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발레단 운영했지만… “무용수 기뻐하고, 관객 좋아하면 행복해”

장지영 2024. 9. 7.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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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20년 와이즈발레단 김길용 단장
민간 직업 발레단 새로운 길 열어
28~29일 예당 CJ토월극장 ‘비타’ 공연
와이즈발레단은 현재 단장, 예술 스태프 4명, 행정 스태프 7명, 무용수 34명으로 이뤄져 있다. 연간 1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친다. 와이즈발레단 제공


매년 꾸준히 공연을 올리면서 소속 무용수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직업 발레단은 해외에서 대부분 국공립이다. 무용수들의 체계적인 훈련과 안정적인 운영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발레 생태계에서 기업이나 재단 등 단체도 아닌 개인이 민간 직업 발레단을 운영하는 것은 무모함 그 자체다. 발레의 전통이 길지 않은 국내에서 창단 20년의 역사를 일궈온 와이즈발레단의 활약은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월 서울시발레단이 창단공연을 맡긴 재미 안무가 주재만은 와이즈발레단이 발탁해 2018년 ‘인터메조’, 2021년 ‘비타(VITA)’를 선보이면서 한국에 알려지게 됐다. 또한, 성인 취미 발레인들의 로망인 스완스발레단과 발레 메이트 페스티벌을 운영하는 것도 와이즈발레단이다. 2018년 지금의 서울 강남구 연습실에 둥지를 만든 와이즈발레단은 현재 단장, 예술 스태프 4명, 행정 스태프 7명, 무용수 34명으로 이뤄져 있다. 무용수의 경우 연간 시즌 계약은 9명이고 나머지는 공연 및 리허설 수당을 받는 형태다. 오는 28~29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비타’ 공연을 앞두고 김길용(57) 단장을 만나 순수 민간 직업 발레단으로서 꿋꿋하게 성장한 저력에 대해 들어봤다.

바리시니코프 동경… 국립발레단과 조승미 발레단서 활동

김길용 와이즈발레단 단장이 최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발레단 연습실에서 지난 20년을 회고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저희 발레단의 공연을 올릴 때마다 행복해요. 무용수들이 기뻐하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제겐 행복입니다. 다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발레단 창단을 하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아니까요.”

스타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동경했던 김길용 단장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1992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이후 솔리스트로 활동하는가 하면 직접 안무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안정적 직장인 국립발레단을 1995년 퇴단하고 이듬해 은사인 조승미 한양대 교수의 ‘조승미 발레단’ 창단에 함께했다. 1980년 학생들과 함께하는 개인 발레단으로 시작해 1996년 프로 발레단으로 재창단된 조승미 발레단은 기독교 정신을 토대로 발레의 대중화를 지향했다. 조승미 발레단에서 김 단장은 무용수 겸 안무가로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2001년 조승미 교수가 암으로 별세하자 2년 정도 더 활동하다가 프리랜서로 나왔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된 것은 2004년 친한 선후배 사이인 홍성욱(현재 와이즈발레단 예술감독), 김형민(현재 프뉴마발레단 단장), 이인기(현재 세종시티발레단 단장)과 함께 작품을 선보이면서다.

“저희 4명 모두 무대를 접고 대학강의만 하느라 마음 한쪽에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공동안무로 선보인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을 본 최신일 꾸러기 오케스트라 단장이 협업과 함께 발레단 창단을 권유하면서 와이즈발레단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2005년 발레단 출범, 2010년부터 본격적 운영

김 단장은 홍성욱, 이인기 그리고 오디션에서 뽑은 12명의 여자 무용수와 함께 2005년 3월 와이즈발레단을 출범했다. 하지만 인지도가 없는 민간 직업 발레단의 운영은 쉽지 않았다. 5년 동안 연습실 이사를 7번이나 다녀야 했을 정도로 여건이 좋지 않았다. 2010년 이인기가 세종시로 내려가면서 김 단장은 주 수입원이었던 대학 강의도 모두 그만두고 발레단 운영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는 “창단 이후 5년간은 이도 저도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발레단 성장을 위해 강의와 안무 등 내 개인 활동은 포기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때부터 발레단 운영하느라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집을 담보로 빚까지 얻은 남편을 믿어준 아내에게 고마울 뿐이다”고 덧붙였다.

