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이리언'이 비정규직 청년에게 더 가혹한 이유
[고광일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이하 '로물루스')는 경제적인 영화다. SF/호러 장르의 금자탑을 세운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SF/액션 영화의 기준을 마련한 제임스 캐머런의 < 에이리언2 >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시리즈 중 3편 이후는 용광로에 집어넣어야 할 것 같은 <터미네이터>, 감독에게 빨간약을 먹이고 싶은 <매트릭스>처럼 시리즈를 관에 못 박는 시도가 아니라 평단과 팬들의 지지에 힘입어 최대 동메달은 기대할 수 있는 수작의 자리에 올랐다.
<로물루스>는 영화 팬을 넘어 전 세계적인 대중문화의 밈으로 자리 잡은 에이리언의 대표적인 이미지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받고 살아 숨 쉰다. 재빨리 달려들어 얼굴을 뒤덮고 촉수를 목구멍으로 집어넣는 페이스허거, 격한 요동 끝에 갑자기 가슴을 뚫고 나오는 체스트버스터. 그리고 위협적으로 이중 구강 구조를 드러내는 제노모프까지. 원작을 아는 팬에게는 반갑고, 원작을 모르는 신규 유입 팬에게는 클래식의 품격을 보여주는 공포스러운 시그니처 무브가 적재적소에 도사리며 관객을 노린다.
▲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
ⓒ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
<로물루스>의 주인공들은 웨이랜드-유타니의 식민지행성인 잭슨의 별에서 착취당하는 비정규직이다. 1년에 단 1분도 태양이 뜨지 않고 용암이 넘실대는 가혹한 환경에 전염병까지 창궐하는 행성. 주인공 레인은 약속된 노동시간 1만 2000시간을 채우고 이바가로 전입을 요청한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이렇다 할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할당 시간이 2만 4000시간으로 늘었다며 전입을 거부한다.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 준수되는 곳이었다면 레인은 별 탈 없이 동생이자 합성 인간인 앤디와 함께 이바가 행성으로 떠났을 것이다. 1편처럼 별일 없이 귀환하던 도중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미지의 신호를 받아 확인하러 미지의 행성으로 향하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2편처럼 개척 기지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러 간다는 임무 수행 때문에 미지의 공포를 맞닥뜨린 게 아니다. 레인의 상황과 큰 차이가 없는 친구들도 오직 잭슨의 별을 떠나기 위한 이유로 별다른 선택지 없이 맨몸으로 위험지대에 내몰린다.
어떻게 보면 <로물루스>의 배경은 기존작품보다도 더 가혹하다. <에이리언>의 갈등은 공동체 외부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 에이리언 2 >는 내집단(인간)과 외집단(에이리언) 사이에 전면 대결로 확대됐다. 어쨌든 내집단 내에서는 나의 생존이 확보된 상황이다. <로물루스>는 에이리언과 마주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생존이 불확실하다. 생존(잭슨의 별에서 탈출)을 위한 생존(로물루스에서 탈출)이란 이중구조는 주인공들을 더 팍팍한 환경으로 내몬다.
어떤 안전장치도, 사회적 위치나 증명도 없는 청년들이 로물루스에서 만난 합성 인간이자 과학 장교 룩은 에이리언에서 추출한 검은 물질을 회사로 돌려주어야만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에이리언이 목숨을 노리고 덤벼드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검은 물질을 회수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룩은 닫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동등한 위치거나 적어도 비슷한 계급이었던 리플리와 애쉬, 리플리와 비숍과는 다르다. 체스트버스터가 가슴을 뚫고 나온 지 약 40년이 지나는 동안 사회는 청년들에게 바라는 게 많아졌고 더 냉혹해졌다.
▲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
ⓒ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
스타워즈 시퀄의 문제는 어쩌면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과 주인공의 성별 빼고는 차이가 없던 <깨어난 포스>부터 잉태됐을지 모른다. 후속편인 <라스트 제다이>는 제다이가 선택받은 혈통이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기존 시리즈와 차별화를 꾀했지만, 루크 스카이워커의 급격한 캐릭터 변화 등으로 오랜 팬들의 강력한 반발에 시달렸다. 갈팡질팡하는 시리즈를 마무리하기 위해 결국 혈통으로 복귀하고 누구의 호응도 얻지 못한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깨어난 포스>부터 유예된 실패였을지 모른다.
이는 호평 받는 <로물루스>에서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긍정적인 지점은 <로물루스>가 동시대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리플리와 뉴트, 힉스, 비숍이 공동체를 구성했던 < 에이리언 2 >를 계승한 부분은 현대적으로 각색됐다. 쌍둥이형제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결국 서로 치고받던 신화적 이야기처럼 <로물루스>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이들(남매 케이와 타일러, 모자 케이와 오프스프링)은 끔찍한 결말을 피하지 못했다. 반면 혈연은커녕 종족조차 다르지만, 정서적 유대감으로 맺어진 가족인 레인과 앤디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합성 인간에 대한 시각 변화는 극적이다. 진짜 목적과 정체를 숨기고 승무원들을 위험에 몰아넣은 악역인 1편의 애쉬, 처음에는 의심을 받았지만 마지막까지 진심으로 리플리를 도왔던 2편의 선역 비숍. 기존작품들은 선악의 구별이 확실했지만 <로물루스>의 앤디는 다르다. 입력되는 데이터에 따라 능력이 변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최후의 순간 선택의 기준이 되는 지향점도 변하게 된다. 챗GPT 같은 AI가 본격적으로 생활에 스며드는 상황에서 합성 인간의 이런 변화는 21세기적 공포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대로 끝나는 게 가장 깔끔하겠지만(최근 보도에 따르면, < 에이리언 1 > 1년 전 지구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한다 - 기자 말), 죽은 리플리도 복제로 살려내고 우주미아가 된 제노모프도 건져낸 영화사가 그럴 가능성은 작다. 1, 2편의 명장면까지 전부 오마주했는데 또 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지만, 완벽한 유기체(Perfect organism)가 선사하는 끔찍하게 놀라운 이야기 다시 한번 관객들의 가슴팍을 뚫고 나와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만들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