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계속하는 마음에 대하여
이제는 괜찮아, 싶을 때쯤 삶은 또 힘들어지곤 합니다. 그게 삶이니까요. 소중한 존재들과의 이별,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가족 간의 갈등, 잘 나아지지 않는 반려병 등. 어려움과 동행하면서 매번 다시 일어서는 마음에 대해 씁니다. <기자말>
[김나라 기자]
고등학교 때 급식비로 음악 CD를 사 모으곤 했다. 작은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면 배가 고팠지만 그렇게라도 좋아하는 밴드들의 앨범을 가질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때 산 앨범들은 대부분 자우림과 일본의 라르크 앙 시엘(L'arc~en~ciel)의 것이다.
당시 나는 자우림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파애', '안녕, 미미', '새', '마왕' 같은 노래들을 좋아했다.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던 내 어두운 감성에 딱 맞는 노래를 만들어주는 밴드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귀했다.
세상 모든 그늘 속 비주류를 대변해 노래해 주는 듯하던 윤아 언니가 치과 의사와 결혼했을 땐 어떻게 우릴 버리고 그 세계로 떠날 수 있느냐며 혼자 토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자우림은 매번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곡을 만들어서 다시 나타나고 또다시 나타났다.
자우림이 없는 평행우주의 내 인생을 상상해 보면, 한국어로 된 노래 중 앨범마다 내 마음을 읽어준 듯한 느낌을 주는 가수를 찾을 수 있을까 싶다. 그곳의 나는 더 고독하고 쓸쓸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24년을 함께한 자우림은 내게 표현 그대로의 '인생 밴드'인 셈이다.
계속 노래하는 밴드
하지만 나는 주로 소도시나 외국에 살았고 늘 시간이나 돈 중 하나가 없었기 때문에 자우림 콘서트에는 대학 때 한 번밖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연말에는 여러 모로 무리를 해서 드디어 공연장 1층 R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혼자 갔지만 이때만은 '파워내향인? 그게 뭔데?'라는 태도로 사지를 흔들며 뛰었고,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들으며 나라 잃은 사람처럼 오열했다.
▲ Midnight Express 작년 12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자우림 콘서트 |
ⓒ 김나라 |
공연 콘셉트가 심야 열차에 탄 승객(관객)들이 승무원(자우림 멤버들)의 안내를 받는 것이었는데, 정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긴 여행을 다녀오며 한 해의 응어리를 풀어낸 기분이 들었다.
한편 부러웠다. 한껏 아름다운 그들이 부러웠다. 그 아름다움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고등학교 때 취해 있던 어떤 기분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갈망, 세상에 없던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가슴 벅찬 욕구. 마치 공기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 그렇다. 그건 소위 말하는 '예술뽕'이 차오른 것이었다.
공연장을 나와 집으로 향하며, 나다움이 흘러넘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이 자신을 제약하는 습관을 벗어던지고 나도 아직 잘 모르는 나의 영역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 자유로움에 스스로 포만감이 들 정도로 나다워지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이니까.
자우림은 우리나라 밴드이니 2n년째 현역인 걸 자연스레 알았지만 라르크 앙 시엘은 근황이 어떤지 궁금해 재작년쯤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아주 깜짝 놀라버렸는데, 그들 또한 여전히 활발하게 공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언더그라운드로 출발해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밴드가 되고,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마이너한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함께 해왔다는 점에서 두 밴드는 닮아있다.
제일 사랑한 두 밴드가 모두 건재하다니, 내가 보는 눈이 있다는 점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뮤지션과 팬의 관계성을 넘어, 그렇게 오래도록 변함없이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나를 고무한다.
그들이 어떤 자리를 목표로 했다면 지금껏 사랑 받으며 그 자리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순간순간의 열망에 따라 할 수 있는 선택들을 해오지 않았을까.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이 그들의 신념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 열망의 순수함이 은연중 전해지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취향의 음악을 한다는 것과 올바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 그 밖에 지금은 또 다른 이유로 그들을 사랑한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것만으로 마치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살아온 내 시간을 모두 지지받는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까지 응원받는 기분이 든다.
▲ 쓰는 삶이 나를 더 충만하게 한다. |
ⓒ kaitlynbaker on Unsplash |
쓰는 삶을 늦게 시작한 만큼 다른 작가들에게 부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이미 단단히 자리를 잡고 내가 쓰고 싶은 주제와 소재를 다루어낸 사람들을 볼 때 그렇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이 제일 슬픈 일인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지난 선택을 아쉬워 하고 조바심을 내는 시기가 한 번씩 온다. 내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과물이 한심해 보여 사기가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내가 문학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자리에 오르려고 작가를 꿈꾼 게 아니었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 있는, 일상의 언어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슴에 쌓이는 것을 꺼내 나의 목소리를 스스로 듣고 싶었다.
음악도, 문학도, 아무리 닿으려 애써도 닿을 수 없는 것에 손을 뻗길 반복하는 일일 것이다.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이 만든 기준에 닿지 않아 괴로워 하고, 가져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막연히 그리워하고, 속속들이 보면서도 깨지 못하는 한계에 숨막혀 하는 일.
그럼에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쓰지 않는 삶보다 쓰는 삶이 나를 더 충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덜 불행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좌우할 수 없는 결과에까지 고통받는 건 어리석다. 그 즐거움을 최대한 누리는 게 현명하고 생산적이다. 만약 나라는 사람의 서사가 누군가에게 닿아 영감이 되고 그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이유도 나만의 길을 나다운 색깔로 만들어왔기 때문일 테니.
얼마 전에는 자우림의 곡 중 평소 잘 부르지 않던 '팬이야'를 혼자 불렀다. 새삼스러웠다. 2002년도에 세상에 나온 이 노랫말의 의미를 예전엔 몰랐구나. 내가 나의 팬이 되어준다는 마음이 어떤 건지 갑자기 와닿은 것이다.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자기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요소요소의 고유함을 아끼는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자유롭고 패기 있는 자기애.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무슨 일이 생겨도 변심하지 않을 팬 한 명을 얻은 기분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사람은 각자 자기 삶의 영역 안에서 독보적이다. 자신의 빛깔을 스스로 가치 없게 여기지만 않는다면 그 빛은 퇴색되지 않는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순간들로 삶을 채울 수 있길 바란다.
'해냄'이 아니라 '해나감'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길. 지나간 선택과 오지 않은 결과가 아니라 지금으로만 가득한 시간을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누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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