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명령과 통제 때문에 더 악화하는 북한 경제

2024. 9. 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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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 지도부의 최근 발언에서 경제 상황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지만, 정권의 대응은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매년 20개의 공업 공장을 세워 지방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지방 발전 20×10 정책’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세기적인 낙후성을 털어버리고 중앙과 지방의 차이를 줄일’ 필요성이 있다고 연설했다.

지방 발전 20×10 정책은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경제 조건이 아닌 정치적 명령으로 지방에 공장을 건설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은 농업이면 몰라도 공장이 들어설 여건이 안 된다.

「 ‘지방 발전 20×10 정책’ 역부족
명령으로 공장 건설 제대로 될까
곡물관리소 건립 명령도 무리수

둘째, 공장 여러 개를 동시에 건설할 자재와 설비, 인력이 과연 있는지도 의문이다. 2020년 3월 건설에 착수했지만, 아직 개원하지 못하는 평양종합병원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싶다. 셋째, 공장을 건설해도 효율적으로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원자재나 에너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기근을 초래했던 중국 대약진운동(1958~1962)의 데자뷔가 엿보인다.

정책 발표 8개월이 지난 8월 말에 김정은은 평안남도 성천군과 평안북도 구성시를 시찰하며 큰 만족을 표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연설에서 군이 노동력을 제공하고는 있으나 20×10 사업과 농촌 주택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일단 공장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방 주민들은 아마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북한의 주택 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김정은이 지방 주민의 보금자리 마련 기회를 산산조각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정은은 20×10 정책을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며 공장뿐 아니라 현대적 병원에 더해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과학기술 보급 거점 설립의 중요성을 들고 나왔다.

20×10 정책 외에도 북한 정권은 오랫동안 장마당이 담당했던 주민 식량 공급에 대한 통제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2021년 4월부터 장마당에서 빵이나 국수 판매가 금지됐고 2023년 1월부터 쌀이나 옥수수 판매도 금지됐다.

김정은은 지난 8월 시찰에서 지역마다 곡물관리소 건립 명령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기존 시설 보수 같은 소극적 태도가 아닌 새로운 시설 건립을 지시했다. 북한 정권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전에 당국이 식량 보급을 주도하며 정치적 힘을 쥐고 있던 시절로 회귀하길 원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전략에는 큰 구멍이 있다. 러시아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그것이다. 집단 농장의 곡물을 러시아에서 구매하고, 주민 배급용 식량을 러시아산으로 저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공급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단 종식되면 곧바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 정권은 집단 농장에 곡물 공급을 유지할 수도 없고, 식량 배급 저장 수준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은 생각보다 빨리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휴전 협정을 맺는다면 말이다. 북한의 ‘돈주(전주)’들이 민첩하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공급 라인을 새롭게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당국의 곡물 공급 중단과 그 이후 새로운 장마당이 들어서기까지 극심한 식량 부족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북한의 경제 문제는 경제를 자유화하고,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공장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최고의 수익을 추구하는 구조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전혀 경험 못 한 새로운 길도 아니다. 과거 김정일 체제의 북한에서 중국 기업은 직물 공장 등 대규모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자유화를 위해서는 정치적 통제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데, 김정은 체제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북한 정권은 당국의 명령과 식량 공급 통제권 확보를 통한 지방 산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산업화라기보다 통제권 강화 시도라고 봐야 한다. 최근 김정은의 시찰에서 보듯이 창의적 문제 해결보다는 정권의 더 강한 과잉 통제를 통한 문제 해결 시도를 하고 있다. 결과가 좋을 수가 없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북한 주민이 입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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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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