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는 팬과 다투고, 남은 일정 살인적…홍명보호 '상암 쇼크'

송지훈, 오욱진 2024. 9. 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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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의 경기를 0-0 무승부로 마친 직후 축구대표팀 주장 겸 에이스 손흥민이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김종호 기자

홍명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축구대표팀이 출항 직후부터 자중지란에 빠졌다.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상대하는 팀 중 최약체로 여긴 팔레스타인과의 맞대결에서 무득점 무승부에 그친 이후 선수단 안팎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 한국은 지난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96위)와의 대회 B조 1차전에서 졸전 끝에 0-0으로 비겼다. 상대가 3차 예선에 출전한 게 처음인 데다 홈팬들의 일방적인 성원을 등에 업고 싸우는 만큼 다득점 승리가 예상됐지만, 결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생제르맹), 황희찬(울버햄프턴) 등 빅 리그 무대에서 활약 중인 톱클래스 공격수들을 줄줄이 투입하고도 골 맛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상대의 강한 압박에 밀려 볼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쩔쩔매거나, 위력적인 역습에 아찔한 슈팅을 허용하는 등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경기 전 출전 선수를 소개할 땐 홍명보 감독의 이름이 호명되자 일부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이후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다보니 전광판에 홍 감독의 얼굴이 비칠 때마다 야유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경기가 끝난 뒤엔 6만 명에 육박하는 관중 모두가 한 목소리로 ‘우~’하며 적극적으로 실망감을 표시했다.

수비수 김민재가 굳은 표정으로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경기 후 홍명보 감독과 주축 선수들은 공식 기자회견과 믹스트존 인터뷰를 통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졸전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시각에 온도 차가 있었다. 홍 감독은 자신을 향한 야유에 대해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그런 장면들을 견디는 게 쉽지 않지만, 제가 앞으로 견뎌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부정적 여론이 당분간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대비하겠다는 뉘앙스로 여겨졌다.

수비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는 팬들의 야유에 대해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경기 종료 직후 자제를 당부하는 듯한 제스처를 반복했다. 그라운드 가까이 있던 일부 팬들과는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는 “우리가 못 하길 바라는 분들이 계셔서 아쉬운 마음에 (자제를) 당부한 것”이라며 낯선 경기장 분위기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는 “우리가 경기 중에 보낸 야유는 거짓으로 일관하는 대한축구협회와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저버린 (홍명보) 감독에 대한 항의 표시”라면서 “김민재 선수가 원치 않는 결과에 대한 아쉬움에 오해가 더해지며 그런 발언을 한 것 같다. 다만, 표현의 방법과 장소는 매우 아쉽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과의 원정 경기를 0-0으로 마친 직후 마치 승리한 것처럼 기뻐하는 팔레스타인 선수들. 김종호 기자

주장 겸 리더 손흥민은 중간자적 입장을 취했다. 경기 후 김민재의 행동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팬들과 갈등을 빚는) 민재와 같은 경우가 다시 나오면 안 된다. 홈 경기에서만큼은 우리가 우리의 적을 만들면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홍명보 감독을 향한 야유에 대해서는 “(감독 선임과 관련해) 선수들이 결과를 바꿀 순 없다. 감독님이 결정된 이후 우리도 (홍명보) 감독님의 옷을 입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플레이메이커 이강인은 보다 적극적으로 홍 감독을 감쌌다. “오늘이 감독님과 함께 하는 첫 경기인데 응원이 아닌 야유로 시작한 건 매우 안타깝다”면서 “선수들은 모두 100% 감독님을 믿고 따른다. 우리를 이기는 축구, 좋은 축구로 이끌어주실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명보호 첫 경기에 대해 주축 선수들이 제각기 다양한 목소리를 낸 가운데, 선수단은 6일 저녁 인천공항에 집결해 다음 경기 장소인 오만 무스카트로 떠났다. 한국은 오는 10일 오후 11시 오만과 원정 2차전을 치른다.

손흥민은 팔레스타인 선수들의 육탄 방어에 가로 막혀 골 맛을 보지 못 했다. 김종호 기자

오만전을 포함해 향후 홍명보호가 치를 3차 예선 일정은 가시밭길로 가득하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이번 대회 10경기를 치르며 총 6만190㎞를 이동해야 한다. 원정경기를 위해 중동 현지에 도착한 직후엔 낯선 환경과 5~6시간 정도의 시차에 적응해야 한다. 경기 중엔 밀집수비, 침대축구 등과 싸워야 한다.

살인적인 일정을 감안한 축구협회는 요르단과 원정 3차전을 치른 뒤 국내로 돌아와 이라크와 홈 4차전을 갖는 다음 달에 선수단과 축구팬, 미디어를 함께 실어 나를 전세기를 띄우기로 했다. 이를 위해 8억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한다.

이와 관련해 축구협회 관계자는 “홍명보 감독은 3차 예선 일정이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 (장거리 이동에 따른) 선수단의 체력 고갈 및 부상 위험성 증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선수들의 경쟁력을 유지할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후반 교체 출장한 오세훈(왼쪽)이 헤딩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팔레스타인전 후반전에 시도한 회심의 슈팅이 빗나가자 이강인이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김종호 기자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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