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따뜻한 무관심

황인호 2024. 9. 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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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로 와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따뜻한 무관심'이다.

홍보 담당자들이 으레 하는 말인데, 모순적이긴 하지만 회사 관련 부정적 이슈가 터지면 보도를 최소화하는 게 업무이다 보니 이런 입장을 가장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말로 활용하곤 한다.

겉으로 드러내고 하진 않지만, 주로 기자들에게 하던 말이 요즘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게 향한다.

"정확한 지침을 주든가, 아니면 좀 시간을 갖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를 에둘러 '따뜻한 무관심'이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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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호 경제부 기자


경제부로 와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따뜻한 무관심’이다. 홍보 담당자들이 으레 하는 말인데, 모순적이긴 하지만 회사 관련 부정적 이슈가 터지면 보도를 최소화하는 게 업무이다 보니 이런 입장을 가장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말로 활용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 이 말의 종착지가 바뀌었다. 겉으로 드러내고 하진 않지만, 주로 기자들에게 하던 말이 요즘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게 향한다. 최근 금융 사고가 일어난 은행에서 그러는 건 이해가 간다. 되도록 조용히 지나가고 싶을 테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은 은행에서도, 제2금융권에서도 금감원장을 향한 따뜻한 무관심 얘기가 흘러나온다. 배경엔 이 원장의 최근 발언이 있다. 그의 한마디에 금융권이 들썩이는데, 발언에 일관성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정확한 지침을 주든가, 아니면 좀 시간을 갖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를 에둘러 ‘따뜻한 무관심’이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금감원장이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을 자리는 아니다. 감독기구이니 따뜻한 무관심보다 차가운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도 은행권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간다. 가계부채 해결이 국가적 과제지만 그의 한마디에 은행 정책이 조변석개로 바뀌는 건 문제다.

이 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은행권에 상생 금융을 주문했다. 고금리에 서민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는 얘기였다. 은행들은 일제히 대출금리를 내렸다. 그런데 지난 7월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방향을 틀었다. 당시 은행권은 금융 당국이 7월로 예정된 스트레스 DSR 2단계를 시행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두 달 미룬 터라 이를 금융 완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반된 이 원장 발언에 은행권은 혼란스러웠지만, 어쨌건 이후 대출금리를 올렸다. 시장금리는 하락하고 있다 보니 금리 인상 효과를 보기 위해 일부 은행은 한 달 새 여섯 번 넘게 금리를 올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도 답이 아니었다. 이 원장은 지난달 25일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며 은행권의 ‘쉬운 금리 인상’을 질책했다. 은행권에선 “가계대출 관리 방향을 매번 금감원에 보고했다. 별말 없이 넘어가 놓고 이제 와 은행에 책임을 전가하는 거냐”는 불만이 나왔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 원장 발언 후 앞다퉈 대출 만기와 한도를 줄이며 가계부채 관리에 나섰다.

최근엔 2021년 영끌 광풍 때도 없었던 1주택자 주택담보대출 제한 등 초강력 조치도 나왔다. 그새 보험사 등 제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났고, 대출 접수 시간에 맞춰 앱 접속을 시도하는 ‘오픈런’ 현상까지 벌어졌다. 실수요자 등 고객 불만이 잇따랐지만 이게 답이라 봤다. 그러나 이 원장은 이번에도 “은행권의 유주택자에 대한 (일률적) 대출 제한 조치는 금융 당국과 공감대가 없었던 쪽에 가깝다”며 “최근 은행들이 예상하지 못한 가계대출 급증 추이를 막기 위해 들쭉날쭉한 대책을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다음 주 은행장들과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는데, 은행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어떤 지시가 나올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이 원장이 어떤 말을 할지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은행장 간담회에서는 우후죽순 나온 대응들의 교통정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이 그리는 그림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고 그에 따른 일관된 주문이 나와야 한다. 금융기관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본연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들이 따뜻한 무관심 얘길 할지도 모른다.

황인호 경제부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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