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 사상 최악의 출발... 선수들이 걱정된다

이준목 2024. 9. 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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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처참한 전략·경기력, 축협-팬 갈등까지... 한국축구 혼란 언제까지?

[이준목 기자]

 5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대한민국 대 팔레스타인의 경기. 이강인과 손흥민이 이강인의 슈팅이 막히자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악의 출발'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축구 대표팀(FIFA랭킹 23위)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차전에서 피파랭킹 96위의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홈에서 졸전 끝에 0-0으로 비기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이 경기는 지난 7월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의 데뷔전인 동시에 10년 만의 대표팀 복귀전이었다. 한국축구에는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 걸린 3차 예선 대장정의 서막이기도 했다. 이미 각종 논란 속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어렵게 출범한 홍명보호로서는 과정과 결과 모두 팬들을 설득시킬 만한 분위기 반전이 절실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전은 오히려 그동안 누적된 한국축구의 모든 문제점과 논란을 한꺼번에 집대성한 듯한 참사가 되고 말았다.

안방에서 무승부, 처참한 전략·경기력

한국과 A매치 역대 첫 맞대결을 펼친 팔레스타인은 피파랭킹에서 한국보다 무려 73계단이나 아래이며 B조 6개국 중에서도 두 번째로 낮은 약체팀이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 여파로 정상적인 선수구성과 훈련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외신들도 대부분 한국의 일방적인 낙승을 예상했지만, 안방에서 득점없이 0-0으로 비기며 첫 경기부터 승점 2점을 깎아먹었다. 한국축구에는 과거의 몰디브 쇼크(0-0, 2004년 독일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레바논 쇼크(1-2, 2011년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 인도네시아 쇼크(3-3, 2024년 아시안컵 조별리그 3차전) 등과 비견될 정도로 약체팀에게 믿기 힘든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대급 참사다.

단순한 불운이나 이변으로 치부하기에는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한국은 이날 큰 실험이나 변화없이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등 정예멤버들을 대부분 그대로 내세웠다. 75%의 높은 점유율로 팔레스타인을 몰아붙였고 무려 16개의 슈팅(유효슈팅 5개)을 시도하고도 득점에 실패했다. 후반 42분 손흥민이 골키퍼까지 제치고 시도한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등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은 연이어 불안한 볼키핑과 패스 실수를 남발하며 후반 막판으로 갈수록 팔레스타인에 아찔한 역습 위기를 여러 차례 허용했다. 체력이 떨어진 후반 추가 시간에는 완벽한 일대일 찬스에서 골키퍼 조현우의 선방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날 한국의 경기력에선 홍명보호가 내세우던 한국축구 기술철학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홍명보 감독 선임을 주도한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는 홍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철학과 리더십이 한국축구의 방향성과 일치한다고 선임의 근거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팔레스타인전에서 홍명보호의 경기력에는 기술도, 철학도 보이지 않았다. 겉보기에 점유율은 높았으나 연계플레이는 어수선했고, 포지셔닝과 간격 유지는 엉망이었다. 축구의 기본인 빌드업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전술 문제와 별개로 선수들의 경기력 또한 그리 좋지 못했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주장이자 에이스 손흥민은 소속팀에선 절대 놓치지 않았을 결정적인 일대일 기회를 날리는 등 몸이 무거워보이는 모습이었다. 바이에른 뮌헨 이적 후 경기력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김민재 역시 이날은 볼키핑과 패스에서 실수가 잦았다.

그나마 이강인은 번뜩이는 패스와 침투로 위협적인 장면을 여러 차례 연출했으나 체력이 떨어진 경기 후반에는 판단력이 무뎌지며 무리하게 볼을 끌다가 상대에게 둘러싸이며 볼을 빼앗기는 장면이 많았다. 오세훈 등 몇몇 선수들의 결정적인 슈팅 찬스가 팔레스타인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며 운도 따르지 않았다. 여기에 대표팀 홈 경기장에 걸맞지 않은 상암구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실한 잔디관리도 선수들이 볼키핑과 패스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은 또다른 요인이었다.

축협과 팬의 갈등, 그 사이에 낀 선수들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팔레스타인의 2026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홍명보 감독이 화면에 나오면 야유를 보내는 관중들이 있었다.
ⓒ 연합뉴스
더 심각한 문제는 팬심과 대표팀의 '분열'이었다. 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을 반영하듯, 팔레스타인과의 1차전은 A매치 경기임에도 매진에 실패했다.

그나마 경기장을 찾은 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는 경기시작 전부터 "한국 축구의 암흑 시대", "피노키홍", "축협 느그들 참 싫다", "선수는 1류, 회장은?" 등의 펼침막을 내걸며 축구협회와 정몽규 축구협회장, 홍 감독을 집중 성토했다. 양팀 국가 연주 후엔 북소리에 맞춰 "정몽규 나가"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경기 중에는 전광판에 홍 감독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쉴 새 없이 야유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곳이 홈인지 원정인지 구분이 가지않을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팔레스타인과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자 팬들의 야유는 더욱 거세졌다. 경기 후 축구협회 SNS에는 한 시간도 안 돼 5000여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축구협회를 성토하며 정몽규 회장과 홍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는 격앙된 목소리였다. 전임 대표팀 감독들도 경기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종종 야유를 받은 일이 있었지만, 첫 데뷔전부터 이 정도로 팬들에게 외면받는 건 사실상 전례가 없다.

선수들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인한 비판도 비판이지만, 격앙된 팬심과 축구협회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떻게 입장을 취해야 할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로 몇몇 선수들은 홍명보 감독을 감싸며 비난 여론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누리꾼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선수들이 홈경기에서 이렇게 경기 외적인 압박을 느끼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대표팀으로서도 좋은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대표팀은 '팔레스타인 쇼크'의 충격에 헤맬 시간도 없이 이제 오만과의 2차전에서 다시 첫 승에 도전해야 한다. 더구나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은 A매치가 끝나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에 관해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출석까지 앞두고 있다.

좀처럼 해법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어수선한 한국축구의 혼란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지 우려스럽다.
 5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대한민국 대 팔레스타인의 경기. 홍명보 감독과 코치진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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