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짜리 우산 뭐길래…헌재까지 간 '우산 도둑 사건' 결말
집 앞 식당에서 남의 우산을 잘못 가져갔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60대가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취소받았다. 헌법재판소는 절도 혐의로 A씨(64)에게 기소유예를 한 검찰 처분을 재판관 만장일치로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2022년 8월 서울 강남구의 집 앞 식당에 검정색 장우산을 들고 방문해 우산꽂이에 꽂아뒀다. 30분 뒤 식당에 방문한 B씨도 검정색 장우산을 다른 우산꽂이에 꽂아두고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A씨는 처음에 자신의 우산을 들어서 살펴보곤 다시 우산꽂이에 꽂고, B씨의 우산을 들어서 살핀 뒤 그대로 가지고 나갔다. 이후 우산이 사라진 걸 발견한 B씨는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다.
A씨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우산을 잘못 가져온 지 몰랐다. 착오로 가져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B씨의 우산이 시가 20만원 상당의 고급 우산인데다 손잡이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상태였던 점을 감안해 A씨에게 죄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의 우산은 손잡이 비닐이 벗겨진 상태였다. A씨는 “내가 그날 가져갔던 우산이 뭔지 헷갈려서 내 우산을 들고도 다시 내려놨던 거였다”고 항변했지만, 결국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서울중앙지검은 2022년 10월 A씨의 절도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범행 경위나 정도 등을 고려해 기소는 하지 않겠다’는 판단이다. 재판에 넘기지 않고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기소 처분과 결과물은 거의 같지만, 혐의를 입증할 수 없어 기소하지 않는 불기소처분과 달리 혐의를 인정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점이 다르다. 수사기관에도 기소유예처분 기록이 5년간 남는다. 재판에 넘겨진 경우 다툼 끝에 무죄를 받을 가능성도 남지만, 기소유예처분은 헌법재판소에 ‘취소해달라’고 청구하는 방법밖에 없다.
헌재는 지난달 29일 “절도의 고의로 우산을 몰래 가져갔다는 점이 합리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며 처분을 취소했다. A씨가 사건 당시 62세인데다 사건 발생 3년 전부터 기억력 저하를 호소해 신경과 진료를 받아온 기록 등을 감안했다. “A씨 주장대로 착오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판관들의 판단이다. 헌재는 “우산 착오는 일상에서 종종 있는 일인데다 두 우산이 헷갈릴 법한 외관이었다. A씨의 연령이나 건강상태를 고려하면 ‘착오’ 주장이 비합리적이지 않은데 A씨 주장의 신빙성을 면밀히 따져보지 않은 건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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