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 연금'으로 전락할 것" 정부 연금개혁안에 뿔난 민주당
[류승연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국가가 국민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것을 법률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밝힌 가운데 8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시민들이 연금 상담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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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가 공개한 국민연금 개혁안은 월 소득 대비 납부해야 할 보험료를 뜻하는 보험료율, 수령할 연금을 은퇴 전 소득과 비교한 소득대체율을 각각 13%, 42%로 명시했다. 또 보험료율을 세대별로 다른 속도로 높이는 '세대별 차등안'과 각 세대가 마주할 소득대체율을 재정·인구 여건에 따라 달라지도록 하는 '자동 조정 장치' 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정부의 연금개혁안을 바라보는 야당 의원들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야당 의원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불신'이다. 이들은 정부·여당에 연금개혁을 향한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 중이다. 유례 없는 세대별 차등안과 보험료율이 높은 나라를 위주로 도입된 자동조정장치 모두 탐탁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정부가 내놓은 안은 어디까지나 '초안'에 불과하다. 22대 국회에서는 여야정 협의를 거쳐 최종본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안을 지지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필두로 한 야당들은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정부안에 대한 야당의 반대 입장을 쟁점별로 모아봤다.
[쟁점 ①] '구조개혁' 때문에 파투났는데... 대안이 없다?
"결국 정부·여당은 모수개혁을 연내에 완료하고 구조개혁은 그 이후에 하자고 얘기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미 21대 국회에서 그런 순서로 논의를 했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최종안을) 거부했잖아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박 의원은 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복지위 소속 의원들과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을 향한 뿌리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게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은 '다 된 밥'에 가까웠다. 여야는 보험료율 인상에 합의했고, 막판에 소득대체율에 대한 이견까지 좁히며 모수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각각 13%, 44%안에 의견 접근을 이뤘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돌연 입장을 바꿨고 연금개혁이 물건너갔다. 2022년 10월 첫 회의부터 약 1년 7개월간 유지됐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도 성과 없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마련한 연금개혁안에는 정작 '구조개혁안'이 사실상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앞서 기자회견 자리에서 강선우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21대 국회 말에 (마련된) 연금개혁안을 22대 국회로 미룬 게 '구조개혁안을 함께 마련하자'는 것 때문이었는데 구조개혁이라고 분류될 만한 내용이 이번 정부안에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분석은 다르다. 국민의힘 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인 박수영 의원은 지난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안을 보면 모수개혁뿐 아니라 구조개혁도 들어 있다. 구조개혁은 복지부 같은 한 부처에서, 또 국회 복지위 등 한 위원회로 (논의)될 사안이 아니"라며 야당에 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다만 박 의원은 "구조개혁안이 너무 구체적이지 않다"는 취재진 지적에 "그럴 수밖에 없다. 복지부가 남의 부처 사안까지 바꾸자고 강하게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바로 그게 국회에 상설 특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라고도 부연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당장 '연금특위 구성'에 부정적이다. 강 의원은 "내용을 먼저 결정하고 (기구를) 꾸리는 게 순서"라며 잘라 말했다.
[쟁점 ②] 21대 국회의 44% 소득대체율, 42%로 깎았다
"연금개혁안은 21대 국회가 마련한 사회적 합의를 '출발점'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진성준 정책위의장(5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
21대 국회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두고 기나긴 줄다리기를 했다. 당초 국민의힘은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되, 2028년 기준으로 40%으로 정해진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반면 민주당은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대표단이 내린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 판단을 지지하며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를 내세웠다. 그러다 막판에 국민의힘이 제안한 소득대체율 44% 안을 수용했고 논의의 간극이 좁혀졌다. 21대 국회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번 정부안은 소득대체율 42%를 못박았다. 21대 국회의 여야 합의가 마치 없던 일이 됐다. 오히려 43%였던 국민의힘 당초 안보다 소득대체율이 후퇴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앞선 기자회견에서 "(소득대체율의) 후퇴라기보다는 재정의 안정성을 감안한 불가피한 성격이라고 본다"며 "(국민연금을) 많이 주면 좋겠지만 소득대체율을 44%로 유지하면 (연금고갈 시점이 개혁 전보다 겨우) 9년 연장된다는 결과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를 둘러싼 민주당 반발이 거세다. 앞서 민주당 소속 국회 복지위 의원들은 "정부 모수개혁안은 21대 연금특위 공론화 결과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특히 42%는 올해 적용되는 소득대체율로, 정부 개혁안은 소득대체율 하향의 중단일 뿐 소득보장 강화의 의미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연금 평균 가입기간인 22년간을 가입한 평균소득자가 기존 소득대체율 40%를 적용 시 월 66만 원을 받을 예정이었는데 정부안으로 소득대체율 42%를 적용하면 월 69만 3000원 받게 된다"며 "3만 3000원 인상에 그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쟁점 ③] 자동 조정 장치는 '연금 삭감'을 위한 꼼수?
