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산악부 주장'에게 이런 모습이... 여행의 즐거움이란

신예진 2024. 9. 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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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바다를 여행하며 삶을 나눈 두 청춘의 이야기

[신예진 기자]

▲ 제아 언니와 함께 오른 북한산에서 이제아와 신예진(데이지)이 함께 보낸 대학 암벽등반 산악부. 주장이었던 제아 언니는 내게 강인한 정신력을 알려주었다.
ⓒ 신예진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든 법이야. 한계에 도전할 때의 순간에서 내가 끝이라고 규정해버리면, 내 한계를 규정해버리면 그 순간이 한계가 되는 거야. 몸이 부서질 듯해도 목표한 곳이 있다면, 가보는 거야."

대학교 신입생 시절 들어간 산악부에서 만난 주장, 제아언니가 내게 한 말이다. 암벽등반이 쉽지만은 않았던 산악부 생활 동안 언니는 내게 한계에 도전하는 자세를 알려주곤 했다. 이후 언니는 파키스탄 트랑고타워 원정길에 다녀오고, 나는 이집트에서 건너와 튀르키예에서 여름 끝자락을 함께 보냈다.

안탈리아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순간, 서로 후줄근해진 모습으로 껴안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 변하거나 똑같은 모습을 이야기하며 우린 12일간의 튀르키예 바다 여행을 시작했다. 매번 한국 산에서만 봐온 두 청춘이 튀르키예 바다를 여행하며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1. 안탈리아(Antalya) 바다에서 : 지난 여행의 짧은 소회

튀르키예 남서쪽 도시 안탈리아.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은 이곳은 '올드타운 비치(Old Town Beach)', '라라 비치(Lara Beach)', 와 '콘야알티 비치(Konyaaltı Beach)' 등 다양한 해변이 즐비하다. 모래바다, 자갈바다, 암석바다 각 바다가 가진 독특한 재미는 물론, 저 멀리 타우로스 산맥(Taurus Mountains)을 품은 해변 풍경은 바다와 산의 조화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 튀르키예 안탈리아 라라비치에서 제아언니와 함께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은 안탈리아는 ‘올드타운 비치(Old Town Beach)’, ‘라라 비치(Lara Beach)’, 와 ‘콘야알티 비치(Konyaaltı Beach)’ 등 다양한 해변이 즐비하다. 모래바다, 자갈바다, 암석바다 각 바다가 가진 독특한 재미는 물론, 저멀리 타우로스 산맥(Taurus Mountains)을 품은 해변 풍경은 바다와 산의 조화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진은 라라비치이다.
ⓒ 신예진
여름의 끝자락, 안탈리아를 강타한 더위에 지친 우리는 바다에 풍덩 빠지는 순간을 열망했다. 힘껏 몸을 바다에 맡기며 물장구를 치고, 그늘에 누워 파도 냄새를 맡는다. 제아 언니는 파키스탄 원정을 하며 만난 가이드 이야기를 했다.

"컴퓨터 공학 학사를 가진 가이드는 나랑 동갑인데 산악 가이드로 알바하고 있더라. 파키스탄에서는 컴퓨터 분야로 돈이 안 되기 때문이야."

나도 히말라야를 오르며 만난 가이드 이야기를 전했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던 히말라야 가이드 역시 컴퓨터 학위가 있지만, 산악 가이드로 돈을 벌고 있었다.

"한국은 컴퓨터 공학이 각광받는 직업인데, 국가에 따라 직업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달았어. 국가 경쟁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시 느끼네"

"그러게. 파키스탄에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소녀도 만났어. 한국이라면 웹툰 작가 등 여러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는 결혼하여 집안일을 하겠지."

능력을 뽐내는 것도 국가적 배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이어 나는 여행하며 느낀 무력감도 이야기했다. 그간의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며 마주한 불평등과 빈부격차에 느낀 회의감도 함께 말이다. 우린 안탈리아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결국,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거 같아. 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역할이지."

물속에 누워 부력을 침대 삼아 뭉게구름과 하늘을 바라봤다. 안탈리아의 푸른 바다를 철썩이는 파도처럼 내 몫을 다해 철썩이겠다고 다짐하며 우린 미소를 지었다.

#2. 페티예(Fethiye) 바다에서 : 여행하면서 건강해야 하는 이유

지중해와 에게해 접점에 있는 페티예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올루데니즈(Ölüdeniz)'가 있다. 고운 모래와 청명한 바다로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찾는 올루데니즈는 패러글라이딩, 카약, 서핑 등의 다양한 액티비티도 있다.

