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제일 편하지만, 사랑할 수 있을까

김성호 2024. 9. 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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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826]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김성호 기자]

<내일을 향해 쏴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죽은 시인의 사회>, <원초적 본능>, <사랑과 영혼>,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 <미녀삼총사>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원제가 따로 있는 작품이란 것이다. 즉, 한국 제목과 원제가 다른, 수입사가 의역해 국내 배급한 영화라는 얘기다.

그저 제목만 바꿔 단 게 아니다. 제목을 바꿔 달아 영화 팬들에게 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입에 딱 달라붙을 뿐 아니라, 명작의 냄새까지 폴폴 풍긴다. 기대감하게 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도록 한다. 원제를 들어보면 의역의 훌륭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원제와 그 직역은 다음과 같다.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 < Bonnie And Clyde 보니와 클라이드 >, < Dead Poets Society 죽은 시인 클럽 >, < Basic Instinct 기본적 본능 >, < Ghost 유령 >, < The Girl Next Door 옆집 소녀 >, < Charlie's Angels 찰리의 천사들 >. 하나같이 한국에선 별 존재감이 없는 제목들이 아닌가.

'떡볶이' 대신 '사랑', 이 영화의 선택
▲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 디오시네마
그러나 모든 의역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원제를 그대로 쓰지 않은 작품들이 비판과 직면한 사례도 적지 않다. 잘못된 의역이 영화 본연의 맛을 해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관객은 어설픈 의역보단 차라리 영어 원제를 발음 그대로 적어달라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는 의역과 관련해 논란이 될 만한 작품이다. 영화의 원제는 <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 >, 직역하면 '때때로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가 되겠다. 영화 가운데 주인공이 실제로 죽음을 생각하는데, 우울증이나 삶의 고단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호기심 때문이란 점에서 특별히 제목으로 뺐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 제목은 이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의역을 선택했다. 원제에 없는 '사랑'을 부각하는 동시에, 2018년 서점가 화제작의 제목을 연상케 하는 문장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해당 책은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로 내실에 비해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서 제목과 마케팅의 승리로 널리 회자되곤 한다. 말하자면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는 이 책이 거둔 성취를 은근히 기대하며 그 제목을 달리 단 것이 아닌가, 그와 같은 추정을 해볼 수도 있겠다.

사회성 제로(0) 인간의 사랑 도전기
▲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 디오시네마
영화는 멜로와 성장드라마가 독특하게 버무려진 작품이다. 연애만큼 인간을 성장시키는 자극이 많지 않단 사실을 사랑이 흔치 않은, 또 연애를 거부하는 이가 어느 때보다 많은 시대에 알도록 하는 영화다. 통상의 멜로처럼 본격적인 사랑이 피어난 시기보다는, 사랑을 막 시작한 이의 설렘과 실책, 또 다가섬을 그린단 점이 특징적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한적한 마을 작은 회사의 구매 담당자 프랜(데이지 리들리 분)이다. 표정도 없고 삶에 이렇다 할 자극도 없는 프랜은 늘상 혼자 지내길 즐기는 외톨이다. 회사 동료들은 하나같이 서로 어우러지길 즐기는 이들이지만, 프랜만큼은 다른 이들과 교류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딱히 누굴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홀로 있을 때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성격이 큰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런 프랜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 가운데 아주 작은 균열, 것도 기분 좋은 균열을 일으키는 변화다. 프랜과 가까운 자리에서 일해온 동료가 떠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직원이 채용된 것이다. 그가 바로 로버트(데이브 메르헤예 분)다. 다른 이에게 좀처럼 다가서지 못하는 프랜에게 로버트는 붙임성 좋게 다가선다. 왠지 프랜도 그가 마음에 드는 모양새다.

그로부터 영화는 프랜과 로버트가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서는 과정을 그린다.

모든 단계가 순조롭진 않다. 통상의 시작보단 어려움이 적잖다. 우선 프랜의 성격부터가 하나의 장애로 작용한다. 매력적인 외모, 떨어지지 않는 두뇌에도 남과 관계를 맺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녀다. 타인을 필요로 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드디어 제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났다고 없던 사회성이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말 그대로 뚝딱거리는 그녀의 태도가 그 첫 번째 장애가 된다.

다음도 없지 않다. 프랜의 기대와 달리 로버트는 두 번이나 이혼한 남자, 누구와도 관계한 적 없어 보이는 프랜에게 돌싱남과의 연애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나이 차에 돌아온 싱글이란 장애를 극복하고 프랜과 로버트의 관계가 진전될 수 있는가를 돌아본다.

나이 많은 돌싱남과 연애, 행복할 수 있을까?
▲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 디오시네마
나이 차와 이혼이란 이력은 보는 시각에 따라 관계를 시작할 수 없는 장애가 될 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상대적 문제다. 이 같은 요소를 둘러싸고 인간과의 관계를 진전시켜 본 적 없는 프랜이 연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색다른 재미를 준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는 여와 남이 이성적 만남을 진전시키는 시작점을 비추며 인간이 어떻게 타인에게 다가서고, 또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비춘다. 그로부터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살피게 하니, 각종 조건을 재고 따지며 아예 연애를 포기하는 청춘이 넘쳐나는 한국의 현실에서 유달리 시사하는 바가 있는 작품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다.

제목을 바꿔 단 영화의 선택은 과연 관객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영화를 본 뒤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터다.
▲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포스터
ⓒ 디오시네마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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