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차기 총리' 출사표 내민 고이즈미…"야스쿠니 참배 적절히 판단"
일본의 차기 총리 유력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43) 전 환경상이 6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선언을 하며 자위대 설립 근거 명기 등을 위한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 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일본은 패전 후 '평화 헌법'으로 불리는 현재의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적이 없다.
이날 회견장에 푸른색 넥타이와 납치 문제를 상징하는 블루 리본 배지를 달고 나타난 그는 1시간이 넘도록 회견을 진행하며 헌법 개정의 필요성과 경제개혁 등을 통한 ‘강한 일본’으로의 회귀를 강조했다. 자민당은 오는 27일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가 되는 구조로, 이번 자민당 선거엔 그와 함께 여론조사 1위를 다투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전 자민당 간사장 외에 고노 다로((河野太郎·61) 디지털상,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49)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 6명이 출마를 선언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郎·82) 전 총리의 차남인 그는 부친의 뒤를 이어받은 세습 정치인으로 꼽힌다. 28살에 정계에 입문해 환경상을 지내면서도 정치색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았던 그는 이날 출마의 변을 통해 보수색을 드러냈다.
그는 모두 발언에서 “전후 처음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싶다”며 개헌 의지를 밝혔다. 자위대의 근거를 헌법에 명기하자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영해, 영공, 영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자위대, 자위관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전국에 재해가 발생해 현장에 가는 자위대, 자위관은 우리 헌법에 적혀있지도 않다.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 헌법에는 자위대 설립 근거 자체가 명시돼 있지 않은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방위비 증액도 주장하며 “70년간 한 번도 국민 목소리를 듣지 않은 전후(戰後) 정치를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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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참배 부인 안 한 고이즈미
세계 2차 대전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총재가 된 이후에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부인하지 않은 것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해 정상이 오가는 '셔틀 외교'를 재개하는 등 개선 흐름을 타고 있는 한·일 관계는 물론, 대만 해협을 놓고 충돌 중인 중국과도 외교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사안이다.
그는 “지금껏 매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이어왔다”고 설명한 뒤 “앞으로에 대해선 적절히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정계에 입문한 뒤 한국 광복절이자 일본의 종전일인 8월 15일에 야스쿠니 참배를 해왔다. 그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재임 시 야스쿠니 참배를 반복해 외교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참배 이유’를 길게 설명하기도 했다. “어느 나라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 감사와 존숭(尊崇), 그리고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평화에 대한 생각, 이런 것을 마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추진해오던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적극성을 드러냈다. 그는 “납치 문제 해결은 더는 미룰 수 없다. 여태 해온 접근법(어프로치)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연배가 같은 또래(同年代) 톱끼리, 마음을 열고 직접 마주할 적절한 기회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1984년생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자신이 같은 40대인 만큼 만나서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세습’ 지적도…청문회 같았던 회견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결혼 후 대다수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과 달리, 부부여도 다른 성을 쓸 수 있도록 하자는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자민당 내 주류 의견이 아니지만, 평소 동성혼과 부부별성제에 찬성해왔던 만큼 총리가 되면 제도 도입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또 자민당의 보궐선거 연패를 불러왔던 정치자금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됐던 의원을 정부 요직에 채용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경제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강한 경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총재 선거 첫 출마지만, 그의 회견은 청문회장을 방불케 했다. 10여 년 넘게 총리 후보로 거론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쏠린 탓이다.
그는 환경상으로 재직할 당시 환경 문제에 대해 국제회의에서 '펀(fun) 쿨(cool) 섹시(sexy)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날 회견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다. “발언이 가볍다는 지적과 함께 각료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기도 했다”는 말에 그는 “반성한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확실히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 뒤를 이은 세습 정치 지적도 나왔다. 그는 이날 출마 선언과 함께 ‘다양한 일본 사회’를 만들겠다고 발언했는데, “세습이야말로 일본이 다이나미즘(dynamism)을 잃어버리게 된 하나의 원인이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그러자 그는 “15년 전 처음 선거에 나왔던 때부터 계속 들었던 지적”이라며 “그래도 일본을 좋게 만들고 싶다, 정치 세계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알아줄 수 있도록 각오를 보여줄 수 있다면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자신의 노력을 강조했다. G7(주요 7개국) 등 국제무대에서 해외 정상과 외교전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질문도 이어졌는데, 그는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최고의 팀을 만들어 각국 리더와 마주할 각오가 있다”고 답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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