"자동 조정 장치는 인구·경제 여건을 자동적으로 반영해 연금 삭감을 유도하는 장치입니다."
'자동 조정 장치'는 지금까지 없던 논쟁거리다. 이는 기대 수명, 인구 구조 변화 등 연금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변화함에 따라 연금수급자가 받게 될 연금액을 자동 조정하는 장치다. 가령 어느 시점에 기대 수명이 늘어 연금을 받는 사람 수는 증가했는데 저출산으로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줄어들면 자동으로 연금수급권자가 받을 연금액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24국이 연금제도에 자동 조정 장치를 활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높은 소득대체율'을 고집해왔던 민주당은 정부가 재정 안정을 위한 '꼼수'로 자동 조정 장치를 들고나왔다고 보고 있다. 앞서 민주당 소속 국회 복지위 의원들은 "장치의 기본설계가 동일한 국민연금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2030년 신규 수급자는 생애총급여의 16.8%, 2050년 신규수급자는 17%가 삭감된다"며 "2024년 기준으로 월평균 수령액이 약 63만 원인 '용돈 연금' 수준 상황에서 더 깎으면 노후대비에 턱없이 부족한 '푼돈 연금'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자동 조정 장치'로 인한 연금 삭감은 청년세대로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며 "보험료 수준이 20%에 육박한 성숙한 연금제도를 갖고 있는 국가에서 도입된 장치로 우리나라는 시기상조"라고 비판했다. 다만 박주민 의원은 "정부가 개인별로 연금을 얼마나 삭감할지 그 수치가 불투명한 만큼 정부의 구체적인 안이 확인되면 검증할 것"이라고 밝혀둔 상태다.
[쟁점 ④] 세대별 '차등'인가 세대별 '갈라치기'인가
"청년들에게 전혀 유리하지 않은 안을 제시하면서 청년에게 유리한 것처럼 얘기하는 건 오히려 문제제기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 김남희 민주당 의원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또한 여야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지점이다. 납부해야 할 보험료율을 20대부터 50대까지 다른 속도로 인상하자는 내용이다. 정부안대로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한다고 가정하면, 50대 가입자는 현행 9%에서 매년 1%포인트씩 보험료율이 늘어나 4년 뒤면 13%를 먼저 달성하게 된다.
반면 40대는 0.5%포인트, 30대는 0.33%포인트, 20대는 0.25%포인트가 매년 인상된다. 결국 20대가 13% 보험료율을 달성하기 위해 1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부는 '세대별 형평성'을 위해 이 장치를 도입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세대별 갈라치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남희 의원 역시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이 "실제로 청년 세대에게 유리한 제도인지, 따져봐야 할 문제"라며 "이 제도는 자동 조정 장치와 같이 등장했다. 장기적으로 연금 수급액이 깎이는, 오히려 청년에게 유리하지 않은 방안인데도 (보험료율 측면에서) 유리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려는 '꼼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제도로 연금 수급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은 가입한 후에 내가 미래에 받게 될 연금을 알 수 있지만 자동 조정 장치가 도입되면 앞으로의 경제상황과 인구 구조에 따라 얼마나 연금이 깎일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도 "세대간 차등 인상안이 세계적으로 선례가 없는 이유는 조세 내지는 기본적인 사회보장 제도가 소득에 따라 차등을 두는 데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태어난 해에 따라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다르게 조정하겠다는 건 사회보장제도 원칙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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