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새 엔진’ 방산…압도적 가성비·적기 납품에 고속 성장
최근 수년간 우리 방위 산업은 고성장세를 이어가면서 한국 경제 새 엔진으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 당시 방산 수출은 173억달러로 이스라엘 무기 수출액(110억달러 이상)을 넘어서며 글로벌 방산업계 화제에 올랐다. 첨단 무기를 앞세워 세계 방산 시장을 쥐락펴락해온 이스라엘 아성은 K방산에 ‘넘사벽’으로 여겨졌다. 방산업계에서는 “우리 방산 수출이 이스라엘을 앞지른 것은 과거에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던 사건”이라고 돌아봤다.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세계 ‘톱10’ 방산 수출국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수출 대상국도 2022년 폴란드 등 4개국에서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핀란드, 노르웨이 등 12개국으로 다변화됐다. 수출 무기 종류도 6개에서 12개로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외생 요인과 내생 요인이 맞물려 우리 방산이 작금의 고성장을 달성했다고 본다. 신냉전에 따른 세계 국방 예산 확충과 남북 대치 상황 등 외생 요인뿐 아니라 조선 등 제조업 역량, 가성비·납기일 준수 등 내생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군비 확장·제조업 역량 맞물려
우리 방위 산업은 크고 작은 부침을 거듭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선형 성장 궤적을 그려왔다. 해방 직후 초기에는 무기 자급이 불가능했던 만큼 미국 무기 체계 의존도가 컸다. 남북한 분단 뒤 북한 공비 청와대 습격 등 잇단 도발은 무기 국산화에 불을 지폈다. 핵무기 개발을 꿈꿨던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국방과학연구소 축소 등으로 우리 방위 산업은 한때 위기를 맞았으나 아웅산 폭발 테러 등 외부 환경 변화와 맞물려 고도화 기틀을 닦았다.
이후 크게 보면, 미국 무기를 모방 개발하며 ‘역행적 엔지니어링’에 주력했던 1970년대, 단순 모방을 넘어 학습을 통한 개량 개발에 나섰던 1980년대, 그리고 공동·독자 개발 첫발을 뗀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이후 독자 개발 무기를 수출하는 단계로 이어진다. 가령, 항공 분야의 경우 1970년대 전투기·헬기 기술 이전 생산을 바탕으로 고등훈련기(T-50), 한국형 기동헬기(수리온), 차세대 전투기(KF-X)까지 기술 고도화를 일궜다.
방위 산업 성장은 외생 변수와 내생 변수가 어우러진 합작품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외생 변수 관련 첫 번째 요인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촉발된 세계적인 군비 확장 기조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각국이 지출한 국방비는 2조200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9%가량 늘었다. 미국 외 나토 주요 동맹국이 2014년 러시아 크림반도 침공 이후 국방비를 32% 늘린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올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에 투자하는 유럽 국가는 2014년 2개국에서 현재 10개국으로 급격히 늘었다.
두 번째 요인은 ‘남북한 대치’라는 지정학적 환경이다. 핵무장한 120만 북한군과 맞서야 하는 특수한 안보 환경 아래 K방산은 육·해·공 모든 분야에서 꾸준한 성장 곡선을 그렸다. 특히 우리 군은 무기 수출 과정에서 레퍼런스 확보를 통한 협상력 증대에 기여도가 크다는 평가다. 신무기가 개발되면 한국군 53만명이 써본 뒤 각종 오류 등 교정을 거쳐 고도화된 버전이 수출 시장에 나온다.
내생 변수 관련 요인은 축적된 제조업 역량이다. 기계, 조선, 항공, 전자 등 연관성 높은 부문을 중심으로 제조업 역량을 축적한 결과, 작금의 수출 ‘금자탑’을 쌓았다는 분석이다. 축적된 제조업 역량은 가성비와 적기에 조달하는 납기 충족 등 K방산 특유의 강점으로 이어졌다. 한국산 무기는 선진국 제품 대비 가격이 25~50% 수준에 불과해 비용 대비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계약 상대 국가가 원하는 납기를 빠르게 맞추는 우리 특유의 ‘스피드’도 강점으로 꼽힌다. 수주 산업인 방위 산업 특성에 맞게 수요자 맞춤형 대응 역량이 뛰어난 것도 강점이다. 수출 국가 지정학적 상황은 물론 재정 상황, 산업 구조 등을 면밀히 분석한 뒤 계약 조건과 판매 방식을 재구성하는 역량이 뛰어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현지 기업과 공동 생산이나 기술 이전, 중고 무기 판매 등에도 강점을 갖췄다.
‘자주포’ 한화, ‘미사일’ LIG넥스원
전 세계 국방비 증액으로 국내 방산업계가 수출 보폭을 넓히는 가운데 전차, 자주포, 전투기 등 국내 방산업체 빅4의 간판 제품은 ‘큰손’ 국가를 상대로 착실히 수주 잔고를 쌓을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췄다.
