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그림은 대신 그려도 세상을 관찰할 순 없다” [더 하이엔드]
독일 회화 작가, 요한 판크라트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관찰한다.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짓는 세상에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화두가 던져진다. 그는 캔버스 앞에서 성실히 붓질하며 그림 그리는 것이란 곧 ‘생각하는 것’이라 여긴다. 사유하는 인간, 통찰하는 인간 등 캔버스를 채우는 그림에는 인공지능이 구사할 수 없는 상상력과 호기심이 가득 담겼다.
관찰자의 시선
판크라트는 관찰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세상이 움직이는 현상에 관심이 많다. 예술가의 과정적 사고와 작업 방식은 문제를 탐구하고 답을 찾아 나가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2018년부터 이어온 연작 ‘추상적 철학자들’(Abstract Philosophers)’은 유명한 철학자의 얼굴을 그리고 구성의 대부분을 추상적인 형태로 채운 회화 작품이다. 인간의 정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최근작인 AI 시리즈에서 이어진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이룩한 문화·철학과 급격히 팽창한 AI의 존재를 나란히 놓고 인간과 기계 간의 현재 담론을 보여주는 것이다.
Q :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나는 세상에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그림에 반영한다. AI는 우리의 지식을 관찰하지만, 우리의 환경을 관찰하지는 않는다. 사회의 현상을 이해하고 의미의 꼭지점을 이어내는 통찰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인간이 되는 것은 그림 그리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며 예술이란 개인의 삶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존재다.”
Q : 회화 작업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주로 아크릴 또는 유화로 그림을 그린다. 때로는 두 가지를 혼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보통 사진과 드로잉을 수집하고 이를 컴퓨터로 콜라주한 뒤 그림을 그린다. 회화가 나를 매료하는 점은 고유한 시간을 지닌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쉴 새 없이 업데이트되는 사진들과 달리, 그림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빠른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회화는 그 반대라는 거다. 천천히 완성되는 만큼 관람자가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림 속 그림
작가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닌 사고방식의 과정과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미술사를 기반으로 인물·정물·풍경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화면을 구성한다. 이는 종종 ‘그림 속의 그림’처럼 초현실주의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선보인 초상화 시리즈는 AI와 인간의 사고 작동 방식을 드러냈다. 화면 안에는 어떤 초상화가 벽에 걸려 있는데, 모자이크처럼 잘게 조각난 타일들이 모여 사람의 얼굴을 구성한다. 벽 앞에는 인물과 관련된 정물과 상황이 펼쳐진다. 판크라트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 인식하는 사고 과정과 통찰력은 기계와 다른 지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Q : 이번 키아프 서울에서 전시하는 작품은.
“추상적 철학자들 시리즈와 최근작인 AI 이미지 초상화 작품을 선보인다. 타일 속 이미지는 AI와 인터넷을 상징한다. 각 조각은 추상적이지만 이를 하나로 모아놓으면 하나의 사람의 얼굴이 형성된다.”
Q : 작가로서 AI가 그림을 그리거나 이미지를 생성하는 현 상황은 어떤가.
“나도 AI를 통해 이미지를 생성해 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예를 들어, 깨진 꽃병의 이미지를 원할 때도 AI는 항상 멀쩡한 꽃병 이미지를 생성해 냈다.”
Q :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나는 AI를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그건 내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관찰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내 그림이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 요한 판크라트(Jochen Pankrath) 작가는…
「 1981년 독일 출생. 뉘른베르크 예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2009년부터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독일 알러스 갤러리(2023), 보데 갤러리(2021), 우나 미술협회(2021), 뉴갤러리(2019) 등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독일중앙은행, 알브레히트 뒤러 파운데이션, 뉘른베르크 미술관 및 한국 구하우스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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