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여자 옷 입어야 자신있다…바야흐로 강홍석 시대
[비욘드 스테이지] 뮤지컬 ‘킹키부츠’ 롤라 역 강홍석
이런 남자들이 10년 전만 해도 미친 사람 취급 받곤 했지만, 지금은 독특한 성향을 인정받는다.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킹키부츠’의 주인공 롤라도 한몫 했다. 2014년 초연 당시 상남자 포스로 ‘여자 옷을 입어야 자신 있는 남자’에 빙의했던 무명 배우 강홍석은 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현재 ‘하데스타운’과 ‘알라딘’까지 3개의 브로드웨이 대형 뮤지컬을 동시에 섭렵하고 있는 ‘강홍석의 시대’를 열어준 것도 롤라다.
제리 미첼이 가장 아끼는 한국 배우
“롤라는 누가 해도 사랑 받는 역할이에요. 요즘 ‘쥐롤라’도 인기지만, 10주년이 되니 초연 때 더블캐스팅이었던 오만석 선배가 많이 생각나네요. 정말 많은 가르침에다 밥까지 먹여주시면서 하나하나 같이 만들어 주셨거든요. 초연 끝내고 뉴욕에 공연 보러 갈 때 주신 용돈으로 지금의 아내와 함께 ‘알라딘’을 보며 언젠가 지니 역할을 꼭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게 이번에 이뤄진 거라 감사한 마음이 더하네요.(웃음)”
‘킹키부츠’는 수퍼스타 신디 로퍼의 음악과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창작자 제리 미첼의 연출·안무로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작품. 제리 미첼이 가장 아끼는 한국 배우로 알려진 게 강홍석이다. “처음엔 드랙퀸이면서 이성애자인 롤라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제리 미첼이 미국·영국에는 그런 사람 너무 많으니 어렵게 접근하지 말라더군요. 분명 존재하고 있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즐겁게 전하는 캐릭터가 롤라예요. 아마 제리 미첼이 자신을 투영한 것 같아요. 공연 때마다 꼭 오시는데, 말이 안 통해도 주변을 밝게 만드는 분이거든요. 65세에 복근도 엄청나시고, 정말 매력적인 분이죠.(웃음)”
그는 요즘 10년 새 달라진 세상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초연 당시엔 캐스팅되고도 드랙퀸에 대해 잘 몰랐을 정도로 생소한 문화였다. “롤라의 기분을 느껴보려고 풀착장 상태로 대학로에 간 적이 있어요. 이렇게 쳐다보는구나 싶고, 택시 안 공기도 너무 이상했죠. 관객도 대부분 뮤지컬 마니아인 젊은 여성분들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그분들이 주변인들을 데려오면서 점점 달라졌죠. 얼마 전 작은 콘서트를 했는데, 롤라처럼 꾸미고 온 ‘오빠’들이 정말 많았어요. 누구나 즐길 만한 공연인데, 그런 세상이 된 것 같아 좋네요.”
스토리는 평범하다.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두 청년 찰리와 롤라가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성공을 향하는 성장 스토리인데, 강홍석도 트라우마가 있었단다. “얼굴이 큰 트라우마였어요. 뮤지컬을 처음 접할 땐 조정석 선배나 주원 같은 훈남들의 직업이라 생각해서 꿈도 안 꿨죠. 최근까지도 누가 외모를 칭찬하면 늘 부정했는데, 한 팬이 편지를 주셨어요. 자기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라는 말에 한방 먹었죠. 이제 제가 잘생긴 사람이라 믿으며 살기로 했어요.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데, 그걸 알려줘서 고마워요. 정말 훈남이라고요? 엄청 노력하고 있어요. 오늘을 위해 어제 이 더위에 한강을 11㎞나 뛰었죠. 초연 오디션 영상을 보면 저도 깜짝 놀라요. 지금이 더 어려 보여서요.(웃음)”
사실 강홍석은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상남자 롤라다. 특히 해외 버전의 롤라들은 선이 고운데, 그를 상반된 캐릭터로 이끈 건 흑인음악이었다. “어려서부터 흑인이 되고 싶을 정도로 흑인음악을 좋아했어요. 힙합, 모타운 재즈, 아프리카 음악까지 들었죠. 그런데 제가 엄청 좋아하던 빌리 포터가 브로드웨이 초연 롤라였던 거예요. 그분 영상을 보고 갑자기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졌죠. 너무 아름답고 섹시했거든요. 28년간 남성성만 키워왔는데, 나도 한번 아름다움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다음날 바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죠.”
흑인음악 애정 담은 자작곡 싱글 내기도
그럼에도 롤라는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 100㎏가 넘는 거구가 한 달 20㎏을 감량하는 등, 무모한 도전이 삶을 바꿔 놓은 셈이다. “지니처럼 ‘딱 내꺼’도 있지만,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해본 적 없었는데, 세상 사는 데 정답은 없나 봐요. 중요한 건 뜨거움이죠. 전에도 제가 워낙 뜨거웠거든요. 뭐 하나 없을까 열심히 찾았죠. 뮤지컬 판도 분명 팝의 세상이 올 거라 믿으면서요. 클래시컬 쪽에선 ‘버터 빼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브로드웨이가 다 팝 천지가 됐네요.”
그의 도전은 진행 중이다. 흑인음악에 대한 사랑을 담은 자작곡 싱글 앨범도 냈고, 최종 목표는 뮤지컬 영화를 만드는 것이란다. “‘라라랜드’나 ‘드림걸즈’ 보면 너무 부럽거든요. 우리 이야기로 그런 걸 꼭 만들고 싶어요. 제가 봉산탈춤과 마당극을 전공하다시피 했고, 마당극을 세계화시키는 게 꿈이죠. 꼭두각시놀음을 요즘 감각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황정민 같은 배우가 출연하고 정재일 같은 분이 음악을 맡아 꽹과리· 장구·피아노·드럼까지 더한 멋진 작품을 찍을 생각을 하면, 심장이 떨립니다.” 강홍석은 지금도 뜨거웠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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