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아킬레스건은…韓 방산 견제에 수주 꺾일 수도
한국 방위 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무리한 기술 이전, 방산 선진국의 견제, 부족한 금융 지원책 등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방산 강국으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방산 카르텔 견제로 수주 탈락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는 사항은 ‘퍼주기 식’ 계약이다. 한국 방산업체들은 무기를 수주할 때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 기술 전수·제휴·개발분담금 제공을 ‘통 크게’ 약속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 국력이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데다 국내 방산업체 브랜드 인지도가 낮다 보니 생긴 관례다. 핵심 기술을 전수받은 수입국이 한국 기술을 기반으로 무기를 자체 개발해 경쟁자가 되거나, 분담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문제도 수두룩하다.
2008년 K2 전차 수출을 위해 기술 제휴 협약을 맺은 튀르키예는 K2 전차 기술을 기반으로 ‘알타이 전차’를 제작, 전차 산업 경쟁국이 됐다.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의 경우 협력 개발국인 인도네시아에 끌려다니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16년 당시 KF-21 전체 개발비의 20%인 약 1조6000억원을 개발이 완료되는 2026년 6월까지 부담하고, 이에 상응하는 가치의 관련 기술을 이전받기로 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개발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고 버텨왔다. 정부는 결국 인도네시아가 내야 할 금액을 6000억원으로 줄이고, 기술 이전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으로 해결책을 마련했다.
심지어 올 2월에는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KF-21의 핵심 기술을 빼돌리려는 시도까지 적발됐다. 공동 개발국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선을 넘지만 계약 취소, 제재 등 정석적인 대응은 하지 못하고 있다. KF-21이 아직 글로벌 전투기 시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탓이다. KF-21 구입을 확정 지은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공군 수요만으로는 개발비·생산비 등을 감당하기 힘들다. 정부 입장에선 어떻게든 수요를 늘려야 해 고객이자 협력국인 인도네시아를 완전히 내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방산 선진국의 견제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국내 업체와 맞붙는 사업이 많은 유럽연합이 ‘한국 무기 배제’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동유럽 국가를 향해 “유럽의 자주국방을 위해 미국과 한국산 장비 대신 유럽산 군 장비를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고 말하며 ‘K방산 견제’의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실제로 국내 방산업체는 EU 일부 국가의 무기 수주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있다. 지난해 노르웨이 진출이 유력했던 현대로템의 K2는 독일 레오파르트 전차에 밀려 수주전에서 탈락했다. 영국 국방부는 차기 자주포 사업자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신 독일 KMW를 택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호주·동유럽 시장에서 한국 무기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유럽 업체가 위기감을 느낀 듯하다. 업체 로비는 물론, 외교·국방 관료까지 나서서 자국 무기 세일즈에 나설 정도로 적극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방위 산업에 필수적인 금융 지원 정책이 미비하다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무기 수출 사업은 정부 간 거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크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출하는 국가에서 금융 지원을 하는 방식이 통용된다. 주로 수입국이 수출국이 지정한 금융기관으로부터 일정 규모 돈을 빌려 무기 생산 기업에 지불하고, 자금을 대출해준 수출국 금융기관에 돈을 갚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한국은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금융 지원 역할을 맡는다. 기존 방산 수출은 계약 규모가 영세해 두 기관만으로 충분히 금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위 산업 수출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두 기관의 대출 한도를 넘어선 계약이 속출했다. 실제로 폴란드 무기 수출 사업의 경우, 수출입은행의 한도가 다 차면서 올해 계약이 취소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정부와 국회가 급히 수은법을 개정, 대출 한도를 늘려 급한 불은 껐다. 전면적인 금융 지원책 개선이 없다면 또다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방산업계의 주된 의견이다.
수출 금융 지원, 시장 개척 승부수
K방산을 옥죄는 아킬레스건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은 공동 연구개발(R&D), 신시장 개척, 파격적인 자금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퍼주기 식 판매’를 멈추기 위해서는 글로벌 공동 연구개발에 적극 참여하라는 조언이 나온다. 선진국들은 우방국과의 공동 개발 방식을 통해 글로벌 시장 선점과 ‘규모의 경제’ 확보, 정부 예산 절감, 첨단 기술 획득에 집중한다. 미국은 스텔스 전투기 F-35를 공동 개발할 때 무려 9개국을 참여시켰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경우 유럽 기업 간 공동 개발을 통해 개발비용과 위험을 분산한다. 또 공동으로 수출 마케팅도 추진해 일종의 ‘공동 브랜드화 전략’을 취한다. 인도네시아와 공동 개발을 추진하기는 했지만 잡음이 커진 만큼 신뢰가 쌓인 다른 우방국과의 공동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행 대출 제도를 서둘러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잖다. 지금은 방산 수출에 특화된 수출 금융 지원 제도가 없다. 수출입은행 대출과 무역보험공사 보증은 방산뿐 아니라 인프라 수출 등에 일괄 적용되는 기준이다. 이 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신용등급에 따라 금융 지원 규모가 확연히 갈린다. 국가신용등급이 비교적 높은 3등급 이상 국가에 대해서는 경쟁력 있는 금융 지원이 가능하나, 6등급 이하의 낮은 신용등급 국가는 선진국과는 달리 금융 지원 여부 자체가 불확실하다. 문제는 무기 수요가 높은 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등 국가는 OECD 신용등급이 낮다는 점이다.
“미국, 프랑스 등을 벤치마킹해 방산 수출에 특화된 맞춤형 수출 금융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방산 수출 금융에 대한 보증요율 할인, 30~50년의 장기 상환 기간 보장, 파이낸싱 한도의 유연성을 높이는 식의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사례처럼 향후 우리나라 자체 국가 신용등급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체계적이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현재 국내 방산 수주·수출액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지역 수출이다. 중동과 미국 시장 개척으로 유럽에 치우친 수주 비중을 낮추라는 것. 중동은 분쟁 지역으로 무기 수요가 높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는 미국 무기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한국산 무기 도입을 적극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을 넘어 향후에는 세계 무기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시장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산 무기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사례는 없다. 미국은 최근 들어 국방 조달 사업 등을 동맹국 국가에 개방하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안정효 삼일PwC 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국 국방 조달 시장은 연간 540조원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미 국방부 조달 규정, 원가 기준 등을 숙지하고 이를 준수하기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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