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추희 자두 한 알의 기쁨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친구와 공연을 보기로 한 날이었다.
늦장을 피우다 부랴부랴 나섰는데, 지하철로 환승한 순간 아뿔싸! 휴대전화를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그거 가을 자두인데, 속은 달고 껍질은 새콤달콤해요." 씻은 거니까 맛보라고 아저씨가 자두 한 알을 덤으로 주었다.
아무리 세상이 삭막하게 변해간대도, 오늘의 기쁨은 주인아저씨가 건네준 자두 한 알이려니.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친구와 공연을 보기로 한 날이었다. 늦장을 피우다 부랴부랴 나섰는데, 지하철로 환승한 순간 아뿔싸! 휴대전화를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되돌아가면 필시 공연 시간을 못 맞출 것이다. 근방에 공중전화도 보이지 않았거니와, 동전도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지나가는 남자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저기요.” 그 남자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봤다. 혹시 도 닦으라고 말 거는 줄 알고 그런 걸까. 나는 최대한 인상 좋아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핸드폰을 두고 와서요, 전화 한 통만….” 남자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를 휙 지나쳐 갔다. 좀 무안하고 억울했다. 세상 참 각박하네 어쩌네, 한탄할 겨를이 없었다.
때마침 맞은편에 파출소가 보였다. 부랴부랴 건널목을 건넜다. 도움을 요청할까 하다가, 파출소 유리문 앞에서 망설였다. 일도 바쁠 텐데, 괜히 성가시게 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주저하다가, 파출소 옆 과일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전화 한 통만 빌려 쓸 수 있을까요?” 주인아저씨가 흔쾌히 가게 전화를 가리키며 쓰라고 했다.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걱정이 풀렸다. 신세를 졌으니, 과일이라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상자에 ‘추희 자두’라고 적힌 게 보였다. “그거 가을 자두인데, 속은 달고 껍질은 새콤달콤해요.” 씻은 거니까 맛보라고 아저씨가 자두 한 알을 덤으로 주었다. 손에 쥐어 보니 여름 자두보다 크고, 탱탱했다. 인심도 후한 주인이었다.
가을 추(秋)에 기쁠 희(喜)라니. 이름도 참 곱네. 이런 이름을 붙인 사람은 시인일 것이다. 자두를 쥐어 본다. 약간 단단하고 탄력 있다. 아무리 세상이 삭막하게 변해간대도, 오늘의 기쁨은 주인아저씨가 건네준 자두 한 알이려니. 친구에게도 이 어여쁜 자두 이름을 알려주고 싶었다. 개찰구를 빠져나오니, 저만치서 친구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파리올림픽 출전 우간다 女마라토너, 가정폭력에 숨져
- 홋카이도 2m 거대 곰, 달리는 승용차와 정면충돌 [영상]
- “부탁한 환자 수술중” 문자에… 인요한 “감사감사” 포착
- 심정지 여대생, 100m 앞 응급실 수용 거부…의식 불명
- 전단지 뗀 여중생 송치…경찰서 민원 폭주에 서장 사과
- 불길 속 손자가 안고 뛰었지만…90대 할머니 끝내 사망
- “배달음식 받는 순간 노렸다”… 이별통보 전 여친 살해
- ‘시건방춤·엉덩이춤’ 안무가 김용현 사망…향년 45세
- 北 오물 풍선에 영등포 테니스장 화재… ‘화약냄새’
- “文도 출석 통지”…청와대 前행정관, 검찰 신문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