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번역으로 읽었던 셰익스피어는 가짜다

맹경환 2024. 9. 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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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셰익스피어 전집 1~1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민음사, 5824쪽, 27만5000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대부분 운문으로 돼 있다. 일본어 중역을 통해 한국에 수입된 이래 셰익스피어는 오랫동안 운문도 산문으로 번역됐다. 최종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30년간의 작업 끝에 운문으로 번역된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성했다. 최 교수는 “이번 전집 발간은 일본으로부터의 문화적 독립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전집 10권은 책등의 너비만 33㎝에 이른다. 유지원 북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민음사 제공


“인생이란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이고/잠시 동안 무대에서 활개치고 안달하다/더 이상 소식 없는 불쌍한 배우이며/소음, 광기 가득한데 의미는 전혀 없는/백치의 이야기다.”(‘맥베스’ 5막 5장 24~28행)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다. 최종철(75)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고유의 우리 시 기본 운율인 3·4조를 기본으로 약간의 변형을 가져가면서 리듬감 있는 운문로 번역해 냈다.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원문이 운문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작품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은 운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특히 4대 비극의 경우, 운문의 비율은 ‘햄릿’이 75%, ‘오셀로’가 80%, ‘리어왕’이 75%, 특히 ‘맥베스’는 95%나 된다. 셰익스피어 극작품에 사용된 운문은 ‘약강오보격무운시’(한 행에 강세가 없는 음절과 있는 음절이 다섯 번 되풀이되고 시행의 끝에 오는 음을 맞추는 각운이 없는 정형시)다. 기존 셰익스피어의 번역은 운문마저도 산문으로 번역돼 왔다. 최 교수는 운문을 운문으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 선조의 시조와 두시언해, 서정시 등을 두루 살피며 찾아낸 방법이 3·4조였다. 그렇게 1993년 운문으로 번역한 ‘맥베스’를 선보인 뒤 30년 만에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10권에 담은 전집을 완성했다.

최 교수는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번 전집이 일본으로부터의 ‘문화 독립’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셰익스피어가 처음 한국에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일본을 통해서였다. 그는 “표의 문자인 한자와 표음 문자인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혼합해 쓰는 일본어는 언어 구조상 운문 번역이 어려워 산문 번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이후 산문 번역 전통이 이어졌다. 그는 “이번 전집으로 100년간 지속된 일본의 영향에서 문화적 독립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가장 번역이 힘들었던 작품은 3년이나 걸려 번역한 맥베스였다. 많은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의 모든 인물 가운데 맥베스를 가장 시적인 인물로 꼽는다. 그는 “맥베스의 분량은 햄릿의 절반 정도지만 압축, 비유, 상징이 많아 시간은 가장 많이 걸렸다”면서 “맨 처음 운문 번역으로 맥베스를 선택한 것은 이 작품을 번역할 수 있다면 나머지 작품들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가장 재밌게 번역한 작품은 ‘햄릿’이다. 그는 “햄릿 이전의 복수극에서는 와신상담하듯 복수에 직진하는 인물들이 나왔다”며 “하지만 햄릿은 복수 자체를 회의하며 복수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한다, 이런 유형의 인물은 이전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30년간 번역 작업을 하면서 수정에 수정도 거듭했다. ‘사느냐 죽느냐’로 번역되던 햄릿의 문제적 대사, “To be, or not to be”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판에서는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했다가 이번 전집판에는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수정했다.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성경이나 그리스로마 신화, 유럽의 역사, 당시 영국의 사회상까지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도 많다. 이번 전집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작품 당 50여개의 주석을 달았고, 원작의 다양한 판본들이 제시하는 해석의 차이까지 비교했다. 또한 각 작품마다 상세한 역자 서문을 붙였다.

1623년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되던 셰익스피어 작품을 최초로 엮은 ‘제1 이절판(The First Folio)’이 출간된 지 400년이 넘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공연되고 책이 출간되고 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셰익스피어를 사랑할까. 최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인간 감정의, 본성의 진실을, 아주 잘 연결된 이야기로 보여주는 게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에요. 셰익스피어를 읽었는가에 따라 인생,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반드시 소리 내 읽어주시면 그 순간이 반드시 올 거라고 봅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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