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도시’ 속 예수] 시간은 강, 우리는 조약돌이다

2024. 9. 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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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지난여름 캐나다 로키산맥으로 떠난 가족 여행에서 우리는 많은 강과 시내를 보았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흐르는 물에 자갈과 돌멩이를 던지며 놀았다. 아이들이 돌멩이를 바위투성이 강바닥으로 던지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여행 내내 맴돌던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자크 픽의 ‘화이트워터(Whitewater)’ 가사도 일조했다. “시간은 강물, 너무 빨리 움직여/ 우리 몸의 강둑 너머로/ 시간은 강물, 얼마나 깊은지 몰라….” 시간은 강과 같다. 결코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곧장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흐름은 우리 모두를 데려간다. 우리가 좋아하든 말든.

강물에 돌을 던지며 놀던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돌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항할 수 없는 거센 탁류에 휩쓸려 내려가는, 우리는 조약돌이다. 시간이라 부르는 거센 물줄기가 떼어내 빚고 깎고 옮겨놓은 게 우리다. 그리고 언젠가는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 저 유체의 완력에 바스러지는 모든 돌처럼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전 3:20)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물에서 잠시 가라앉는 돌처럼 그렇게 쉬어 가기도 한다. 가끔 흐름이 잦아들면 우리는 한 자리에서 한 철을 보내기도 한다. 다른 돌들과 모둠(community)을 이루고 강물의 완력이 우리를 깎아내는 만큼이나 우리끼리 서로 부대끼며 그렇게 모양새를 빚어나간다.

그러다가도 물줄기가 너무 빠르고 거세지기라도 하면 우리는 집이라 부르던 돌 더미에서 밀려나 급작스레 하류로 옮겨지기도 한다. 우리는 눈 깜박할 사이에 그 강의 다른 장소에, 새로운 암석에 우리 몸을 박고서 또 한때를 보낼 준비를 한다.

나는 그 늦여름이 돼서야 이 은유가 모든 공동체에 똑같이 적용된다는 걸 깨달았다. 아내와 나는 같은 시냇물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그 강바닥 진흙에서 한 몸이 되어 지금까지 10년 동안(앞으로 수십 년 더!) 함께하며 하나의 더 큰 바위 더미가 된 두 개의 돌과 같다. 그동안 우리는 작은 바위 셋을 우리 몸에서 떼어냈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휘감아 도는 강물 가운데서 우리의 작은 바위 공동체를 함께 유지해 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영원히 지속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언젠가 이 강은 이 작은 우리 조약돌들, 우리 아이들을 흩어놓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다른 돌들을 만나 또 다른 바위가 될 것이다.

아마 80년 후 예전에 ‘맥크레켄 가족 바위 더미’라 불렸던 5중주단은 굵은 모래, 가는 모래가 되어 흩어질 것이다. 강물의 흐름에 맞춰 함께 춤추며 흘러가기보다는 강바닥 일부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1000년이 지나면 우리 후손 세대도 이 강을 따라 내려갈 것이다.

내가 강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신비한 기쁨을 느끼듯 강에서 나의 위치는 아이들이 흐르는 강물로 던진 돌만큼이나 잠정적이고 미약하다는 사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인다. 두 가지 중요한 이유로 나는 마음이 편하다.

하나. 나는 이 강이 고요하고 영원한 안식의 바다 어딘가에서 고요의 바다, 영원한 안식에서 끝날 것을 안다.(히 4:1~11) 아마도 내가 알고 사랑했고 끝내 여정 중에 헤어졌던 돌들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그곳에 데려다주었고 때로는 겹치기도 했던 각자의 연속 드라마의 기억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둘. 나는 강의 근원을 믿는다. 시간의 거센 흐름이 그저 우연이고 목적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힘에 맡긴다는 것은 절대로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강에는 근원이 있고 창조된 시작이 있으며 그 여정에 목적이 있음을 안다.

이렇게 흐르는 강물이니 여전히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그 여정에 평온과 위안이 있음도 안다. 이것은 내가 목적지가 있는 길 위에 있음을 아는 평온이다. 이는 아내와 아이들, 내가 사랑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 다만 우리가 그 근원을 믿고 목적지가 있음을 안다면 우리는 그 흐름에, 우리가 알게 될 가장 잔잔한 대양으로의 여행에, 무한히 좋은 새 땅에 닿게 될 여정에 즐거이 나를 맡길 수 있을 터이다.

브랫 맥크레켄
◇브랫 맥크레켄은 미국 TGC 편집장으로 사우스랜드교회 장로로 섬기고 있다. ‘힙한 기독교(Hipster Christianity)’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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