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칼럼]호모 사피엔스, 함께 춤 췄기에 문명 일궜는지도

2024. 9. 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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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춤의 고고학

남프랑스 라스코나 쇼베 동굴에서 발견된 석기시대 벽화들은 다양한 동물들, 그리고 그런 동물들을 사냥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인도 중부 빔베트카 동굴에서 발견된 약 4만년 전 벽화는 다르다.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일렬로 서있다. 두 줄로 서있는 거 같기도 하고, 서로를 마주보며 큰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케이팝 그룹의 '칼안무'를 보는 듯한 이 장면을 대부분 전문가들은 춤을 추는 사람들, 그러니까 인류 첫 무용수들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생긴다. 도대체 인간은 왜 춤을 추는 걸까? 춤이 인간에게 어떤 도움을 주길래 4만년전 인류는 춤추는 장면을 그렸던 걸까?

춤의 기원과 기능에 대한 완벽한 설명은 아쉽게도 불가능하다. 몸 자체를 '도구'로 사용하기에, 춤은 물질적 흔적이 남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적, 그리고 뇌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가설들은 세워볼 수 있겠다. 걸음에 필요한 다리 움직임 또는 무언가를 잡기 위한 손동작 같은 단순한 움직임과는 달리 춤에는 리듬과 반복성, 그리고 패턴과 흐름이 있다.

리듬·반복성·패턴·흐름의 몸짓, 춤
인간이 춤을 춘 이유는 무엇인가

인도 중부 빕베트카 동굴에서 발견된 약 4만년 전 벽화.

특히 인간은 동물들 중 거의 유일하게 사전 학습이나 경험 없이도 '일동조화(entrainment)'라는현상을 보여준다. 리듬에 따라 자동으로 손가락을 두드리거나 사운드의 비트와 템포에 맞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다.

소리와 움직임을 동기화하는 순간 다음 소리를 몸으로 미리 예측할 수있다. 아직 보이지도 않는 맹수를 대비해 미리 도망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춤을 함께 춘다. 빔베트카 벽화에서 보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그룹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 걸까? 소리와 몸의 동기화로 시작된 춤이 어느 한 순간 몸과 몸 사이 동기화로 확장되었을 수있다고 가설해 볼 수 있다.

다른 포유동물들 같이 인간은 '모방학습'이 가능하다. 부모와 친구를 모방해 직접 경험해보지 못 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학습 알고리즘이다.

덕분에 우연히 리듬을 잘 타는 사람을 주변 사람들이 모방하기 시작한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하나 벌어진다. 나와 타인의 움직임이 동기화 되는 순간 우리 뇌에서 '자아확장'이라는 착시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무리 지어 춤 춘 인류
동기화 통한 자아확장

신생아는 자기 몸의 경계가 어디까지 인지 모른다. 하지만 점차 눈에 보이는 많은 움직임들 중 어떤 움직임은 본인 의지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이의 뇌는 학습하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지만, 나의 움직임은 예측 가능하다. 뇌과학적으로 '나'는 예측 가능한 모든 것들의 합집합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모방학습을 통해 여려 명의 동작이 동기화 된다면? 특히 움직임에 사운드의 비트와 리듬까지 따른다면, 이제 우리는 나 자신의 움직임만이 아닌 10명, 100명의 움직임까지도 예측할수 있다. 우리 뇌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나'다. 함께 춤을 추는 순간, 우리의 자아는 확장되고, '나'와 '우리'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그리고 '내'가 '우리'가 되는 순간 호모 사피엔스는 더 이상 한없이 나약한 동물이 아니다.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었던 맹수도 10명이 동시에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 100명의 자아가 동기화 되면 매머드를 사냥할 수 있고, 동기화된 천만명의 자아는 제국을 세울 수 있다.

소리와 움직임의 일차원적인 동기화로 시작된 춤이야 말로 어쩌면 '인류문명'이라는 성공 스토리의 숨겨진 비법이었을 수도 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춤을 추고 소통하는 방식을 찾아낸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 했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는지도 모른다. 함께 모여 춤을 췄기에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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