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덜 마시는데 숙취해소제는 더 먹는다…K-주당 새 트렌드 [비크닉]
■ b.트렌드
「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
편의점 계산대 앞에 놓인 상품을 보면 최근 소비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과거엔 남녀노소 쉽게 살 만한 껌이나 사탕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변화가 눈에 띈다. 주당들을 겨냥한 숙취해소제가, 그것도 젤리부터 환까지 가지각색의 형태로 경쟁 중이다.
목 좋은 자리에 위치한 만큼 판매도 날개를 달았다. 숙취해소제는 주로 편의점에서 소비(61%)되는데, 편의점 3사 매출은 코로나 회복 이후 33~50%가량 크게 늘었다(롯데멤버스 리서치플랫폼 ‘라임’·편의점 3사 조사).
전체 시장 규모 역시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업 닐슨아이큐코리아 조사 결과, 지난해 시장 규모는 약 3500억원으로, 2019년 대비 약 30% 늘었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GMI)도 전세계 숙취해소제 시장 규모가 2022년 약 19억 달러(약 2조 5000억원)에서 2032년까지 약 68억 달러(약 9조원)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제조사의 매출도 늘고 있다. HK이노엔의 ‘컨디션’ 제품 매출은 2021년 390억원에서 2023년 620억원으로, 동아제약의 ‘모닝케어’는 같은 기간 75억원에서 95억원, 한독의 ‘레디큐’는 45억원에서 77억원으로 늘었다.
주목할 점은 숙취해소제 시장에 비례해 술 소비량도 늘어난 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1인당 주류 소비량은 2015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코로나 이후 회복을 기대했던 주류 시장의 성장은 오히려 주춤하다. 국내 주류 3사의 주류 부문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떨어졌다. 또 국내 주류 출고량도 줄었다. 국가통계포털 ‘e-나라지표’를 보면, 지난해 주류 출고량은 약 362만㎘로, 2022년도에 비해 약 2만㎘ 줄었다. 코로나 확산 이전인 2019년 출고량(384만㎘)도 회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술은 덜 마시면서 숙취해소제를 더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코로나 이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음주 문화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부어라 마셔라’의 시대를 지나, 술을 적당히 즐기면서 건강을 유지하려는 ‘소버 라이프(Sober Life)’가 새로운 음주 트렌드가 됐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는 “요즘 젊은 세대는 회식을 기피하는 등 술자리를 자제하면서도 술을 마시더라도 건강을 챙기는 패턴을 보이는 점이 숙취해소제 시장 성장 요인”이라고 짚었다.
이 소버 라이프를 이끄는 건 20·30세대다.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의 ‘키위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숙취해소제를 먹느냐는 질문에 20대의 53.5%, 30대 45.5%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반면 50대는 39.4% 수준이었다. 롯데멤버스 조사에서도 숙취해소제 복용 경험을 묻는 말에 ‘주로 복용하는 편’이라고 답한 20대는 16%, 30대 15%로 나타났지만, 50대 이상은 5.3%에 그쳤다. CU 편의점 내 숙취해소제 매출을 봐도 20·30세대가 전체 52.5%를 차지한다.
소비자에 맞춰 제품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기존 음료 형태 대신 환이나 젤리류 등 비음료형 상품이 크게 늘었다. 병 음료와 달리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어서다. 동국제약은 지난 7월 입안에서 녹여 먹는 필름 제형의 ‘이지스마트’를 냈고, 종근당은 지난해 12월 스틱형 젤리 타입의 ‘깨노니’를 선보이면서 경쟁에 나섰다. 삼양사의 ‘상쾌환’, 한독의 ‘레디튜 스틱’ 등도 추세에 동참했다. 박지혜 HK이노엔 음료BM 팀장은 “최근 타깃 고객을 25·35세대로 넓혔다”며 “휴대성과 맛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 니즈에 맞춰 비음료형 숙취해소제를 마케팅하고 있다”고 말했다. HK이노엔의 경우 2022년 ‘컨디션 스틱’ 신제품 발표 이후 비음료형 숙취해소제 매출이 23%에서 지난해 32%로 늘었다.
한편 숙취해소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규제의 움직임도 보인다. 식약처는 지난해 6월 ‘숙취해소 표시·광고 실증을 위한 인체적용시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제품에 ‘숙취해소’라는 명칭을 쓰거나 광고하려면 인체 적용 시험 등을 거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식품산업협의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에 제조사들도 발 빠르게 준비 중이다. 박 팀장은 “컨디션 제품은 이미 인체적용시험을 마쳤고, 다른 제품들도 연내 마칠 예정”이라고 했고, 동국 제약 관계자 역시 “신제품 이지스마트는 식약처 가이드라인을 충족한다”고 전했다.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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