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풀가동해 상황 역전... 1위 탈환하고 사명도 바꿨다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기자]
맥주 한 병에 122원 식... 즉 국산품 금관표와 오삐표의...대리점업자 최고판매가격은 일백 이십이 원으로 개정되었다 - 1948년 8월 20일 <경향신문>
75년 전 우리 맥주의 첫 이름은 금관표와 오삐표였다. 금관표의 주인은 지금의 하이트진로다. 하이트진로도 오비맥주와 마찬가지로 적산 기업에 뿌리가 있다. 1933년 서울 영등포에 설립된 대일본맥주회사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하이트진로의 전신 조선맥주가 된다.
1952년 민덕기라는 인물이 미군정에서 조선맥주를 불하받는다. 그가 초대 대표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일본맥주회사의 조선인 주주 민대식이 있었다. 민대식은 대표적인 친일 세도가였던 민영휘의 차남으로 일제 강점기 조흥은행의 초대 은행장이었다. 해방 후 일본인 주주들이 사라진 대일본맥주를 관리했던 이력이 아들 민덕기를 대표로 만들었다.
▲ 1953년 크라운맥주 광고 금관표에서 왕관표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
ⓒ 경향신문 |
당시 맥주 유통은 생산자, 총판 대리점, 도매상, 소매상의 단계를 거쳐야 했다. 독과점 시장, 고정된 생산단가, 크라운맥주와 오비맥주라는 단순 브랜드로 구성된 시장 구조 속에서 판매량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누가 더 많은 점유율을 가져가는지가 핵심이었다.
실질적인 영업과 판매의 주체는 대리점이었다. 충성심 높은 대리점을 전국적으로 촘촘하게 조직해야 과점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조선맥주는 이 부분에서 동양맥주에 밀렸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두산의 박씨 가문이 이런 면에서 우세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 1957년 조선맥주 영등포 공장 모습 |
ⓒ 하이트진로 |
한번 역전된 시장은 되찾기 쉽지 않았다. 1958년에도 여전히 세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조선맥주는 파산 직전, 1965년 조흥은행의 법정관리를 받게 된다. 법정관리인으로 당시 사세청장 김만기가 임명되었다.
재무당국자는...사세청장 김만기 씨가 조선맥주주식회사 사장 민덕기 씨의 법정관리인으로 임명됨으로써 수일 내 사세청장직을 사임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조선맥주의 세금 체납 오억오천만을 청산하기 위한 것으로서 정부는 앞으로 상당액을 운영자금으로 융자할 것을 추진 중에 있다. - 1958년 12월 6일 <경향신문>
조선맥주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셈이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결국 1년 만에 한일은행이 다시 관리에 들어갔고 1965년이 되어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그 뒤 다시 민덕기가 대표로 복귀했으나, 은행이 관리했을 때보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 1980년대 조선맥주 영등포 공장 전경 |
ⓒ 하이트진로 |
또한 1967년 한 해 동안 생산량을 보면 동양맥주가 2만 3500킬로리터, 조선맥주가 1만 6400킬로리터로 동양맥주가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장점유율은 동양맥주가 65%, 조선맥주가 35% 정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상태는 1996년까지 바뀌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조선맥주가 비록 2등이지만 안정적인 점유율을 유지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1968년 박경규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야기된 경영권 분쟁은 공격적인 영업을 힘들게 만들었다. 복잡한 소송의 결과, 고 박경규 회장의 형 박경복씨가 조선맥주의 대표가 됐지만 큰 반전은 없었다.
▲ 하이트진로를 1등으로 만든 하이트맥주 |
ⓒ 하이트진로 |
사실 페놀 사건 이전만 하더라도 조선맥주 상황은 최악이었다. 1970년대 35% 대의 점유율은 1990년에 20% 대로 떨어져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당시 크라운맥주는 오비맥주보다 쓰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보수적인 경영진은 이런 소비자 반응에 무심했다. 1991년 4월 18일 자 <시사저널>에 따르면 조선맥주 관계자는 손님에게 크라운맥주를 주면 오비맥주로 80%가 바꿔 달라는 항의가 많았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상대 실수로 절호의 기회를 맞은 조선맥주는 전 공장을 풀가동하며 상황을 역전시켰다. 시의적절하게 출시된 하이트맥주는 오비맥주를 향해 비수가 되었다. 그리고 1996년 조선맥주에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이트맥주가 시장점유율 43%를 차지하며 1위가 된 것이다. 오비맥주는 41%였다.
