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도 은행 지배할라"…도마에 오른 대주주 적격심사

전영주 2024. 9. 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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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 기관제재에도 적격심사 면제?"
현행법상 특례 제도 활용할 것으로 보여
적격심사 판단기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금융사를 안정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도입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 제도가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심사 제도의 허점을 메우고 명확한 판정 기준을 확립하면서 제도의 본 취지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금융기관 대주주 적격성 심사,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우리금융지주가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대출) 불법 특혜로 금융감독원 검사와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동양·ABL생명을 인수하기로 이사회 의결을 했다”며 “메리츠화재는 금감원이 수시·특별감독을 하고 있어 제재 가능성이 있음에도 MG손해보험 인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금융사가 인수합병(M&A)에 도전하는 배경에는 금융지주회사법 제42조의2가 있다. 김 의원은 “(금융당국으로부터) 기관경고를 받으면 원래는 대주주 자격이 없다”면서도 “2009년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으로 도입된 특례 제도를 통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례 제도에 허점이 있다. (특례 제도를) 악용해 (인수를) 결정한 점이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금융기관 대주주 적격성 심사,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전영주 기자 ange@]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도 개정 금융지주회사법 탓에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유명무실해진다고 짚었다. 그는 “현행법상 (금융지주가) 자회사를 편입하려면 사업계획이 타당한지, 재무·경영이 건전한지, 자금조달이 적정한지, 관련 시장 경쟁을 제한하진 않는지 등 4가지 승인요건만 충족하면 된다”며 “금융지주가 기관경고 등 징계를 받아도 이 조건들만 만족하면 자회사 편입이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주주 자격 문제가 화두에 오른 금융사도 자회사 편입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김 대표는 “KB금융지주가 LIG손해보험 인수를 시도한 2014년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사이 갈등이 터졌고 (금융당국의) 제재도 예고됐다. 상당수가 인수 무산을 예상했다”면서도 “4가지 요건을 채우니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생략됐고 자회사 편입은 승인됐다”고 전했다. 이어 “신한금융지주는 2018년 채용비리 의혹으로 조용병 당시 회장이 기소됐지만 같은 방법으로 오렌지생명을 편입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특례 조건을 활용하지 않고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피하는 경우가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에 오르고자 2019년 4월 금융당국에 한도초과보유 승인 심사를 요청했다. 문제는 당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법정 다툼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지분을 10% 넘게 보유하려면 공정거래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정한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법제처는 김 의장이 대주주 조건에 위반돼도 법인(카카오)에 결격사유가 없다면 은행을 간접지배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그해 6월 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의장이 최근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법제처 유권해석은 범죄자 최대주주가 깨끗한 회사를 통해 지배할 수 있게끔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우려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OK금융그룹도 지난 5월 iM뱅크(옛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인가 심사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피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 소장은 “은행법 2조 10항 나목에 따라 지분 보유 비중이 4% 넘는 최대주주는 금융주력자, 비금융주력자를 구분하지 않고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이라며 “당시 금융위 보도자료에 ‘지분이 4%를 초과한 주주 중 비금융주력자가 없다’는 언급이 있는데 (OK금융그룹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전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케이뱅크를 언급하며 대주주가 결격 사유가 있는데도 인가를 받은 사례라고 밝혔다. 당시 은행법 시행령을 보면 케이뱅크의 최대주주인 우리은행은 경영안정성이 해당 업종의 당해 평균치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분기 말(2015년 6월 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은 14%로 국내 은행의 평균(14.09%)에 미달했다.

전 교수는 “금융위원회는 우리은행의 최근 3년간 BIS 비율이 국내 은행의 3년 평균치 이상이니 요건을 충족한다고 유권해석하며 예비승인을 했다”며 “본인가 땐 ‘업종의 평균치 이상일 것’이라는 요건 자체를 은행법 시행령에서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행 외 업종엔 이런 요건이 없다며 규제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게 당시 논리였는데 은행과 비은행의 심사 강도는 달라야 하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토스뱅크 인가 과정에서도 대주주 적격성 판단 근거가 불투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소장은 “토스뱅크는 2019년 5월 자금조달 측면에서 지배주주 적합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은행업 예비인가 심사에서 탈락했다”며 “하지만 3개월 만에 통과로 바뀌었다. 금융혁신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 그 이유였고, 자금조달 능력 부족이라는 자격 미흡 요인이 해소됐는지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개선하려면 본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입법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의원은 “현행법상 특례 제도를 활용한 편법이 악용되지 않고, 심사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의 취지는 금융사 최대주주의 사회적 신용도를 검증하는 것”이라며 “금융당국의 징계 처분을 받거나 대주주 결격 사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사회적 신용도가 미흡하다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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