방산업계 맏형 격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세계 시장에서 미는 주력 제품은 ‘K9 자주포’다. 성능 면에서는 세계 최고의 자주포로 불리는 독일의 PzH2000 자주포와 비교했을 때 t당 마력, 등판 능력, 최고 속도 등에서 우세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8월 폴란드로부터 3조원대 K9 자주포 수주를 성사시키면서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폴란드와 K9 자주포 308문에 대한 잔여 계약이 남아 있고 이집트에 K9 수출도 진행한다. 지난 7월에는 사업 영토를 루마니아까지 확장하며 루마니아와 1조3000억원 규모의 K9 자주포 54문 등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루마니아가 K9 자주포를 도입한 배경에는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이 영향을 줬다는 후문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K9 자주포의 수출 시장점유율은 52%에 달했다.
이로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를 도입한 국가는 루마니아를 포함해 총 10개국으로 늘어났다.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폴란드, 호주, 인도, 튀르키예, 이집트 등이 K9 자주포를 도입했다. 특히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국가가 K9을 적극 배치 중이다.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글로벌 자주포 시장 규모는 2022년 81억7000만달러(약 11조1300억원)에서 해마다 4% 이상 성장해 2032년 125억달러(약 17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K9은 향후 무인 자동장전 기능을 갖춘 A2, 유무인 복합 운영이 가능한 A3로 개량될 예정이다. 위경재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2분기에 본격적으로 수출 물량이 인도됐고 하반기에 K9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천무까지 인도가 지속될 것을 고려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실적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전투기 강자’로 손꼽힌다.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과 경공격기 FA-50 등이 주력 제품이다. 폴란드에서 수주한 FA-50PL과 말레이시아로 향할 FA-50M 물량이 매출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실적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KAI는 올 하반기에도 FA-50에 기대를 건다. 2025년부터 인도될 폴란드 계약 경전투기(FA-50PL, 39기), 2026년 납품 예정인 말레이시아 물량(FA-50M, 18기) 등이 넉넉해서다.
가격 경쟁력도 좋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 해·공군의 압박에 맞서 영공을 지켜야 하지만, 최신 기종 도입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과거에는 러시아산 미그-29나 수호이-27 계열 기종이 이런 수요를 채웠지만 지금은 전쟁 중인 러시아가 무기 수출 대신 자국 수요 충족을 우선시하는 데다 서방 제재로 부품 공급까지 어려워졌다.
결국 서방 전투기를 알아봐야 하지만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는 예산 사정으로 첨단 기종 구매가 어렵다. 구매·운영유지비가 저렴하면서도 나토 규격과 호환되는 기종이 필요한데, 이 같은 조건을 맞추는 전투기는 FA-50과 중고 그리펜 정도다.
FA-50은 현재 운용 중인 초음속 전투기 중 가장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펜은 유지·관리가 쉽고 운영 비용도 낮지만 최신형 그리펜E에 AESA 레이더 등을 추가한 가격이 대당 8500만달러(약 1200억원)에 달해 F-16V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KAI 관계자는 “폴란드와 말레이시아로 수출하는 FA-50PL과 FA-50M은 기존 플랫폼에 각 수요자 요구 사항을 맞춰나가는 연구개발 단계”라며 “아직 사업 초기지만 양산 돌입, 기체 전달 등으로 진척되면 현 수준보다 더 많은 매출과 수익이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전차 생산 기업인 현대로템은 세계 정상급 성능을 지닌 ‘K2 전차’를 앞세운다.
현대로템의 K2 전차는 노후된 M48전차를 대체하고 지상군 작전수행능력 강화를 위해 개발된 전차로 현재 3차 양산을 진행 중이다. 이 전차에 적용된 120㎜ 활강포는 현재 북한이 보유한 대다수 전차를 파괴할 만큼 강력한 화력을 자랑한다. 1500마력 고출력 엔진을 탑재해 포장도로에서는 시속 70㎞, 야지에서는 50㎞의 속도를 낼 수 있고, 실시간 궤도장력 제어장치를 통해 궤도 이탈을 방지하는 등 남다른 기동력도 확보했다. 또한 산지가 많고 험준한 지형에서도 다양한 사격 각도가 가능한 차체 자세제어 능력을 보유한 것도 특징이다.
여기에 독일 레오파르트 2A7, 미국 M1A2 에이브럼스 등 외국의 유명 전차에 비교해도 성능이 밀리지 않는 데다 납기는 훨씬 짧고 가성비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독일과 미국은 전차 생산을 사실상 중단했기 때문에 새로 생산하려면 공장 신설부터 최소 3년은 걸린다”며 “전차를 꾸준히 생산해온 우리는 1년 반이면 납품 가능하다”고 말했다.
