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짜고 매듭짓기 '1000년 세월'…국보급 장인들의 인생작 만나보세요
“우리 갓일(갓 만드는 일)이 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에 지정된 게 60년인데, 그간 돌아가신 분도 여럿이에요. 세월이 어쩌다 이렇게 흘렀는지, 요즘은 힘들다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으니 걱정입니다.”
지난 2일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국가무형유산 갓일 보유자 정춘모(84)씨의 소회다. 그는 10대 시절 갓일을 시작해 60여년 외길 인생을 걸었다. 1991년 보유자로 인정된 그의 전공은 갓일 중에서도 ‘입자’에 해당한다. 갓 하나를 만들 땐 각기 다른 세 분야의 장인이 협업해야 하는데, 상단의 모자 부분을 만드는 총모자장, 둥근 차양 부분을 만드는 양태장, 총모자와 양태를 엮는 입자장이 있다. 이들 각각이 살아남아야 온전한 갓 만들기가 전승될 수 있다.
정씨를 비롯해 전통기술 분야 20개 종목의 보유자 29명이 저마다 심혈을 기울인 종목별 ‘인생작’ 80여점이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 모였다. 3일 개막한 국가무형유산 지정 60주년 기념 특별전시 ‘시간을 잇는 손길’(9월 22일까지)을 통해서다.
2일 개막식엔 정춘모 보유자를 비롯해 총 20명의 보유자·이수자가 참석했다. 대체로 50~80대인 이들의 업력을 평균 50년으로 잡아도 합치면 1000년 세월이다. 대부분이 가업으로 대를 이어 해당 종목을 전승해 왔다.
국가무형유산의 전통기술 부문은 총 50여개 종목을 아우르지만 이번 전시는 이 가운데서 전승 취약종목으로 분류된 20개에 초점을 둔다. 보유자가 극소수라 전승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종목들이다. 갓일에선 총모자장 강순자(78), 양태장 장순자(85), 입자장 정춘모·박창영(81)씨가 참여해 작품을 선보였다. 차양이 없는 갓의 모자 부분, 모자가 없는 차양 부분이 예시로 전시돼 갓 만들기의 전체 이해를 돕는다.
낙죽장 김기찬(69), 낙화장 김영조(71), 선자장 김동식(81) 등 이름부터 생소한 국가무형유산들이 실제 작품 외에도 제작도구와 제작 과정 영상을 선보인다. 매듭장 정봉섭(86) 보유자는 부친이면서 초대 매듭장이었던 정연수 보유자와 2대 보유자였던 모친 최은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정갈한 매듭 공예를 내놓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보유자 4인(나주의 샛골나이 노진남, 백동연죽장 황영보, 배첩장 김표영, 바디장 구진갑)의 유작도 함께 전시된다.
이와 함께 고종황제의 접견실로 사용되었던 덕홍전에선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들 11명의 현대적 재해석이 담긴 생활 공예품 등 70여 점이 전시된다. 전통기법을 그대로 살린 공예품과 현대의 디자인 감각을 입힌 작품들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국가무형유산 누비장 김은주 이수자와 신예선 디자이너가 협업해 다채로운 색채·형태의 화병싸개를 선보이는 식이다.
국가유산청 측은 “취약종목 무형유산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례적인 전시”라면서 “국가무형유산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해온 전승자들의 노고를 돌아보면서 아름다운 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는 ‘K-헤리티지 아트전, 낙선재遊(유)_이음의 결’이 오는 8일까지 열린다. 무형유산 보유자와 이수자, 현대 작가 등 총 52명이 참여해 전통문화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소반, 자수 병풍, 누비옷, 궁시(화살), 선자(전통부채), 채상(대나무줄기로 만든 공예품) 등 80여 점을 선보인다.
■ 국가무형유산 전승취약종목
「 국가무형유산 가운데서도 대중성이 낮고 사회적 수요가 줄어들어 국가유산청이 전승 계승을 위해 우선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종목이다. 인적 기반·자립도·전승환경·발전 가능성·종목 활성화 노력도 등을 평가해 3년마다 선정·지원한다. 지난해 선정된 총 25개 종목(전통기술 20, 전통공연·예술 5)은 다음과 같다.
▶전통기술 20종목: 갓일, 나주의 샛골나이, 낙죽장, 낙화장, 두석장, 망건장, 매듭장, 바디장, 배첩장, 백동연죽장, 사경장, 선자장, 악기장(편종·편경 제작), 윤도장, 장도장, 전통장, 조각장, 탕건장, 한산모시짜기, 화각장
▶전통공연·예술 5종목: 가곡, 가사, 발탈, 서도소리, 줄타기
」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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