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전] 홍명보에게 느껴지는 클린스만의 향기, 고립된 손흥민과 '이강인 해줘 축구'

김희준 기자 2024. 9. 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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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감독은 바뀌었는데 체급 차이로 승부를 보는 축구는 변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5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차전을 치러 팔레스타인과 0-0 무승부를 거뒀다.


홍 감독은 자신의 A매치 복귀전에서 최정예 멤버를 끌고 나왔다. 주민규가 최전방에 위치했고 손흥민, 이재성, 이강인이 공격을 지원했다. 황인범과 정우영이 중원을 구성했고 설영우, 김영권, 김민재, 황문기가 수비라인을 구축했으며 조현우가 골키퍼 장갑을 꼈다. 사실상 기존 선발 명단과 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전술 색채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같은 선발 명단이라도 감독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축구가 펼쳐지곤 한다. '축구는 감독 놀음'이라는 명제는 지금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숱하게 증명된 명제였다.


이강인(가운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그러나 이날 홍 감독은 기존 대표팀과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기존 대표팀의 나쁜 점을 답습하는 듯했다. 이날 중원에 나선 두 선수 중 정우영은 후방 빌드업 과정에서 센터백 사이로 내려가 '라볼피아나'를 형성했고, 황인범은 다소 오른쪽으로 빠져 황문기, 이강인을 지원하는 전략을 자주 구사했다. 미드필더 두 선수가 각각 후방과 측면으로 빠지니 자연스럽게 중원 수적 열세를 넘어 중앙 공동화가 이뤄졌다.


이날 한국 축구에서 비교적 괜찮았던 부분은 오른쪽 공격 부분전술이었다. 높게 올라서는 황문기와 중앙지향적인 이강인을 황인범이 보좌하는 모양새로 패스를 위한 삼각형이 만들어졌다. 이날 위협적인 찬스 대부분도 오른쪽 공격에서 나왔는데 전반 41분에는 이강인이 직접 페널티박스 안까지 돌파해 슈팅을 만들었고, 전반 43분에는 이강인의 패스를 페널티박스 안에서 받은 황인범이 감각적인 터치로 수비를 벗겨낸 뒤 시도한 슈팅이 옆그물을 때렸다.


그러나 왼쪽 공격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설영우나 손흥민의 개인 기량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손흥민이 왼쪽으로 넓게 벌리고 설영우가 그를 지원할 때, 패스워크를 원활하게 해줄 제3의 선수가 없었다. 이재성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마땅했지만, 전술적 지침이었는지 이재성은 중앙에 머무르며 경기에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손흥민(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후방에서도 답답한 경기력이 지속된 건 마찬가지였는데 정우영이 내려가 후방 빌드업에 관여하는 선수를 늘렸지만, 상기한 이유로 중원이 비어 마땅히 패스를 전개할 곳이 없었다. 한국은 경기 내내 측면으로 공을 돌리며 선수 개인 기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강인이 왼쪽이나 후방에 지원을 나가는 경우도 종종 등장했다. 이는 한국의 경기력이 좋지 않을 때 이강인이 자주 보이는 행동이다. 사실상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던 시절에도 이강인은 후방을 지원하고 2선 프리롤처럼 기능하곤 했다. 후반 28분에는 페널티아크 바로 바깥에서 본인이 얻어낸 프리킥을 직접 처리해 유효슈팅을 이끌어냈다.


결론적으로 홍 감독은 클린스만 감독 시절 축구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전술로 졸전을 펼쳤다. 왼쪽에서 고립된 손흥민과 전방위적으로 뛰어다닌 이강인이 이를 증명한다. 홍 감독이 전술을 입힐 시간이 부족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선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축구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홍 감독이 선수들의 '체급 차이'에 의존했던 건 울산HD 시절부터 지적되던 맹점이었는데, 이것이 대표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모양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서형권 기자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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