발레단 운영에 본격적으로 나선 김 단장은 지역 문예회관들을 방문했다. 사전에 약속을 잡고 갔어도 잡상인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2010년과 2011년 연달아 100곳 넘는 문예회관을 돌며 와이즈발레단을 알리자 공연이 하나둘 잡히기 시작했다. 특히 2011년 겨울 영등포아트홀에서 초연한 ‘호두까기 인형’은 이후 와이즈발레단이 겨울마다 여러 문예회관에서 선보이는 인기 레퍼토리가 됐다.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 가운데 공연 수요가 가장 많은 것이 ‘호두까기 인형’입니다. 발레단 창단 때부터 만들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됐어요. 그러다가 영등포아트홀의 공연 제안을 받고는 그냥 수락했어요. 앞으로 계속 공연할 것을 예상하고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의상의 경우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10%만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5년 안에 조금씩 갚는 거로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올렸습니다. 공연 첫날 단원들과 기도하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발레 대중화와 예술성 높은 창작발레 지향

와이즈발레단이 운영하는 국내 최초 성인 취미 발레단 스완스발레단의 '지젤'. 와이즈발레단 제공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 성황리에 끝난 뒤 와이즈발레단은 1년간 영등포아트홀 상주단체가 됐다. 그리고 2013년부터 5년간 마포아트센터 상주단체로 활동하며 다시 한번 도약에 나섰다. 와이즈발레단은 ‘호두까기 인형’을 시작으로 대중이 발레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들을 레퍼토리로 꾸준히 구축했다. 쉬운 스토리를 토대로 다양한 장르의 춤을 넣은 ‘외계에서 온 발레리노’(2012년)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발레’(2013년) 그리고 전막 발레 ‘지젤’(2016년)과 ‘신데렐라’(2018년) 등이 대표적이다. 덕분에 와이즈발레단은 전국 공연장에서 연간 100회 넘는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와이즈발레단은 홍성욱 예술감독의 주도 아래 예술성 높은 창작발레도 꾸준히 만들고 있다. 홍성욱 감독 안무 ‘바로크 고즈 투 프레젠트(Baroque goes to present)’, 주재만 안무 ‘인터메조’ ‘비타’ 등은 완성도 높은 컨템포러리 발레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단장은 “주재만 안무가는 유튜브에 올라온 작품을 본 홍성욱 감독의 추천으로 처음 초청하게 됐다”면서 “우리 발레단의 ‘인터메조’와 ‘비타’가 좋았기 때문에 주재만 안무가가 지난해 광주시립발레단의 ‘디바인’과 올해 서울시발레단의 ‘한여름 밤의 꿈’을 안무하게 됐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최초 성인 취미 발레단 스완스발레단 운영

와이즈발레단이 다른 국내 발레단과 차별되는 점은 한국 최초 성인 취미 발레단인 스완스발레단 운영이다. 와이즈발레단의 지속적인 수익을 위해 2010년부터 취미 발레 클래스를 운영했던 김 단장은 취미 발레인들의 열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2016년 와이즈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파티 장면에 이들을 출연시킨 것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 토슈즈 테크닉(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춤추는 것)이 가능한 20여 명을 뽑아 스완스발레단을 만들었다. 스완스발레단은 주 2회 연습과 연 1회 전막 발레 정기공연을 올린다. 지난해 정기공연은 ‘라바야데르’였다. 그리고 올해는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남자 2명을 포함한 24명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와이즈발레단은 스완스발레단 창단에 이어 발레 메이트 페스티벌을 만들어 매년 개최하고 있다. 참가자가 매년 증가해 지난 6월에 열린 올해 페스티벌은 스페셜갈라 9팀 98명, 그랑프리 182팀 223명 등 총 321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김 단장은 “아마추어지만 무대에서 춤추고 싶어하는 취미 발레인들의 열정에 큰 감동을 받곤 한다. 게다가 취미 발레 시장이 넓어지면 발레 시장 자체가 넓어진다는 점에서 소중한 존재들이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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