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직격인터뷰] “화재 위험 때문에 완전충전 피하라는 말은 비과학적”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강기석 - 배터리 석학이 본 전기차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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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부터 이미 ‘안전 마진’ 마련
화재 확률 휘발유차보다 낮아
전기차 주차금지는 과잉 공포
K배터리, 지금 위기이자 기회
」
배터리 발화와 큰불 확산은 다른 문제
Q : 인천 전기차 화재, 뭐가 문제였나.
A : “핵심은 배터리 화재가 큰불로 이어진 거다.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가만히 세워둔 차에서 자연 발화한 것과 큰불로 이어진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하주차장의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됐더라면 화재가 대규모로 확산하진 않았을 거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당시 화재 경보가 발생했으나 오작동을 의심한 경비원이 경보를 끄는 바람에 초기 화재진압에 실패했다. 아파트 측은 화재 확인 후 스프링클러를 작동하려 했으나, 이미 강한 열 때문에 전기 시스템이 녹아버려 작동하지 않았다.)
Q : 가만히 세워둔 전기차에서 왜 불이 났나.
A :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배터리의 제조 불량이다. 생산 단계에서 품질 관리가 안 돼 오류가 생기면 불이 날 수 있다. 둘째는 배터리를 계속 사용하다 보면 내부 소재에 변화가 생기면서 화재로 연결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일단 불이 붙기 시작하면 배터리 내의 화학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계속 타게 된다. 이를 ‘열폭주’라고 한다. 기존 화석연료 차량의 화재와 다른 점이다. 문제의 벤츠 전기차가 3일 동안 주차된 상태에서 자연 발화된 것은 배터리 자체의 불안정성 때문일 수 있다. 해당 차종이 사용한 중국산 배터리의 품질 관리가 충분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Q : 열폭주가 왜 생기나.
A : “배터리는 기본적으로 양극재와 음극재, 그 사이를 막고 있는 전해질과 분리막으로 구성된다. 정상적인 경우 이런 구조 속에 양극과 음극 사이를 흐르는 전하가 적절히 통제된다. 열폭주는 배터리 내부의 양극재와 음극재가 직접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발생한다. 일차적으론 가연성 액체 용매로 된 전해질에서 불이 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직접 접촉하게 돼 전하가 급격히 흐르면서 열이 급속도로 상승한다. 화재나 폭발이 이때 발생한다. 열폭주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배터리의 온도를 지속해서 낮춰주거나, 화재 발생 초기 단계에서 신속한 냉각 조처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제조사의 충전 가이드 따라야
Q :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려면 완전충전을 하지 말라고 하던데.
A : “단순하고 비과학적인 주장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100% 충전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제조사에서 설정한 ‘안전 마진’을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배터리 과충전을 방지하고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완전충전하지 말라는 조언은 소비자들에게 괜한 불안을 조성할 수 있다. 오히려 전기차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충전 가이드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Q : 지하주차장에 전기차를 주차하지 못하게 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A : “팩트에 기반을 둔 결정이라기보다는 불안감 때문에 생긴 과도한 반응이다. 인천 전기차 화재는 지하라서 커진 게 아니라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서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대도시의 아파트 주차장은 이미 대부분 지하화하지 않았나. 결국 전기차를 주차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 지하주차장에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라면, 지하에 들어갈 수 있는 소방차를 개발해 넣어야 맞다. 그게 국가 시스템이다.”
Q : 럭셔리 브랜드인 벤츠의 전기차에서 불이 난 건 뜻밖이다.
A : “벤츠가 중국산 중에서도 순위가 낮은 업체의 배터리를 쓴 때문으로 추정된다. 벤츠는 엔진기술에서 세계 최고다. 하지만 전기차는 엔진 대신 배터리를 쓴다. 벤츠가 전기차 부품까지 최고 전문성을 지니는지는 모르겠다. 특히 배터리는 품질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벤츠가 눈에 보이는 성능지표로만 부품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보이지 않는 성능지표를 못 봤을 수도 있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런 부분을 세심히 다루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Q : 벤츠가 왜 중국산, 그중에서도 매출 하위권 업체인 파라시스의 배터리를 썼을까.
A : “히스토리부터 얘기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는 처음엔 한번 충전으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느냐, 즉 마일리지(mileage) 경쟁이었다. 그 기술의 핵심 중 하나가 양극 소재 안에 니켈의 양을 많이 넣을 수 있느냐는 거다. 문제는 니켈의 함량이 높아질수록 불안정해져 불이 나거나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한국과 중국·일본 배터리 회사들이 이걸로 경쟁해 왔다. 이후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하면서 마일리지 경쟁은 가격 경쟁으로 넘어오게 된다. 자동차업체마다 전기차 가격을 내리는 게 중요하게 됐다.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가 관건이 됐다. 벤츠의 배터리 선택에는 중국 자본이 벤츠의 주요주주인 점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산 배터리 안정성 주목받을 기회
Q : 한국산 배터리는 괜찮나.
A : “전기차 화재를 막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전기차와 배터리도 과거 불이 난 사례가 있다.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의 연이은 화재, 현대차 코나 전기차 화재로 인한 1조 원대 리콜 등의 아픈 경험들이 있다. 그 덕에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안전성을 더욱 중요하게 인식하고 기술개발과 품질관리를 해왔다. 그 덕분에 이제 화재 위험이 상당히 줄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지만.”
Q : 그래도 전기차 소유주들의 걱정이 많다.
A : “과도한 공포다. 메이저 회사의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 100% 화재가 안 난다고 얘긴 할 수 없지만, 통계적으로 봐도 일반 휘발유차보다 화재 날 확률이 훨씬 낮다.”
Q : 배터리 산업 경쟁력도 궁금하다. 기술력으로 보면 어느 나라, 어느 기업이 가장 앞서나.
A : “이젠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았다.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아직 앞선 것도 있지만, 종합적인 기술력 측면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중국의 CATL이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된다. CATL은 배터리 제조에 있어 막대한 연구 인력과 생산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인력 규모가 한국의 배터리 3사를 합친 것보다 많다. 또한, 중국 업체들은 토지와 시설 등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정부의 파격적 지원을 받고 있다.”
Q : 그럼 한국 배터리 산업의 장래는 어두운 건가.
A : “그렇지 않다. 지금 한국 배터리 산업은 위기이면서 기회다. 한국은 자동차 제조사와 배터리사, 소재 기업이 모두 세계 톱 수준인 세계 유일의 국가다. 중국의 경우 배터리와 소재가 뛰어나지만, 자동차 회사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인천 전기차 화재사고는 배터리 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더 인식하는 계기가 될 거다. 한국산 배터리가 세계 시장에서 더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도입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한국 배터리 산업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할 거다. 하지만 저절로 되는 건 없다. 우리 기업은 배터리의 효율과 안정성 등을 관리하는 BMS(Battery Management System·배터리관리시스템)를 더 고도화해야 한다. 정부도 더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강기석=서울대 재료공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교수를 거쳐, 2011년 서울대에 부임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편집위원이며, 국가 혁신연구센터인 이차전지혁신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2016)과 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2016)·홍진기창조인상(2023) 등을 수상했다.
최준호 과학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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