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어 중국발 'R의 공포'…덤핑 공세에 한국 제조업 휘청

김기환 2024. 9.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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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국 선양의 철강 도매 시장에서 트럭이 철강 제품을 옮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천의 석유화학 업체 A사는 최근 중국 업체와 경쟁 때문에 부쩍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산 제품 가격이 국산의 80% 수준까지 떨어져서다. A사는 “중국 경쟁사가 덤핑(헐값에 투매)에 가까운 수준으로 달라붙어 시장에서 가격으로는 도저히 맞붙을 수 없다”며 “일단은 가격을 내려서 대응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중국의 경기 침체에 따른 ‘저가 밀어내기’가 한국 제조업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중국의 경기 침체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4일(현지시간)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5%에서 4.8%로 낮춰잡았다. BoA에 앞서 골드만삭스와 JP모건, UBS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도 최근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 미만으로 하향 조정했다.

김영옥 기자


성장률 이면에 드러난 경제 지표도 심상치 않다. 블룸버그는 지난 6월 중국의 미분양 아파트가 한국 인구수보다 많은 6000만채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시장 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 특성상 지방정부 재정난도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7월 청년(16~24세) 실업률은 17.1%다. 지난해 12월 실업률 집계 방식을 바꾼 뒤 가장 높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경기 침체는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으로 수출한 국내 기업 수는 2만8181개로 전년(2만8389개)보다 0.7% 줄었다. 수출액은 전년 대비 19.9% 감소한 1245억 달러를 기록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중국의 경기 회복이 늦어질수록 한국의 주력 대중 수출품인 반도체·화학·무선통신기기 같은 중간재부터 화장품 같은 소비재까지 수출이 살아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중국이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자국 생산품을 헐값에 ‘밀어내기’하는 수출 전략을 쓴다는 점이다. 밀어내기를 받아내는 수입국은 장기적으로 자국산 제품이 중국산과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 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한국 기업 실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전국의 제조업체 2228곳을 설문한 결과 27.6%가 “중국산 제품의 저가 수출로 실제 매출·수주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42.1%는 “현재까지는 영향이 없지만, 향후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철강업이 대표적이다. 중국산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강판)의 밀어내기 공세가 거세다. 중국의 후판 생산능력은 연간 1억2000만t 수준이다. 반면 자국 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후판 물량은 8641만t에 불과하다. 약 30%가량이 공급 과잉이다. 남아도는 후판의 핵심 수출 지역은 한국이다. 지난해 한국의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121만t을 기록했다. 2021년(27만t) 대비 4.4배 규모다. 국내 철강사 관계자는 “중국산 후판은 1t당 80만원 수준이라 1t당 100만원 정도인 국산과 시장 경쟁이 안 된다”고 털어놨다.

중국이 경기 침체에서 회복한다 하더라도 과거처럼 고성장 추세를 이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더는 막연한 ‘중국발 온기’에 기대 국내 경기 회복세를 바라기 어렵다는 얘기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성장세 둔화, 경제구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며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수출국·공급망 다변화를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경기 침체 신호가 짙어진 점까지 고려하면 한국 제조업이 이중고(二重苦)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중간재 수출과 미국 민간투자의 상관계수는 과거(2000년~2024년) 0.68에서 최근 4년간 0.85로 상승했다. 미국 민간소비와의 상관계수도 같은 기간 0.37에서 0.71로 크게 올랐다. 한국은행은 “2020년 이후 미국 내수와 우리 대미 중간재 수출 간 상관관계가 과거보다 커졌다”며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더 둔화할 경우 철강·화학·석유제품 등 중간재의 대미 수출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기환·윤성민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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