자기 '엄마'가 되어 후속작에 돌아오는 것은 단연 <비틀쥬스 비틀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의 '국민 드라마'라고 불리는 <닥터 후>는 사랑받던 캐릭터 '도나 노블'을 16년 만에 귀환시키는 과정에서 그에게 남편과 딸을 부여했고,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 인물의 대표 격이던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아 장군' 역시 32년 후 시리즈에 복귀하면서 내용상의 아들을 얻는다.

할리우드의 '엄마 만들기', 왜?
 드라마 <닥터 후>,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할리우드의 '엄마 만들기'가 여성 캐릭터를 소모적인 도구로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만들어진 속편에서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독립적인 여성들은 '갈등하는 엄마' 내지는 '뒤늦게 눈뜬 모성'이라는 캐릭터 특성으로 축약된다. 그렇게 묘사된 미디어 속 여성들이 '나이 든 여성은 엄마, 혹은 엄마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통념에 관성적으로 복무하게 되는 것은 덤이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를 위한 결정이 전부 퇴행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결혼과 출산 모두 현실 속 여성이 택할 수 있는 미래 중 하나이므로 미디어 속 여성 인물도 '엄마 만들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캐릭터성을 소거하지 않는다면 관객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닥터 후>의 도나는 본래 지닌 우주를 향한 모험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스타워즈>의 레아 장군은 그가 엄마이기 이전에 악의 세력에 맞서는 저항군의 수장이나른 걸 거듭 확인시켜 줬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갑자기 나타난 리디아의 캐릭터 변화가 아쉽고 달갑지 않은 이유다.

사실 팀 버튼 감독은 꾸준히 '대안 공동체' 내지는 '대안 가족'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전작 <비틀쥬스>는 유령(비혈연 관계)과 인간(혈연관계)이 함께 가정을 꾸리는 결말을 제시했고, <가위손>에서는 소외당한 사람이 공동체에 융화되는 모습을 그려내었으며,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별종' 아이들이 공존해 가는 이야기를 담대하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이번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도 리디아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긴 하나, 리디아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족적 삶으로 회귀한' 엔딩은 그러한 한 줌의 비정상성마저도 금세 잊히게 만든다.

화려하지만 안타까운 <비틀쥬스 비틀쥬스> 속 리디아의 귀환을 씁쓸한 마음으로 환영하며, 이다음에 돌아올 할리우드의 독립적이던 여성 캐릭터는 갑자기 '엄마'가 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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