만년 2등의 설움을 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조선맥주는 50년간 품었던 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바꾼다. 하이트맥주를 개발한 박문덕 사장에게 조선맥주의 아픈 기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꿈이 영원하길 바라는 염원일 수도.
역사는 반복된다
1995년 동양맥주는 오비맥주로 사명을 변경하며 도약을 노리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암초에 좌초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초국적 맥주 기업 에이브이 인베브에 인수된 후 진로쿠어스의 카스맥주를 품으며 하이트맥주를 턱 끝까지 추격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은 급변하고 있었다. 하이트맥주는 간신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변화에 둔감했다. 오비맥주는 카스맥주로 젊은 층 공략에 공을 들였다. 그 중심에는 서자 카스맥주가 있었다. 강력한 영업 마케팅을 전개하며 카프리, 카스 라이트, 카스 레드, 오비 필스너 같은 신제품도 연달아 출시했다.
반면 하이트맥주는 현실에 안주했다. 하이트 브랜드에 이름만 바꾸는 전략을 펼치며 새로운 맥주 개발에 게을렀다. 트렌드에도 민감하지 않았다. IMF 이후 소맥 문화가 유행하자 오비는 카스와 소주 처음처럼을 이용한 '카스처럼'을 내세우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11년 하이트맥주가 진로소주를 인수하며 영업력이 분산된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종합 주류회사가 된 하이트진로는 상이한 두 조직을 결합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2012년 하이트를 역전한 카스는 격차를 점점 더 벌렸다. 2014년 롯데칠성의 진입과 수입 맥주의 급격한 성장, 그리고 크래프트 맥주의 등장으로 맥주 시장은 더욱 긴박해졌다.
위기감을 느낀 하이트진로는 30% 대로 떨어진 점유율을 만회하기 위해 2019년 테라를 출시했다. 하이트맥주와 카스맥주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생경한 이름을 가진 '테라'는 소비자에게 신선함을 전달했다. 업계 불문율이던 초록색 병도 과감하게 채택했다.
자외선에 취약한 초록색 병은 이취를 유발할 수 있었다. 게다가 회오리 형태의 병 문양은 재사용 회수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이트맥주는 이미지 반전을 위해 초록색 병을 테라에 적용했다. 2011년 합병한 진로의 소주 참이슬을 이용해 테슬라라는 소맥 마케팅도 잊지 않았다.
하이트와 카스라는 단순한 구도에 지루했던 소비자는 테라에 반응했다. 카스보다 본인들의 수입 맥주 판매에 신경을 쓰던 오비맥주는 화들짝 놀랐다. 경영진을 교체한 뒤, 투명 병 카스와 초록색 병 한맥을 출시하며 테라에 대응했다. 그 결과, 카스를 넘으려 했던 테라의 반란은 오비맥주의 신속한 반격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추고 말았다.
▲ 조선맥주와 하이트진로의 맥주들 |
ⓒ 하이트진로 |
테라와 동일한 공식을 밟은 켈리의 성공은 아직 미지수다. 켈리라는 요상한 이름, 황금색 병, 핫한 연예인 광고는 이제 식상하다. 소맥을 위해 낮춘 향미와 바디감은 올 몰트 맥주(all malt beer)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받고 있다.
현재 맥주 시장은 두 회사가 90% 이상을 점유했던 과거와 다르다. 한국맥주문화협회에 따르면 2023년 맥주 시장은 국내 생산 맥주가 70%, 수입 맥주가 20%, 크래프트 맥주를 포함한 나머지가 10%를 이루고 있다. 70% 중 오비맥주가 약 41%, 하이트진로가 27%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적으로 단순히 맥주 카테고리만 보면 하이트진로가 오비맥주를 역전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이트진로는 더 이상 맥주회사가 아니다. 그룹 차원에서 소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여전히 조직의 화학적 결합이 완전하지 못한 가운데, 맥주에만 힘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한국 맥주라는 자부심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오비맥주가 외국 자본이라는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해 대표 이름도 한국식으로 바꾸고 한맥을 출시하는 성의를 의미심장하게 볼 필요가 있다. 지리멸렬한 애국심에 기대라는 말이 아니다. 높아진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은 한국 맥주에 심혈을 기울일 때가 됐다는 의미다.
켈리라는 이름이 해외 수요를 노린 포석인지 모르겠지만 심정적으로 다가가기 쉽지 않다. 대중맥주 부분에서도 소비자의 취향과 정서는 변하고 있다. 하이트맥주는 오비맥주가 아닌, 진로 소주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일단, 건투를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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