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모르면 꼰대"…술 좋아하는 Z세대가 푹 빠진 '술 문화'

이보람 2024. 9.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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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와인을 즐기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와인의 가치를 알고 같이 즐길 수 있는 매너만 있으시면 환영합니다. "
젊은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취미모임 앱(애플리케이션)에 개설된 한 와인 모임 소개 글이다. 혼자 즐기기엔 다소 부담되는 60달러 이상 고가 와인을 나눠 마시는 게 이 모임의 활동 취지다. 가입자 수는 300여명에 달한다. 회원들은 한 달에 서너 번 열리는 ‘와인벙(와인번개)’에 참석해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즐긴다. 와인은 구매 비용을 더치페이 하거나 참석자가 한 병씩 와인을 가져오는 ‘BYOB(Bring your own bottle)’ 방식으로 조달한다. 이 모임을 만든 김영훈(33‧가명)씨는 “와인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었다”며 “와인 이야기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간다”고 했다.

집에서 하이볼을 마시고 있는 젊은이들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일러스트 챗GPT

최근 서울 성동구 성수동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른바 ‘핫플(핫플레이스)’에선 각종 주류 브랜드의 팝업 행사가 유행이다. 직장인 김경연(31)씨도 지난달 한 위스키 브랜드 팝업 스토어에 다녀왔다. 1인당 6만5000원에 위스키 4종류와 미슐랭 셰프가 만든 안주를 맛 봤다. 김씨는 “20대 때는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셨지만, 요즘엔 술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안 취할 정도로만 즐기는 게 쿨(cool)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직장에서도 감지된다. 회식 횟수는 줄고 시간도 짧아졌다.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술은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서울 역삼동 소재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윤모(35)씨는 “요새는 부장님들도 젊은 직원들이 회식을 싫어하는 걸 알고 폭탄주를 돌리는 대신 ‘하이볼 마시러 가자’고 한다”고 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이른바 ‘젠지(Gen Z)’ 세대를 중심으로 술과 거리를 두는 이른바 ‘소버 라이프(sober life)’가 확산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소버 라이프란 단순히 술을 끊는 ‘금주’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알코올 섭취를 최소화하고 자신에게 맞는 적정한 도수의 술을 소량만 즐기는 방식을 뜻한다. ‘술에 취하지 않은’이란 의미의 영어단어 ‘sober’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실제 롯데멤버스가 지난 6월 리서치플랫폼 라임을 통해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40%가 ‘전년 대비 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답변한 반면에 ‘취하려고 마신다’는 응답은 36.4%에 불과했다.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만 마신다’는 응답은 77.4%에 달했다. 특히 20대의 경우 ‘신상·인기 술을 먹어보는 편’이라는 대답이 59.6%로 50대(43.7%)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무알코올 주류 시장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2012년 13억원가량이던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이 2021년 415억원으로 대폭 성장했고, 올해에는 700억원, 2027년엔 1000억원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근영 디자이너


글로벌 트렌드 된 소버 라이프…“개인 건강·만족감 우선시”

이런 추세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4월 영국 시장조사업체 민텔(Mintel)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대상(16~25세 인터넷 사용자 580명)의 40%가 ‘술 소비를 제한한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 이들 중 3분의 2가 ‘알코올의 정서적 영향을 우려한다’고 응답했다. 이밖에 칼로리 섭취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술을 소비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와는 다른 음주 문화가 젊은 세대 사이에 자리 잡은 데엔 개인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강을 챙기면서 행복을 찾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문화가 Z세대 사이에서 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술을 잘 마시는 게 즐겁고 멋있어 보였지만,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는 자신의 건강을 망쳐가면서까지 술을 마시는 게 더 이상 멋있거나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건강을 챙기면서 재밌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더 추구한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회식과 같은 단체 문화가 이전보다 사라진 점도 소버 라이프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리서치회사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6월 직장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인 회식문화 관련 인식조사’ 결과, 코로나 이후 ‘회식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커졌다’는 답변은 79.2%로 조사됐다. ‘회식하더라도 전보다 일찍 끝나는 문화가 형성됐다’는 답변도 76.2%다.

음주 관련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일부 Z세대에겐 음주 행위 자체에 대한 경계감이 형성됐을 거란 분석도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지고 폭력성이 드러나 범죄를 저지르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과도한 음주를 한 상태에서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단 우려도 있는 만큼 젊은 층의 음주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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