특히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청록과 푸른색 바다의 향연을 바라보며 하늘을 날았다. 벅차오른 마음으로 힘껏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 올루데니즈(Oludeniz)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올루데니즈(Oludeniz)’는 고운 모래와 청명한 바다로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찾는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청록과 푸른색 바다의 향연을 바라보며 하늘을 날았다. 벅차오른 마음으로 힘껏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짜릿한 경험이다.
ⓒ 신예진
패러글라이딩 이후 우린 곧바로 바다에 입수했다. 둥둥 물속에 떠 있으며 철썩이는 파도를 음미했다. 입수와 휴식을 반복한 뒤, 그늘을 등지고 앉아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언니는 입을 열었다.

"학창 시절,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자살했어."

처음 듣는 언니의 이야기에 화들짝 놀라니, 언니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이유를 몰랐고, 지금도 그 이유를 몰라. 갑작스레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언니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나는 그때 다짐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겠다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살아야겠다고. 누군가가 죽으면 그 주위 사람들이 정말 많은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겠다고 말이야.

예진아, 너는 여행하면서 건강해야 해. 너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네가 건강해야 해."
▲ 페티예 바다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페티예 바다에서 우린 함께 노을을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었다. "예진아, 너는 주위 사람들을 위해 안전해야 해." 언니는 내게 말했다. 자갈 바닥에 누워 일몰 오렌지빛의 잔향으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며 우린 파도 소리를 들었다. 안락하고, 편안함으로 가득한 순간이었다.
ⓒ 신예진
자신의 아픈 부분을 공유해주는 언니가 고마웠다. 우리는 함께 울었고, 이후 함께 웃었다. 어느덧 지는 노을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내려앉았다. 빨갛고 노랗게 바다를 그을리는 노을을 보며 아름다움에 젖는다.

"언니, 이 순간을 함께해줘서 고마워."

안락하고, 편안함으로 가득한 순간을 함께 음미한다. 누워 일몰 오렌지빛의 잔향으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며 우린 파도 소리를 들었다.

#3. 셀축(Selçuk) 바다의 일몰을 보며 : 여행을 사랑해

튀르키예 이즈미르주에 있는 셀축은 에게해(Aegean Sea)를 품고 있다. '체시메(Çeşme)'와 '알라차트(Alacati)' 해변은 투명한 물을 찾아 스노클링과 수영을 비롯해 서핑, 카약 등 활동도 있다. 나아가 고대 로마 시대 유적지인 에페소스(Ephesus)와 가까워 역사적 의미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푸른 바다에 몸을 맡기며 순간을 즐기면서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이유는 푸르른 에게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함께한 언니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에게해에 내려앉은 일몰을 바라보며 언니에게 말했다.
▲ 셀축 에게해의 일몰을 바라보며 튀르키예 이즈미르주에 있는 셀축은 에게해(Aegean Sea)를 품고 있다. 따뜻한 바다에 스며드는 일몰을 바라보며 추억을 남겼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이유는 푸르른 에게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함께한 언니 덕분이다.
ⓒ 신예진
"언니는 곧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시작을 하겠구나. 이게 참, 여행의 매력인 거 같아. 과거에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곳이 여행하고 난 뒤면 새로운 출발이 되잖아. 익숙한 곳을 낯설게 보게 만들고, 낯섦이라는 느낌을 통해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되니까.

하루하루가 변화하는 여행에서도 어느새 이 변화를 일상으로 느끼기도 해. 그런 일상을 나는 사랑하고 있어. 나는 이 순간이 참 좋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고, 짜증 나고 귀찮은 일들도 많은데, 그것마저도 나를 성장시키고 나아가게 하는 거 같아.

나는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이 성장을 사랑해. 이 여행을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해."

#4. 터키 이스탄불((Istanbul) 바다에서 : 상황을 맞이한 태도가 중요하지
▲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며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Bosporus Strait)과 마르마라해(Sea of Marmara) 사이에 있다.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항해하며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 유람선은 쉬지 않고 여행객을 싣고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넘나든다. 바다는 진한 남색으로 강렬하게 펼쳐져 있다.
ⓒ 신예진
보스포루스 해협(Bosporus Strait)과 마르마라해(Sea of Marmara) 사이에 있는 이스탄불.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항해하며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유람선은 쉬지 않고 여행객을 싣고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넘나든다. 진한 남색으로 강렬하게 펼쳐지는 바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항구의 위상을 보여준다. 바람을 만끽하며 유럽으로 건너가 활기 넘치는 이스탄불 거리를 거닌다. 언니는 문득 말했다.

