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외무장관 등 내각 대대적 물갈이…젤렌스키 속내는

박형수 2024. 9. 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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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개전 이래 최대 규모로 내각을 개편하며 전열 정비에 나섰다. 특히 전쟁 내내 국제사회와 소통 창구 역할을 하며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유럽연합(EU) 가입과 무기 지원을 호소해온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이 해임돼 서방 동맹국을 놀라게 했다. 야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정부 요직을 측근과 충성파로 채우며 권력 집중화를 본격화하고 있다며 “서커스 같은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이날 우크라이나 의회가 안드리 시비하 신임 외무장관을 포함해 법무장관, 국토개발장관 등 9명의 새 장관 임명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래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이뤄진 가장 큰 개편이라고 전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전 외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개전 이래 최대 개각…서방, 쿨레바 해임에 주목


젤렌스키는 신임 장관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강조하며 “정부가 모든 부분에서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각자 자리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신속하게 만들라”고 촉구했다. 젤렌스키가 소속된 여당인 국민의 하인당에서도 “정부 각 조직에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며 이번 개각 배경을 설명했다.

가장 논란을 일으킨 인사는 우크라이나 최장기 외무장관인 쿨레바의 해임이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쿨레바는 전쟁 기간 내내 미국‧EU 지도부와 소통하며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한 서방의 군사 지원을 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쿨레바는 사직서를 제출하기 직전인 지난 3일에도 CNN과 인터뷰에서 서방이 지원한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사용 제한 규정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에 있는 군사 목표물을 공격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습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서방 동맹국이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쿨레바의 해임에 EU가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유럽 지도자에게 가장 친숙한 우크라이나 관료가 사라진 것은 지난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쿠르스크를 침공한 이후 두 번째 놀라움”이라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쿨레바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을 위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레느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EPA=연합뉴스

야당 “권력 집중 위한 회전문 인사”


야당은 이번 인사가 젤렌스키의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대통령은 새로움을 강조하지만 정작 정부 요직에 대통령 최측근과 충성파만 채워넣은 회전문 인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젤렌스키와 대통령실에 의한 체계적인 권력 집중화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정치 분석가 예브한 마흐다는 “이번 개각으로 대통령실 권한이 커지면서 의회와 내각의 역할은 축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폴리티코는 쿨레바의 해임에도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전직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는 폴리티코에 쿨레바가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오랜 기간 불화해왔고 이로 인해 축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쿨레바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아날레아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과 원활히 소통해왔다”면서도 “그가 300% 충성했다 해도, 대통령실 입장에선 자기 사람이란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 소통 채널을 맡길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의 오른쪽에 앉아있는 대통령실 비서실장 안드리 예르마크. AFP=연합뉴스


장기화된 전쟁에 피로와 분노를 느끼는 국민 정서를 달래기 위한 수단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키이우의 여론조사 기관 KIIS의 대표이사인 안톤 흐루셰츠키는 “전쟁 중 국민들이 느끼는 정부에 대한 분노를 풀어줄 유일한 방법은 선거 대신 정부 관리를 바꾸는 것”이라고 로이터에 설명했다. 젤렌스키는 지난 5월 대통령 임기가 끝났지만 러시아 침공 이후 계엄령을 근거로 대선 실시를 중단하고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 중이다.


미국 향한 우크라 지원 호소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내각 교체가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인 미국의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회의적이다.

매체는 젤렌스키가 전쟁 중에 내각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면서 “전쟁 승리가 우크라이나의 최우선 목표”란 사실을 미국에 강조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촉구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젤렌스키는 이달 말 미국 방문을 계획 중이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종전 계획을 전달하고,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이를 공유하겠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월에는 제2차 우크라이나 평화회의 개최도 추진 중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자리에 새로 임명된 시비하 외무장관이 동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ABC 방송은 시비하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예르마크와 긴밀하게 손발을 맞춰왔고 전임자인 쿨레바와는 성향이 매우 다르다”며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강경파”라고 전했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의 월터 E. 워싱턴 컨벤션 센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과 함께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젤렌스키는 서방에 무기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오는 6일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 회의에 참석한다고 독일 매체 슈피겔이 보도했다.

한편 이날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CNN과 인터뷰에서 “쿠르스크 공격 이후 적(러시아)의 위협이 줄어들었다”면서 러시아 본토 침공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압도적인 병력 우위에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무기 지원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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