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율 스멀스멀…갭투자 다시 고개 들까?
직장인 정 모 씨(37)는 최근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 갭투자 권고를 수차례 받았다. 이 아파트 전용 59㎡ 매매 시세는 세입자 여부에 따라 9억~9억5000만원이었는데, 6억원짜리 전세를 낀 매물을 계약하면 3억원(취득세 등 제외)만으로 내 집 장만을 할 수 있다. 가뜩이나 매매 호가가 부쩍 오른 상태라 선뜻 매매 계약서를 쓰기 어려웠기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 비율) 상승세가 1년째 이어지자 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이른바 ‘갭투자’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아파트 매맷값과 전셋값 차이가 줄고 있어서다. 다만, 아직은 과거 집값 급등기의 ‘묻지마 갭투자’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게 부동산 시장 중론이다.
갭투자는 매매가와 전세가 차액으로 부동산을 소유하는 투자 방식이다. 집값 대비 전셋값이 높으면 높을수록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갭)는 작아진다. 주로 집값이 올라 시세차익이 날 거라고 기대될 때 갭투자 방식을 쓴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는 주택 시장이 침체돼 있기도 했거니와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 기피 현상마저 생겨버리면서 갭투자 열풍이 한동안 잠잠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주택 매수자의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1~7월 서울 주택 거래 중 전세금을 승계한 갭투자 비중은 39.4%로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28.4%보다 10%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동안 잠잠했던 갭투자 사례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전세 수요는 늘고 있는데 매물이 줄면서 전셋값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매맷값과 전셋값 격차가 줄어 갭투자하기 좋은 여건이 됐다는 얘기다.
아실에 따르면 1년 전 3만682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현재 2만6929건으로 12.3%나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8월 마지막 주 기준 전주 대비 0.17% 올랐고, 지난해 5월 넷째 주 이후 67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매맷값과 전셋값 차이가 줄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도 20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3.9%로, 표본 개편이 있었던 2022년 11월(53.9%) 이후 1년 8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금리 인상 여파로 전셋값이 급락하고 역전세난이 심화했던 지난해 4월 50.8%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이후 아파트값과 전셋값이 동반 상승하면서 전세가율이 다시 반등했다. 지난해 7월(50.9%) 이후 올 7월까지 1년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구별로는 강북구 전세가율이 62%로 가장 높고 중랑구(61.6%), 금천구(61.4%), 성북구(61%), 관악구(60.4%), 은평구(60.2%) 등의 전세가율이 60%를 넘었다. 고가 아파트가 많은 강남구(42.7%), 서초구(47.2%), 송파구(46.5%) 등 강남 3구의 전세가율이 50%를 밑도는 것과 비교된다.
전세가율이 급등한 이유는 매매 가격 상승폭보다 전세 가격 상승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KB부동산 시세를 보면 올 들어 7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이 오르내리면서 누적 0.02% 상승한 동안 전셋값은 3.79%나 뛰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봐도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값이 1.75% 상승한 데 비해 전셋값은 3.1% 올라 매매 가격보다 전셋값 상승폭이 컸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 5월 6억원을 넘어선 뒤 오름세를 지속하면서 8월에는 6억1585만원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이 뛰는 가운데 대단지에서도 전세 매물이 없어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전셋값 강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이달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42.9로, 지난해 8월 100을 넘긴 이후에도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전세수급지수는 0~200 사잇값으로 100보다 크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2022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늘 120을 웃돌던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같은 해 8월 108.9, 9월 93.3으로 떨어지더니 지난해 1월에는 45까지 추락했다. 이때는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역전세난’이 문제가 되던 시기다.
갭투자 거래 비중 10%대로 낮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택 시장에서는 향후 갭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7년 서울 아파트 전체 매매 중 14%가량을 차지했던 갭투자 비율은 2021년 43%까지 급증했다. 2020년 8월 이른바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한 ‘임대차 2법’ 시행으로 전셋값이 집값보다 더 크게 오르면서 갭투자가 폭증했고, 2021년 아파트값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전셋값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미국발 금리 인하 등으로 매수 심리가 회복된다면 갭투자가 다시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에서는 신축·준신축 아파트나 저가 아파트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갭투자가 활발한 모습이다. 아실에 따르면 올 1분기 서울에서 전세를 낀 매매 거래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송파구(47건), 성동구(38건), 노원구(34건), 강동구(32건), 마포구(30건) 등이다.
반면 일각에선 우려와 달리 갭투자 거래가 폭증하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간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이자 부담이 여전한 데다 최근 전세가율은 연초 이사철 등 계절적 요인 탓에 오른 것이라 수요가 줄면 다시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 한파로 매매가가 뒷받침되기도 어렵다. 황한솔 경제만랩 연구원은 “아파트 매매가는 고금리 영향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입주 물량 감소와 아파트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전셋값 상승에 따라 전세가율도 같이 오르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직은 과거 집값 급등기의 ‘묻지마 갭투자’ 현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아실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갭투자 비중은 2019년 6월 최고 27%에 달했으나, 지난해와 올해 초는 10%대 초반 내지 한 자릿수로 떨어져 있다.
게다가 최근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투기성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는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차례로 중단하고 나섰다. 무리한 전세자금대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대출 실행일 임대인(매수자) 소유권 이전 등을 제한해 주택을 매수하는 동시에 전세자금대출을 시행해 잔금을 치를 수 없는 환경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을 대출받아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를 쉽게 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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