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窓]기어이 문제를 푸는 사람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2024. 9. 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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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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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은 삼면이 유리로 돼 있다. 초가을 따사로운 볕으로 기미와 주근깨를 산업재해로 봐야하는지 동료들과 논하던 중 문득 다른 유리벽에 하늘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벌써 가을이 왔나 싶어 맞은편을 보니 건너편 재개발 현장 가벽에 그려진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어느 소설 속 한 장면처럼 문득 '구름'이라는 이름의, 17년 전, 짧은 시기지만 퍽 큰 꿈에 슬쩍 발 담갔던 창업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그 시절은 이른바 '웹 2.0'이 꿈틀대던 시기였다. 한 언론사의 인턴 기자를 하다가 이 개념을 알게 됐고, 같이 일하던 동료 인턴 기자는 마침 창업을 하려던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대표를 맡으며 팀을 꾸렸고, 나도 끼워주었다. 고백하건대, 교환학생 출국 석 달을 앞뒀던 나의 참여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고로 이 팀의 업적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끝까지 한 친구들의 몫임을 미리 밝히며, 그럼에도 나의 스물 두 살 여름을 채웠던 경험이니 감히 '우리'라고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당시 우리는 암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겪게 되는 정보비대칭의 문제를 풀고자 했다. 광고 없이 믿음직한 정보와 위로와 격려로 채워진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했고, 가짜 대체의학과 광고성 식품과 공포스러운 정보를 추려내고, 양질의 정보와 커머스만 남기는 플랫폼을 꾸리고자 했다. 그 시작을 위해 우리는 사용자를 찾으러 시민단체와 전문 의료기관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리서치를 하고 관계를 쌓는 데 집중했다. 나는 기간이 짧아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이후 쓰인 기사들을 보니 이후로도 팀은 꾸준히 활동을 했던 것 같다.

스타트업이나 벤처캐피탈(VC)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기 전인 시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원봉사나 기부, 공연이나 물건 판매 같은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고민했다. 당시 흔치 않던 개념인데 '더 바디샵'처럼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등 세상에 이로운 방식으로도 충분히 수익화를 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대표의 의지가 강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팀은 규모도 커지고 공동체에 영향도 미치며 한동안 성장했지만, 결국 사업은 접게 되고 팀도 뿔뿔이 흩어진 걸로 나는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젊은 창업팀의 고군분투와 희망찬 시도 정도로 마무리될 법 하다. 그런데 꽤 인상적인 반전이 있었다. 당시의 회사는 없어진 게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 팀을 꾸리고 이끌었던 대표가 암 환자들이 겪게 되는 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고자 했던 그 문제를 수년이 지난 뒤 기어이 풀어냈다. 방식은 달라졌다. 그와 연락이 끊긴지 오래라 누구라고 특정해 밝히긴 어렵지만, 그는 이 문제를 콘텐츠로 풀어내고 결국 유명한 작가가 됐다. 그리고 이후로도 세상에 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콘텐츠 회사를 만들어서 말이다.

VC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 대표처럼 세상의 특정 문제를 푸는 것에 진심인 창업가를 종종 만나곤 한다. 그리고 그간의 경험이 그 창업자의 진심을 뒷받침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장이 충분히 규모가 크고, 문제가 해결 되었을 때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할 때, 그리고 이 문제를 제일 잘 풀 수 있는 플레이어가 이 사람이 맞다는 확신이 들 때, 우리는 적극적으로 투자를 검토한다.

그리고 VC 심사역의 일은 이 창업자가 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제안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VC 일원으로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너무 기쁜 나머지, 어떻게 더 잘 도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모든 정보와 경험과 지식과 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더욱 긴장하곤 한다.

이러한 진심들이 모여 문제가 풀렸을 때, 우리의 세상은 더 살만해 질 것이라고 믿는다. 17년 전의 여름 이후에 기어이 문제를 풀고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는 창업자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벅찬 마음에 통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그가 만든 콘텐츠들을 잔뜩 몰아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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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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