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지식은 이제 필요 없을까?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신동숙 옮김
인플루엔셜, 584쪽, 2만9800원
심지어 인공지능(AI) 스마트폰을 통해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든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앞으로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우리를 대신해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생각해 준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 이유가 있을까. 책은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다. 우선 지식이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전수되고 확산됐는지, 그 방식은 어떻게 진화됐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지식의 사전적 의미는 ‘사실이나 진실을 알고 있는 상태 또는 상황’이다. 철학자들은 지식의 개념을 한층 파고들어 ‘정당화된 참된 믿음(justified true belief·JTB)’으로 발전시켰다. 최근 정보학자들은 지식을 데이터(data)-정보(information)-지식(knowledge)-지혜(wisdom)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파악한다. 책은 “지혜는 사건의 기본적인 전개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특별할 것 없는 지식을 대단히 소중한 지식으로 바꿔놓는다”고 설명한다. 기본은 ‘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식은 일차적으로 경험에서 나온다. 초기 인류부터 인간은 경험적 지식 가운데 눈앞에 닥친 위험에 대한 ‘생존 지식’을 가장 우선시했다.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토착 원주민들의 생존 지식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는 2004년 12월 발생한 인도네시아 지진해일을 통해 확인됐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쪽 끝에서 진앙에서 밀려온 거대한 해일은 벵골만을 거쳐 태국, 인도, 스리랑카 등의 해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당시 지진해일로 2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벵골만의 안다만제도에 살고 있던 옹게족, 자라와족, 센티넬족 등 원주민 500여명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해안에서 낚시하거나 그물을 손질하던 사람들은 밀물의 속도가 빨라지고, 갑자기 모래에서 물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대대로 전승돼온 지식을 떠올렸다. 그것이 지진 해일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무조건 부족민들을 이끌고 언덕으로 뛰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주민들이 생존 지식을 어떻게 전수 받아 왔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부분 시나 노래를 통해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초기 인류의 지식은 시, 노래 등으로 전승되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극적인 전환이 이뤄진다. 말로 이야기한 내용은 모두 허공으로 사라지고 인간의 기억이라는 일시적인 저장소와 일부 원주민의 구전 전통으로 남을 뿐이었지만,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기록으로 지식의 보존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점토판에서 시작해 대나무와 파피루스 등에 저장하던 지식은 중국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를 통해 한결 수월하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과 종이가 결합하면서 모든 지식을 거의 모든 사람에게, 거의 모든 곳에 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생겼다. 책은 “이제 지식은 지배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면서 인쇄기의 사용은 ‘지식의 민주화’를 의미했다”고 설명한다.
인쇄기는 책은 물론 신문도 만들어냈다. 영어로 프레스(press)가 인쇄기와 신문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책은 신문과 언론의 성장기와 함께 ‘조작의 연대기’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최근의 사례로는 1991년 걸프전쟁의 빌미가 된 ‘나이라의 거짓 증언’을 다룬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후 쿠웨이트 출신의 15세 소녀 나이라는 미국 의회에서 “이라크 군인들이 쿠웨이트의 병원에서 신생아들을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죽게 내버려 두고 인큐베이터를 훔쳐가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미국 내 여론이 들끓었고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나이라는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었고, 그의 거짓 증언은 쿠웨이트 정부의 의뢰를 받은 홍보대행사의 작품이었다. 이 밖에 가볍게 커피와 토스트로 시작하던 미국인의 아침 식사를 베이컨과 달걀로 바꿔버리고, 흡연을 여성 해방과 관련지어 여성 흡연을 장려하도록 한 여론 조작의 천재,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사례도 소개한다.
‘가짜 지식의 제조’ 전략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각이 필요 없는 시대’에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책은 희망을 얘기한다. “미래의 지능형 기계는 전두엽의 부담스러운 작업을 처리하고 뇌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 현대 사회의 정신적 지루함과 사실적 지식의 과부하에서 벗어난 인류는 다시 한번 편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실제 ‘아는’ 것뿐만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까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 세·줄·평 ★ ★ ★
·책의 분량만큼이나 방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뭐든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지식의 가치를 생각한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하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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