"인생은 불공평해. 이처럼 어떤 국가에서 태어나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할 수 있는 게 달라지잖아."

파키스탄 원정하며 만난 이들을 언급하며 불공평한 인생을 이야기하는 언니에게 나는 내 생각을 밝혔다.

"인생은 공평해. 물론 국가로 인해 많은 부분이 달라지는 의견에는 동의해. 그렇지만, 우리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똑같이 주어지잖아.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있으니까."

언니는 나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태어나는 국가는 선택하지 못해도, 태어난 국가에서 어떻게 살지는 선택할 수 있으니. 그런 점에서 파키스탄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여. 한국은 지하철에 있으면 사람들이 다 죽은 거 같은데, 파키스탄은 그렇지 않잖아."
▲ 이스탄불 유람선 위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지나며 수많은 유람선과 선박이 보스포루르 해협을 지나간다. 배의 고동소리와 북적이는 인파소리를 배경으로 우린 이야기 나눈다. "우리가 맞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우리가 결정하는거야. 그 결정권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잖아. 자신이 맞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공평하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지. 그걸로 자신의 상황을 만족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 몫이지. 그렇기에 나는 인생은 공평하다고 생각해."
ⓒ 신예진
나는 언니가 보인 동의에 힘입어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맞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거야. 그 결정권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잖아. 자신이 맞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공평하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지. 그걸로 자신의 상황을 만족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 몫이지. 그렇기에 나는 인생은 공평하다고 생각해."

수많은 유람선과 선박이 보스포루르 해협을 지나간다. 배의 고동소리와 북적이는 인파 소리를 배경으로 조금씩 날이 저물고 있다. 이스탄불로 건너오며 우리는 조금씩 찾아오는 여행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5. 이스탄불의 마지막 날 : 내 삶의 이유는

마음이란 방에 원래 가구가 없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방에 있던 가구가 사라지면 텅 빈 느낌을 받는다.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날,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언니를 보며 울컥했다.

12일 동안 불안정하고 부족한 점 많은 내 옆을 지켜주고 위로가 되어준 언니가 곧 없다는 사실은 괜히 코를 찡하게 한다. 세계 일주를 시작한 뒤로 혼자서 줄곧 여행을 잘해왔지만, 원래 있던 존재가 사라지는 빈자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제아 언니와의 지난 터키 여행 대학 산악부에서 만난 언니와는 매번 산에서만 봤지만, 우린 처음으로 함께 튀르키예 바다를 여행했다. 함께 여행하며 언니는 내게 소중한 여행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 신예진
이스탄불 카디쿄이에서 마지막 점심을 먹고 주변 공원에 자리를 잡아 말했다.

"함께 여행하고 나면 그 사람과 여행 이전의 관계보다 더 가까워진 느낌이야. 다시 말해, 여행을 통해 내 사람을 찾게 되는 거야. 여행은 '내게 소중한 존재가 생겼구나'를 확신하게 해주지.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간다는 건, 그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는다는 의미잖아. 그런 의미에서 언니와 튀르키예 여행을 하면서 이제아라는 소중한 존재를 얻게 되어 기뻐."

한국에 돌아가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지만, 튀르키예 케밥을 사이에 두고 하는 마지막 식사라는 사실은 우리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만든다. 눈시울을 붉히는 언니에게 삶의 이유를 물었다. 언니는 오랫동안 고민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내 삶의 이유는 항상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야.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항상 극복할 수 있고, 항상 새롭게 시작하면 되니까. 그게 살아가는 희망인 거 같아."

산악부 활동을 하며 강하게만 느껴진 주장 언니에게도 여행을 마치고 피곤함에 곤히 잠자는 모습이 있었고, 모두가 힘들어하는 순간에도 꿋꿋이 암벽을 오르는 주장 언니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소심함과 연약한 눈물을 갖고 있었다. 세계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 함께 고민하고, 여행하며 서로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었다. 여행 전과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된 것이다. 난 새로운 관계를 선물한 '여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자고 있느 제아 언니와 함께 대학 산악부 활동을 하며 강하게만 느껴진 주장에게도 여행을 마치고 피곤함에 곤히 잠자는 모습이 있었고, 모두가 힘들어하는 순간에도 꿋꿋이 암벽을 오르는 주장 언니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소심함과 연약한 눈물을 갖고 있었다. 지난 언니와의 여행은 언니의 몰랐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신예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해당 기사의 원본 이야기는 기사 발행 후 기자의 브런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aisy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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