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싫어서' 해외 떠난 청년들의 진짜 속내
[김도희 기자]
(*이 기사는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싫었다. 숨 막히는 경쟁, 끊임없는 비교, 그리고 그 속에서 나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절망감이 나를 짓눌렀다. 사회는 우리를 'N포 세대'라 불렀다. 취업, 연애, 결혼, 집 마련, 심지어는 꿈까지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20대는 무기력하고 답답했다. 자꾸만 포기하다가는 내 삶이 불행으로 가득 찰까 두려워, 나는 눈을 돌려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벗어나고 싶었다. 마치 최근 개봉한 고아성 주연의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처럼 말이다.
언어와 문화 달라도, 한국보다 더 나은 이유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 속 주인공 계나는 한국에서 계약직을 전전하다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20대 청년이다.
▲ 배우 고아성 주연의 영화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
ⓒ 영화 <한국이 싫어서> |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그들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 모습에서 내 20대와 많은 한국 청년들이 겹쳐졌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호주 여행에서 만난 한인 청년들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주에서 만난 청년들은, 한국보다 높은 물가, 언어 장벽, 낯선 환경인데 왜 한국에 돌아가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여기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이에요. 한국에서는 내가 나답게 사는 게 이상하게 여겨지거나 문제로 보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그 자체로 인정받아요."
그들은 한국에서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불편함과 외로움을 감수하더라도 호주에서 '나답게 살 수 있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 호주 퍼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석조 조각가 Jina Lee |
ⓒ 김도희 |
호주에서 만난 청년들은 "한국에서의 성공 기준은 너무 한정적이다", "그 길에서 벗어나면 실패자로 낙인 찍힌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호주는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직업이나 학력에 따른 차별이 적어 자신의 선택과 존재가 존중 받는다고 느낀단다.
호주 이민 45년 차 교민에 따르면, 현지에서 가장 선호되는 직업이 배관공이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근무 시간이 유연하고 시급이 높아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행복이란 눈치 없는 삶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약 10년 간 나는 36개국을 여행하고 4개국에서 살았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 여정의 끝에서 나는 스웨덴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는 어딘가에 맞춰야만 했던 삶에서 벗어나, 스웨덴에서는 오롯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 tvN <유 퀴즈 온더 블럭>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가 행복의 주관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
ⓒ tvN |
그러니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공동체 생활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해왔던 셈이다. 작은 일상 속 선택조차 내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놓치고 있다.
▲ 호주 내에서 한국인 교민이 가장 많이 사는 시드니. 대표 명소 하버브릿지(좌)와 오페라하우스(우)가 아름답다. |
ⓒ 김도희 |
영화 속 계나는 우여곡절 끝에 뉴질랜드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새로운 학위를 따고, 연애하고, 친구를 사귀며 자신만의 삶을 꾸려간다. 그 삶 역시 쉽지만은 않지만 내 눈에 계나는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영화 말미 잠시 한국에 돌아온 계나, 그녀는 익숙한 환경과 소중한 가족 곁에 머물렀을까, 아니면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갔을까? 영화는 그녀가 또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을 암시하면서 끝이 난다.
그렇다면 계나가 한국도, 뉴질랜드도 싫어서 떠나는 걸까?
정답은 아마 계나만이 알 것이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계나의 모습은 소위 '헬조선'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던 나의 20대, 그리고 낯선 호주에서 자기 삶을 개척하며 사는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한국이 싫어서'라는 청년들의 담담한 목소리는 도망자의 비겁한 변명이 아니다. 익숙함을 벗어나 자기답게 살고자 하는 낯선 세계에서의 독립 선언이자, 용기 있는 개인주의의 선언이라고 본다.
그곳이 어디든, 나로서,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용기를 매일 조금씩 키워가보자. 각자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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