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할머니의 유쾌한 일상

정소진 2024. 9.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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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도 순정이 있다! 사진전 <여든 너머> 를 소개합니다.
「 장춘매 」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서 제일 넓은 땅을 소유한 장춘매 할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집터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다. 춤과 노래, 농사가 특기로 농사도, 마을 일도 “다 자신 있지 뭐. 다 잘해!”라고 호언장담한다. 20여 년간 부녀회장직을 맡으며 마을에 전기를 들여오고, 더덕 같은 새로운 농작물 기르는 법을 배워와 마을의 살림을 일으키기도 했다. “내가 밭농사만 지은 게 아니야. 자식이 다섯인데, 예전에 어렵게 살다 보니 학교도 잘 못 보내고 그랬어. 그래도 어찌나 다들 잘 컸는지. 나는 농촌 우수 마을로 상도 많이 받고, 재미있게 부녀회 일을 오래 할 수 있었어!” 춘매 할머니는 여느 날과 같이 오늘도 트랙터를 끌고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살림살이를 꼼꼼히 살핀다.
「 이숙자 」
신림면 입구에 있는 집에 사는 이숙자 할머니는 빨간색을 좋아한다. 그래서 머리카락도 장미처럼 빨갛게 염색했다. “벌써 집에 가게? 나 심심해. 꽃 좀 더 보고 가.” 할머니 집을 방문한 손님이라면 반드시 듣는 말. 집 대문의 아치는 장미 넝쿨이 빙 두르고 있고, 정원은 그야말로 유럽 저택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이국적인 수종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꽃도 가꾸지만 나 혼자서 춤도 춰.” 새빨간 전지가위를 들고 “한 해 피고 죽는 꽃들은 안 심어!”라며 한 송이 한 송이 정성으로 다듬는 할머니. 자식을 키워내고, 표고와 파프리카를 재배하고, 보따리 장사까지 한 세월을 뒤로하고 지금은 식물이라는 생명을 길러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 서월이 」
흙이 보이면 어디든 꽃씨를 심고 꽃을 가꾼다고 해서 ‘꽃씨 할머니’로 불리는 서월이 할머니. 시집온 후 눈물 마를 날 없었지만 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고 한다. “우리 애들이 그러더라고요. ‘엄마가 살았던 세상은 기가 막힌 세상이었다’고. 살면서 마음이 안 좋을 때는 꽃을 가꾸고, 꽃씨를 심고 또 심었어. ‘네가 자라서 피면 너는 예쁘지. 나는 꽃이 못 되지만 너는 꽃이니까 이렇게 예쁘다.’ 허구한 날 꽃 보며 중얼거리곤 했어.”집을 빙 둘러 코스모스를 심기 시작한 할머니의 마당은 어느새 알록달록 오색찬란하게 빛난다. “눈물도 말라붙은 세월들, 내가 그 모진 시간들을 견디며 어디다 의지했겠나 싶어.”
「 안호녀 」
신림면에서 나고 자라 팔십 평생을 마을에 바친 안호녀 할머니.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혹독한 세월을 보냈지만, 이 동네에 없던 새로운 씨를 받아 인삼 농사, 담배 농사를 지으며 척박한 환경을 일구고 자신만의 밭을 만들었다. 그리운 시절이 있냐는 물음에 “나는 그리운 시절은 없어. 먹고사느라 매일매일이 바빴으니까. 내가 일하고 싶을 때 하고, 일하고 싶은 만큼만 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좋아”라고 말하는 할머니. 할머니의 방은 아직도 옛 시절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커다란 자판의 전화기, 파리채, 노란 장판, 창호지 문. 문턱 앞에 앉아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텅 빈 평상을 바라보며 호흡하는 일. 이 또한 안호녀 할머니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다.
「 임영환 · 이금선 」
꽃무늬 조끼를 입은 이금선 할머니의 고향은 포항이다. 열아홉 살에 신림면으로 이사 와 이듬해에 결혼했다. 흥이 나면 즉석에서 노래하는 용암1리 동네의 내로라하는 가수다. “본래 나는 일만 하는 사람이야. 벼농사 짓고 콩 농사도 하고. 농사 다 지은 가을이 오면 기분이 좋지.”어여쁜 꽃분홍 셔츠를 입은 임영환 할머니는 벼농사를 비롯해 온갖 농사일의 달인이자, 이제는 셋밖에 남지 않은 최고령 친구와 마을 일을 살뜰히 챙기며 선한 온기를 전하고 있다. “시골에서 하는 농사는 다 지었죠. 벼하고 고추, 옥수수 같은 거.” 두 할머니는 60년 넘게 서로 의지하고 보듬으며 지내왔다. “우리는 평생 벼농사만 지으면서 벼 기르고 수확하고 먹고 우리끼리 평상에 앉아 놀고 먹는 게 재미였지. 이런 게 인생이야. 그리고 여든 먹어봐. 친구가 전부야!”
셀프 사진관 콘셉트의 촬영. 할머니들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순수하고 천전한 미소를 내비치셨다.

