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힉엣눙크! 음악 축제

2024. 9. 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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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뜻을 가진 힉엣눙크(Hic et Nunc)는 음악앙상블 단체인 세종솔로이스츠 뮤직 페스티벌의 제목이다.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은 세종솔로이스츠(음악감독 강효)의 힉엣눙크 음악제가 벌써 일곱 번째 열리고 있으니, 처음에는 매우 낯설었던 이 말이 이제 음악계에서는 제법 익숙해진 듯하다. ‘지금’ 세계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와 프로그램을 ‘여기’로 초대하여 예술가들의 창작활동과 청중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취지에 맞게 세종솔로이스츠의 페스티벌은 현재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음악인들이 한자리에 만나 축제의 장을 연다. 2024년 힉엣눙크는 8월 16일부터 9월 2일까지 총 9개의 공연으로 진행되었고, 이중 ‘순수한 서정성’(Pure Lyricism)이라는 주제로 열린 8월 27일 공연에 다녀왔다.

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이 8월 14일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2024 HIC et NUNC(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은 다니엘 조 함부르크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 뉴시스

「 주목받는 세계적 아티스트 초대
세종솔로이스츠 뮤직 페스티벌
황수미와 용재 오닐 서정성 여운

‘달님, 잠깐 멈춰 보세요. 사랑하는 내 님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주세요.’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의 아리아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퍼져나갔다. 소프라노 황수미의 부드러운 질감의 목소리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물의 요정 루살카의 애틋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황수미는 잘 알려진 오페라 아리아 네 곡을 불렀는데, 각 아리아가 담고 있는 사랑 이야기가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애절하게, 아주 생생하게 표현되어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주었다. 그렇지만 더 큰 묘미는 각 노래의 언어가 주는 뉘앙스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리아는 이탈리아어(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체코어(드보르작의 ‘루살카’), 독일어(레하르의 ‘유쾌한 미망인’), 프랑스어(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가사였고, 황수미는 완벽한 발음으로 각 언어가 가진 색채감을 섬세하게 소화했다. 특히 ‘나를 취하게 하는 꿈속에서 살고 싶다’는 줄리엣의 노래는 프랑스어 특유의 어조와 달콤하게 어울렸다.

2부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무대였다. 용재 오닐은 그리스 출신의 미국 작곡가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아시아 초연하였다. 자연과 초자연의 감각을 다룬 인디언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이 협주곡은 9·11 테러의 충격과 대자연의 경외감을 다룬 한편의 장엄한 대서사시였다. 나지막하게 두드리는 팀파니와 가느다란 비올라 선율의 대화로 시작하여, 점점 더 강렬해지는 팀파니의 사운드와 함께 비올라는 현란한 음색의 향연을 펼쳤다. 데이비드 챈의 섬세한 지휘에 맞추어 타악기와 하프, 목관악기는 점점 더 자신의 음색을 강렬하게 드러냈고 비올라의 선율도 거칠어져, 마치 선사시대 제례 의식의 현장을 연상시켰다. 이후 매우 여린 다이내믹에서 등장하는 비올라 선율이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준 후, 곡의 후반부에 강렬한 음향의 소용돌이가 상승하면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였다. ‘검은 춤꾼, 검은 천둥’ ‘질문속에서’ ‘하늘의 중심’ ‘생명과 함께, 4가지 색으로 내려오는 번개’ 등 전체 4악장의 각 소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협주곡은 자연과 인간의 역동적 삶을 그려냈고, 그 중심에 용재 오닐이 있었다. 나지막하고 우울한 사운드의 비올라가 아니라 천둥과 번개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비올라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2024년 힉엣눙크는 8월 16일부터 9월 2일까지 총 9개의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이중 ‘순수한 서성’(PureLyricism)이라는 주제로 열린 8월27일 공연의 모습. 세종솔로이스츠


세종솔로이스츠는 ‘세계 최고 앙상블 중 하나’(CNN), ‘흠잡을 곳 없는 합일성을 보여주는 최고 수준의 현악 앙상블’(워싱턴 포스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음악 단체다. 단원들 하나하나의 역량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이번 페스티벌에는 데이비드 챈(뉴욕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악장), 프랭크 황(뉴욕 필하모닉 악장), 앤드류 완(몬트리올 심포니 악장), 다니엘 조(함부르크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악장) 등 화려한 연주진이 참여하여 주목받았다. 이 네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24일 공연에서 작곡가 김택수의 ‘네 대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with/out’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김택수는 세종솔리이스츠의 30주년 기념 위촉곡인 이 작품에서 현대 사회의 고독한 군중과 운명 공동체를 표현하여 주목받았다.

그 어느 해보다도 뜨거웠던 이번 여름, 세종솔로이스츠의 음악적 열정과 성취 또한 뜨거웠다. 이번에 한국 공연에 참여한 49명의 아티스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용재 오닐이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동요 ‘섬집 아기’를 즐겁게 떠올려 본다. 강렬하고 화려한 연주도 좋았지만 쓸쓸하고 고요한 비올라 선율로 마음의 위로를 선사한 ‘섬집 아기’ 선율이 아직도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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