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볼피아나만 있었다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대한축구협회 철학 및 게임모델을 고려할 때 (홍명보 감독의) 경기 스타일을 보면 빌드업 시 라볼피아나 형태와 비대칭 스리백을 쓴다. 상대 측면 뒷공간을 효율적으로 공략한다. 선수 장점을 잘 살려 어태킹 서드에서의 라인 브레이킹, 카운터와 크로스, 측면 콤비네이션 등 다양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홍 감독을 선임하고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그 이유로 밝혔던 전술적 요소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차전을 치러 팔레스타인과 0-0 무승부를 거뒀다.
홍 감독은 4-2-3-1 전형을 들고 나왔다. 주민규가 최전방을 책임졌고 손흥민, 이재성, 이강인이 공격을 지원했다. 정우영과 황인범이 중원에 위치했고 설영우, 김영권, 김민재, 황문기가 수비라인을 구축했다. 골키퍼 장갑은 조현우가 꼈다.
현실적으로 홍 감독의 모든 전술 색채를 보기는 어려운 경기였다. 팔레스타인전이 홍 감독의 대표팀 복귀전이었기 때문이다. 완전체 훈련을 진행한 건 4일 하루뿐이었다. 게다가 홍 감독은 주말 경기를 치르고 곧장 대표팀에 합류한 선수들의 체력을 보전하기 위해 회복 훈련을 주로 진행했다. 전술적인 훈련을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번 경기 내용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아무리 전술 훈련 시간이 적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는 경기에서 드러났어야 한다. 대표팀에 뽑히는 선수들은 각 소속팀에서 전술 수행 능력을 인정받은 자원들이다. 명확한 전술 기조만 전달한다면 경기장 위에서 이를 충분히 구현해낼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라는 뜻이다.
이날 홍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을 센터백 사이로 내리는 라볼피아나를 빌드업의 기본 요소로 차용했다. 정우영은 경기 내내 센터백 사이로 들어가거나 센터백과 같은 라인에 위치해 후방에서 전방으로 공을 공급하는 데 주력했다. 이따금 황문기나 설영우가 센터백을 보조하는 비대칭 스리백도 가동됐으나 양 풀백이 모두 높은 전진성을 보여줘 라볼피아나만큼 자주 쓰이지는 않았다.
라볼피아나는 단순히 수비형 미드필더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패스를 공급하는 전술로 비치기 쉽지만, 이것이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중원에 최소한 2명의 선수가 패스워크를 보조해야 한다. 라볼피아나 전술에서 가장 이상적인 전형은 3-4-3이다. 공수 간격을 쉽게 유지할 수 있으며 패스를 위한 무수한 삼각형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대표팀 중원은 사실상 비어있었다. 정우영이 아래로 내려갔을 때 황인범과 이재성에 대한 전술적 지시가 미비했다. 황인범은 후방 빌드업을 돕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오른쪽에 가깝게 위치해 황문기와 이강인의 공격 작업을 도왔다. 이재성이 적극적으로 내려왔다면 문제가 크지 않았겠지만 이재성은 주로 전방에 머물렀다. 정우영이 내려가고, 황인범이 측면으로 빠지고, 이재성이 높은 위치에 있어 미드필더 3명이 모두 중원에 없는 요상한 결과를 낳았다.
이강인이 전반 막바지부터 중원까지 내려간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강인은 후방에서 공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때 직접 아래로 내려가 공을 몰고 올라가는 데 익숙한 선수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강인이 후방을 지원해야 할 만큼 전술이 체계적으로 짜여있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그의 실력과 별개로 오른쪽 윙어인 이강인이 후방 중원까지 내려서는 건 동선 낭비에 가깝다.
홍 감독은 전술적 방향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채 팔레스타인과 졸전 끝 무승부를 거뒀다. 상대 측면 뒷공간 공략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공격 진영에서 라인 브레이킹은 선수 개인 기량에 심히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역습이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했다. 측면 콤비네이션 역시 세부전술의 승리라기보다 선수 개개인의 승리였다. 이번 경기에서는 사실상 라볼피아나만 있었다. 오만 원정에서 개선된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다면 홍 감독에 대한 비판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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