“가혹한 환경에서 화전을 일궈 생을 살아오며 산이라는 초록색 도화지에 밭이라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 자체가 예술의 씨앗이었습니다.”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 자리한 ‘할매발전소’ 소개 글이다. 1949년 설립된 황둔초등학교 창평분교였던 교정은 2022년 할매발전소 간판을 달고 동네 할머니들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할머니들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고무찰흙으로 귀여운 오브제를 만들곤 한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온 마을 할머니들과 그들의 애환이 쑥쑥 자라났을 ‘밭’에 집중한 개관기념 전시 〈Mother’s Mother_알아차림 전(田)〉은 할머니들의 생애사 기록으로 채워졌다. 신림 문화예술의 거점 공간으로 거듭난 할매발전소는 지친 사람들에게 할머니의 삶의 지혜와 위안을 전하고, 이름 없이 살아온 할머니에게 존중과 생기를 전하며 세대의 간극을 넘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가교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이 따뜻한 공간을 운영하는 팀은 ‘로컬리티:’다. 2019년부터 지역사회의 작고 고귀한 삶을 조명하고, 지역의 고유 색깔이 담긴 콘텐츠를 제작하는 팀이다.

셀프 사진관 콘셉트의 촬영. 할머니들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순수하고 천전한 미소를 내비치셨다.
셀프 사진관 콘셉트의 촬영. 할머니들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순수하고 천전한 미소를 내비치셨다.

영상과 디자인 작업을 비롯한 비주얼 디렉팅을 담당하는 김영채 디렉터, 문학을 중심으로 텍스트 콘텐츠를 담당하는 석양정 작가, 문화예술기획과 지역민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심지혜 학예사로 이뤄져 있다. “10년 전에 일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사이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싶은 지역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품고 각자 살고 있는 지역에서 콘텐츠를 찾다가 자연스럽게 로컬 기획자로서 삶을 이어가게 됐습니다.”세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처음 지역 콘텐츠를 기획할 땐 밥상과 옥수수, 학교 같은 유형 자원이 먼저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만히 마을을 들여다보니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 그중에서도 할머니들이 이 지역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그렇게 다시 들여다본 마을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는 할머니였다. “마을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할머니들이 우주의 원리를 꿰뚫고 있었고, 할머니가 일군 텃밭도 자연 예술이자 저마다의 철학과 안목이 담긴 창작으로 보였습니다.”김영채가 말했다. 지역에서는 도시 발전을 위해 노인이 당장 해결돼야 할 문제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액티브 시니어’와 조부모 세대가 즐기던 문화를 좋아하는 2030 청년들의 트렌드를 일컫는 ‘할매니얼’ 같은 문화 현상이 존재하는 한편, 여전히 노인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로컬리티:가 할머니들의 작업을 진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저 할머니의 삶 자체, 존재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소통이 이어진다면 지역에 사는 노인 세대가 더욱 능동적인 주체로서 지역 이야기를 풍부하게 전하는 구성원으로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심지혜의 말이다.

셀프 사진관 콘셉트의 촬영. 할머니들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순수하고 천전한 미소를 내비치셨다.

