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짐작이라도 해보려는 마음
지난주 한 편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생리대, 남자가 입어봤다’(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4일간 생리대를 하고 생활하면서 겪은 체험담을 담았다. 무더운 날씨에 토마토 주스를 부은 생리대를 붙이고 3시간마다 갈면서 ‘꿉꿉하고 짜증 나고 불편한’ 경험을 한 것이다. 저주파 기계를 아랫배에 부착하고 통증 경험도 했다. ‘한계가 있는 체험인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짐작하고 싶었다’고 한다.
기사를 보고 영화 ‘파일럿’이 떠올랐다. 영화는 잘 나가던 파일럿이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다발 같은 우리 승무원분들….” 그가 해고된 뒤 재취업을 위해 여장을 한다. 화장에 제모, 브래지어 하는 것도 고역이지만, 치근대는 남자 상사를 상대하는 게 훨씬 더 고되다.
그는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이 모습이 되어보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 같습니다.” 물론 그의 말은 진심일 테지만, 물음표가 하나 붙는다. 몇 달 그 모습이 되어보았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남 기자의 고민도 그 대목에 있었다. ‘어설프게 며칠 해보고…조회 수나 벌고 끝냈다간 자조할 거 같아서. 늘 조심스럽고 두렵다.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는 건.’ 그렇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박 겉핥기로 대충 하고는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도 좀 해봐서 아는데” 식이 된다면 그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이런 한계만 잊지 않는다면 ‘짐작이라도 해보려는’ 노력 자체는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남 기자는 생리대 체험을 하며 ‘엄마의 40년 월경’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27살에 날 낳기 위해서 엄마의 자궁은 10대일 때부터 힘들었겠구나.’ 그렇게 조심스럽게 짐작해보려는 마음들이 세상을 바꾼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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