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균기자가 만난 사람] 진정한 ‘불곰’으로 거듭난 이승택…“불곰표 공격 골프 진수 보이겠다”

정대균 2024. 9. 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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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 렉서스 마스터즈서 10년만에 첫승
‘멘토’ 박상현 조언과 ‘스승’ 김기환 지도가 만든 쾌거
최종 목적지는 PGA투어…“쉼없이 더욱 정진하겠다”
지난 1일 경남 양산시 에이원CC에서 막을 내린 KPGA투어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생애 첫 승을 거둔 이승택. KPGA

첫 우승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112번째 출전 경기였다. 돌이켜 보면 너무나 먼 길을 돌아왔다. 국가대표 상비군과 국가대표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의 우승을 보면서 자신의 시간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바심만 더 생겼고 부모님을 비롯해 물심양면의 지원과 성원을 보내준 많은 분께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남몰래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골프가 잘 안 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여러 차례 맞이했던 우승 기회를 번번이 날리면서 자책의 시간이 그만큼 늘었다. 특히 올해 KPGA 파운더스컵 with 한맥CC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지막 날 뒷심을 발휘해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가는 데 성공했으나 연장전에서 드라이버샷 난조로 생애 첫 우승 기회를 날려 버렸다.

골프 입문 이전에 유도를 하려 했을 정도로 탄탄한 체격에서 뿜어 나오는 가공할만한 장타를 앞세운 공격적 플레이가 트레이드 마크다. 그래서 ‘불곰’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여러 차례 본모습을 잃고 헤매면서 ‘졸보 불곰’이라는 달갑지 않은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 그가 이제서야 진정한 ‘불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1일 경남 양산시 에이원CC에서 막을 내린 KPGA투어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생애 첫 승을 거둔 이승택이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에 답하며 활짝 웃고 있다. KPGA

지난 1일 경남 양산시 에이원CC에서 막을 내린 KPGA투어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감격의 생애 첫 우승을 거둔 이승택(29)이다. 이승택은 프로 데뷔 때만 해도 투어를 대표할 기대주 중 한 명이었다. 국가대표라는 화려한 아마추어 커리어 때문이었다. 투어 데뷔 3년째인 2017년 티업·지스윙 메가오픈 4라운드에서 12언더파 60타를 쳐 KPGA투어 18홀 최소타 신기록을 수립했을 때만 해도 그의 시대가 활짝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이승택은 “우승 경쟁을 하게 되면 긴장도 됐고 강박관념이 생겼다. 그동안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을 몰랐다. 고민도 많이 했는데 풀어가지 못했다. ‘KPGA 파운더스컵 with 한맥CC’에서 우승을 놓치고 나서 내 골프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다”고 아쉬웠던 당시 순간을 뒤돌아보았다.

그는 KPGA 파운더스컵 with 한맥CC에서 우승 기회를 살리지 못한 이후부터 리더보드를 보지 않은 습관이 생겼다. 이승택은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리더보드를 쳐다보지 않고 끝까지 내 경기에만 집중하겠다’라는 생각을 한다”면서 “리더보드를 보면 ‘블랙 아웃’이 왔다. 퍼트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우승을 놓친 게 정말 뼈아팠다”고 했다.

지난 1일 경남 양산시 에이원CC에서 막을 내린 KPGA투어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생애 첫 승을 거둔 이승택을 물세례로 축하해주는 '멘토'박상현(왼쪽). KPGA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도 2위와 타수 차이가 꽤 났음에도 리더보드를 보지 않았다. 그는 “최종 라운드 18번홀 마지막 1m 퍼트를 남겨 놓고 있을 때 그때 리더보드를 봤다.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하기 위해서였다”면서 “그동안 리더보드를 안 봤으면 우승을 더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고 웃었다.

그는 마지막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그동안의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듯 두 주먹을 앞뒤로 펌핑하면서 ‘불곰’ 포효를 했다. 그만큼 기뻤다. 이승택은 “‘우승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다”고 웃으며 말한 뒤 “10년여간 우승을 기다리면서 그동안 고생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금 정말 행복하다”고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었다.

이번 우승까지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동안 결정적 순간에 번번이 발목을 잡았던 드라이버샷 정확도를 대폭 끌어 올린 걸 빼놓을 수 없다. 이승택은 “KPGA 파운더스컵 with 한맥CC 우승을 놓치고 나서 아카데미로 들어가 샷 정확도를 높이는 훈련을 했다”라며 “김기환 프로님으로부터 페이드 구질을 공격적으로 구사하는 지도를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했다.

지난 1일 경남 양산시 에이원CC에서 열린 KPGA투어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마지막날 2번 홀에서 티샷을 날린 뒤 볼 방향을 바라복 있는 이승택. KPGA

대선배 박상현(42·동아제약)의 진심 어린 조언도 그를 챔피언 반열에 오르게 하는데 한몫했다. 그는 “KPGA 파운더스컵 with 한맥CC에서 우승을 놓치고 나서 박상현 선배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다. 스승 같은 형이고 정말 좋아하는 선수다. 상현이 형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우승의 공을 선배에게로 돌렸다.

그렇다면 박상현의 어떤 조언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던 이승택의 ‘우승 본능’을 흔들어 깨운 것일까. 그는 “(박)상현이 형이 자신의 연장전 패배 등 그동안 우승을 놓친 경험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다. 본인도 그런 경험이 많다고 하셨다”면서 “‘승택이 너는 너만의 골프가 있고 그것을 그대로 이어가라’, ‘절대 떨지 말고 퍼트 연습을 하던 대로 이어가라’는 말을 해 주셨다. 정말 큰 힘이 됐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불곰표’ 공격 골프를 지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승택은 “공격적인 골프로 더 많은 퍼포먼스를 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PGA투어 선수들처럼 강력한 퍼포먼스가 있는 골프를 좋아했다”라며 “이승택의 ‘불곰표’ 골프는 곧 ‘공격적 골프’라는 인식을 팬들에게 각인시키고 싶다”고 했다.

지난 1일 경남 양산시 에이원CC에서 막을 내린 KPGA투어 렉서스 마스터즈 마지막날 18번 홀 그린에서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이승택이 두 주먹을 펌핑하면서 포효하고 있다. KPGA

이승택은 2017년에 아시안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수석합격한 이후부터 아시안투어와 국내 투어를 병행 활동하고 있다. 올해 아시안투어 오더 오브 메리트(상금 순위)는 현재 57위다. 시드 유지를 위해서는 매 대회가 살얼음판이다. 그런 점에서 5일부터 나흘간 인천 영종도 클럽72 오션코스에서 열리는 신한동해오픈(총상금 14억 원) 결과가 중요하다.

이 대회는 KPGA투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아시안투어 공동 주관으로 열린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3개 투어 내년 시드를 자동으로 획득하게 된다. 이승택은 “올해로 40회째를 맞는 신한동해오픈에서도 우승한다면 정말 좋겠다”라며 “지금과 같은 감을 유지한 채 열심히 훈련한다면 이번 대회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의 골프 선수로서 최종 목적지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진출이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2015년 프로 데뷔 이후 지난 10년간 국내외 투어에서 했던 다양한 경험이 그의 가장 큰 자산이다. 이승택은 “기회가 된다면 미국 무대 진출도 도전할 생각이다”고 비전을 제시한 뒤 “많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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