K2 전차 가격은 레오파르트 2A7의 반값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동익 KB증권 애널리스트는 “K2 전차의 폴란드 2차 계약이 올 9월 폴란드 방산 전시회에서 최종 성사되지 않더라도 4분기 중 180대의 실행계약이 가능할 것”이라며 “2차 계약 금액은 1차(약 4조5000억원) 규모를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한국군 4차 양산분 150대와 루마니아와 300~500대 계약 가능성을 고려하면 4분기 신규 수주가 최대 10조원이 넘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LIG넥스원은 미사일 강자로 손꼽힌다. 대표 생산 무기로는 중거리지대공 유도무기인 ‘천궁Ⅱ’, 지대함 유도무기인 ‘비궁’, 대함유도탄방어유도탄인 ‘해궁’, 보병용 중거리 유도무기 ‘현궁’ 등이 있다. 특히 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 개발돼 LIG넥스원이 제작한 천궁Ⅱ는 미사일 요격용 유도탄에 재빨리 반응할 수 있도록 전방 날개 조종형 형상 설계·제어 기술과 연속 추력형 측추력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최대 사거리는 40㎞로, 고도 40㎞ 이하로 접근하는 적 항공기와 미사일 요격에 쓰인다. 1개 발사대에서 유도탄 최대 8기를 탑재해 연속 발사할 수 있고, 항공기 위협에 360도 전 방향 대응도 가능하다.
천궁Ⅱ를 비롯한 대규모 수출이 이뤄진 덕분에 LIG넥스원의 실적은 꾸준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 2022년 초 아랍에미리트(UAE), 올해 초 사우디아라비아와 각각 2조6000억원, 4조3000억원 규모 중거리지대공미사일(M-SAM) 천궁Ⅱ 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최근 2년 만에 7조원대 먹거리를 확보했다.
LIG넥스원은 미국, 루마니아, 이라크에도 비궁, 신궁, 천궁Ⅱ 등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안유동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천궁Ⅱ의 경우 고부가가치 무기체계인 만큼 한 번 도입하면 수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천궁Ⅱ에 관심을 보인 이라크에 수출할 경우 중동 3국(UAE·사우디·이라크)에 ‘천궁Ⅱ 벨트’가 형성되는 셈이라 오랫동안 실적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LIG넥스원은 미국 4족 보행 로봇 기업 ‘고스트로보틱스’ 인수를 확정하면서 새 먹거리 찾기에도 열심이다. LIG넥스원은 그동안 사업 포트폴리오가 미사일 등 유도무기 부문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에 미래 무기 산업의 핵심인 4족 보행 로봇 기업을 인수하면서 공중(미사일)과 육상(로봇)을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줄지 않는 세계 국방비…실적 ‘쑥쑥’
올 들어 방위 산업 관련 종목은 제대로 상승세를 탔다. 올 들어 지난 8월 28일까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가 2배 이상 오른 것을 비롯해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KAI), 현대로템, 한화시스템 주가도 선전 중이다.
무엇보다 수주 실적이 탄탄하다. 국내 주요 방위 산업 4개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넥스원·KAI)의 올 2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5949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해외 수주 성과가 올 2분기 실적부터 반영된 덕을 봤다. 올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2조7860억원, 영업이익 3588억원으로 1년 전보다 매출은 46%, 영업이익은 무려 357% 늘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디펜스솔루션(방산) 사업이 레일솔루션(철도차량·설비) 사업 매출을 사상 처음 앞질렀다. 올 2분기 매출 1조945억원, 영업이익 1128억원을 냈다. 1977년 창사 이후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KAI는 2분기 영업이익 74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배 가까이 급증했다. LIG넥스원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2% 늘었다. 수주잔고도 든든하다. 올 2분기 기준 주요 4개사 합산 수주잔고는 91조5559억원으로 100조원에 육박한다.
하반기 실적 전망도 밝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올해 매출 추정치는 11조2000억원으로 지난해(9조3000억원) 대비 2조원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영업이익은 연간 기준 처음 1조원을 넘기고 2026년에는 1조35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로템도 올해 영업이익 3900억원, 내년 5400억원으로 지난해(2100억원) 대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적으로 국방비 확장 기조가 이어지는 점도 호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토 회원국은 글로벌 군비 지출 확대를 주도한다. 아시아에서는 대만, 남중국해 등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에 대응해 중국, 일본, 싱가포르, 호주 등 주요국 국방비 지출이 가파른 증가세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K방산에 변수가 될 수 있지만, 두 후보 모두 국방비 지출 확대를 주장하고 있어 누가 되더라도 방산 수출 호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단 시각이 우세하다.
방위 산업 ETF도 순항 중이다. 한화자산운용이 굴리는 ‘PLUS K방산’ ETF 순자산은 최근 21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4월 순자산 1000억원 돌파 후 4개월여 만이다. 이 ETF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 국내 방위 산업 대표 기업에 투자한다. 연초 이후 수익률은 50%에 달한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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