로컬리티:는 2021년 할머니가 차린 밥상을 통해 생과 삶을 엿보는 세미 다큐멘터리 영상 〈할머니의 잘 지은 밥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로컬 콘텐츠 제작활동을 확장해 왔다. 그 일환으로 올해의 기획 전시 〈내 이름에게: 나의 이름에게 보내는 헌사〉가 9월 13일부터 16일간 할매발전소에서 열린다. 전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여든 너머〉는 “쭈글쭈글해서 사진 찍기 싫어”라면서도 예쁜 꽃과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 앞에서는 사진을 먼저 청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피어난 궁금증, ‘할머니가 남기고 싶은 자신의 사진은 어떤 모습일까?’에서 출발했다.

셀프 사진관 콘셉트의 촬영. 할머니들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순수하고 천전한 미소를 내비치셨다.
셀프 사진관 콘셉트의 촬영. 할머니들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순수하고 천전한 미소를 내비치셨다.

피사체는 로컬리티:와 사진가 김상곤, 브랜드 ‘아보포포’ 대표이자 스타일리스트 정소정의 시각으로 포착한 신림면 토박이 할머니 여섯 명. 밭농사가 특기이고 부녀회장 20년 경력의 장춘매, 꽃씨 할머니라 불리는 서월이, 집 마당이 이국적인 수종으로 가득한 이숙자, 담배 농사와 인삼 농사를 지어온 안호녀, 18세에 신림면으로 시집와 둘도 없는 친구로 수십 년을 지낸 임영환 · 이금선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고운 화장과 예쁜 옷으로 할머니 각자의 개성과 직업을 살려 화보가 완성됐다. 의상은 스타일리스트 정소정이 직접 마련한 것들이다. 촬영을 진행한 김상곤 사진가는 할머니 화보 촬영 날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본격적인 스타일링을 앞두고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위해 직접 리모컨을 눌러 찍는 셀프 인물 촬영을 마련했죠. 머리와 화장이 안 된 상태라 그런지 다들 서로에게 촬영을 미루시더군요. ‘지금 몰골이 너무 흉해! 안 찍어!’라며 투정을 부리다가도 막상 리모컨을 쥐여드리면 하하호호 촬영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그러곤 덧붙였다. “촬영 전에 촬영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신림면으로 향했어요. 방문하는 집마다 할머니들이 자꾸 먹을 걸 내어주셨죠. 서월이 할머니는 예쁘게 참외를 깎아주셨어요. 장춘매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 마련한 자리에 고생하는 스태프가 안쓰러웠는지 국수를 끓여주셨죠. 마지못해 화장대에 앉으시곤 “사진 찍을 테니까 나 영정사진 하나만 찍어줘”라며 5만 원을 손에 쥐여주셨어요. 그 사진은 곱게 다듬어 할머니께 전달했습니다.”여러 차례 수술과 건강 악화로 수척해진 장춘매 할머니는 사진 찍는 당일에도 밭일을 핑계 삼아 시간을 미루셨다고 한다. 김상곤은 할머니의 이름을 빛내는 〈여든 너머〉를 촬영하며 다시 사진가라는 직업에 대한 가치와 애정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셀프 사진관 콘셉트의 촬영. 할머니들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순수하고 천전한 미소를 내비치셨다.

여기에 팀 로컬리티:가 한 마디 더했다. “그날 스태프들은 모두 귀염둥이 어린 손주가 돼 할머니들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게 해드렸고, 세상에서 가장 밝게 웃는 할머니 사진을 남겼습니다.” 길도, 글도, 전기도, 이름 석 자도, 어느 것 하나 쉽게 허락되지 않아 깜깜하기만 했던 시절을 지나 여든이 넘어 한 글자 한 글자 써보는 할머니들. 촬영 날 모여서 ‘꺄르르 꺄르르’ 떠들며 “너 화장한 김에 영정사진 찍어! 난 다음에 찍을래”라던 할머니들. 가슴 철렁하면서도 한평생을 뜨겁게 살아냈기에 할 수 있는 말. 평생 무언가를 키워온 할머니가 생애에 걸쳐 일궈낸 숙련된 기술과 자연을 대하는 지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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