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동1가 빌라 알음알음 거래되는데…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서울 지하철 2호선과 5호선 환승역인 영등포구청역 5번 출구로 나와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꽤 색다른 느낌의 동네가 나온다. 철물점이나 오래된 소규모 공장 등이 널려 있으면서도 한쪽에서는 빌라(다세대주택)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행정구역상 당산동1가에 해당하는 이곳은 용도지역상 준공업지역이다. 준공업지역은 환경오염이 적은 공장을 수용하는 곳이다. 일반공업지역과 달리 준공업지역에는 주거시설과 상업, 업무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준공업지역은 영등포구 당산동과 문래동 일대, 구로구 구로동, 금천구 가산동과 독산동, 강서구 등촌동, 성동구 성수동 등이다.
지금도 이런 곳은 준공업지역 특유의 풍경이 드러난다. 소규모 공업시설은 물론 상업, 업무시설, 주거용 건물이 섞여 있다.
다만 이미 화려한 상업·업무시설이 들어선 성수동과 또 다른 느낌이다. 당산동1가 일대는 10층 이상 고층 건물보다 5~8층 규모 중저층 빌라가 많다. 대부분 5~10년 전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에 지은 빌라다. 상당수는 준공연도가 2015~2020년으로 준공한 지 5년 남짓 됐다.
빌라 시장이 침체됐다고 하지만 당산동1가 일대 빌라는 알음알음 조용히, 꾸준히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7월 말에는 당산동1가 전용 29㎡ 빌라가 3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등기까지 마무리된 만큼 실제 거래가 이뤄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일대에서 보기 드문 고층 건물이며 주거환경이 나쁘지 않고 이곳이 워낙 대중교통이 좋아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거래 외에도 당산동1가에서 최근 빌라가 거래된 사례는 여럿 있다. 영등포구청역 도보 3분 거리 초역세권에 위치한 전용 73㎡ 빌라는 7월 말 5억3700만원에 거래됐다. 이 건물은 2003년 준공한 구축 빌라다. 지난 1년 동안 당산동1가에서 거래된 빌라 중 준공연도가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한다.
주목할 점은 대지지분이다. 해당 매물 대지지분은 38.3㎡로 평수(3.3㎡)로 환산하면 12평에 가깝다. 건물 가격이 아예 없다고 가정했을 때 순수 대지지분 가격은 3.3㎡당 4500만원 수준이다. 당산동1가 준공업지역 땅값은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3.3㎡당 5000만원 전후로 시세가 형성됐다.
당산동1가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빌라 대지지분과 나지 상태 땅값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진 않지만 일부 투자자는 대지지분과 땅값을 비교하면서 빌라 매수를 결정하기도 한다”며 “ ‘126% 룰’ 영향으로 빌라 시장이 여전히 침체됐지만 최근에는 거주 목적으로 빌라를 매수하는 실소유자가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정부가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위한 여러 조치를 내놓으면서 전세사기 여파를 겪고 있는 빌라 시장이 회복할지 관심이 쏠린다.
1세대 1주택 특례 적용 눈길
8월 초 정부는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한 채만으로도 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비아파트 6년 단기 등록임대제도’를 도입한다. 1주택자가 소형주택을 구입하고 6년 단기임대를 등록하면 1세대 1주택 특례를 받을 수 있다.
등록임대주택(장기일반·공공지원)에 대한 취득세·재산세 감면 일몰기한도 올해 말에서 2027년 12월로 연장한다. 공동주택(신축·최초분양)·오피스텔(최초분양) 전용 60㎡ 이하는 취득세를 면제하고 60~85㎡는 50% 감면한다. 재산세 역시 공동주택·오피스텔·다가구 전용 40㎡ 이하는 면제, 40㎡ 초과~60㎡ 이하는 75% 감면, 60㎡ 초과~85㎡ 이하는 50% 감면하기로 했다.
생애 최초로 소형주택을 구입하면 신축, 구축 상관없이 임대등록을 하지 않아도 취득세를 감면해준다. 전용 60㎡ 이하, 취득가격 3억원(수도권 6억원) 이하 다가구, 연립·다세대, 도시형생활주택이 대상이다.
또 빌라 등 비아파트 구입자가 청약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청약 시 무주택으로 인정하는 비아파트 범위를 확대한다. 기존 면적 60㎡ 이하, 수도권 1억6000만원, 지방 1억원 이하(공시가격)에서 면적 85㎡ 이하, 가격은 수도권 5억원, 지방 3억원 이하로 대상이 늘어난다. 신규로 빌라를 구입하는 사람뿐 아니라 기존 빌라 보유자도 무주택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정부 대책은 빌라 수요 회복과 공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장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126% 룰’ 영향으로 다주택자 등 투자자가 빌라를 매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같은 대책만으로 빌라 시장이 살아나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현재 빌라 시장은 전세사기 여파로 정부가 보증보험 가입 한도를 공시가격의 126%로 통제하는 이른바 ‘126% 룰’을 적용하면서 직격탄을 입고 있다. 전세보증금 한도가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제한되면서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역전세난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지난 1년 동안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빌라 시장에는 다주택자나 투자자 발길이 뚝 끊겼다. 아파트와 달리 지금까지 빌라는 실수요자보다 투자 수요가 훨씬 많았다. 126% 룰 개정 등의 변화 없이는 빌라 시장이 살아나기는 요원하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반론도 제기한다. ‘126% 룰’ 영향으로 역설적으로 빌라 시장은 투자자에서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한국부동산원이 8월 발표한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연립·다세대주택 거래량은 5768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4.7% 늘어났다. 특히 서울은 2028건이 거래돼 1년 전 같은 달보다 25.3% 증가했다.
‘126% 룰’ 영향으로 투자자가 빌라를 쉽게 매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수요자만으로 거래량이 증가하고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때문에 이번 대책만으로 빌라 시장이 이전처럼 활성화되기는 어렵겠지만 빌라 매입을 고민하는 실수요자에게 나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수요자 빌라 투자법은?
대지지분·입지·전세가율 고려해야
무주택자나 실제 거주를 목적으로 빌라 구입을 고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점을 살펴봐야 할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다. 여유가 있다면 무조건 땅값이 비싼 지역 내 빌라를 구입하는 것이 낫다.
한국부동산원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은 빌라 거래량이 살아나고 있지만 지방은 여전히 거래량이 감소하고 있다. 결국 빌라를 매수하더라도 서울, 특히 서울 내에서도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지역에 있는 빌라를 구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땅값 파악이 여의치 않다면 용도지역별로 구분해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상당수 빌라는 용도지역상 ‘제2종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당산동이나 문래동, 성수동처럼 준공업지역 내 빌라를 구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준공업지역 땅값이 제2종일반주거지역보다 반드시 비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준공업지역은 제2종일반주거지역과 비교해 허용 용적률이 높은 만큼 이 부분을 감안해 매수 지역을 선정하는 것도 고려해볼 방법이다.
최근 서울시가 ‘2030 서울특별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재정비안을 통해 준공업지역 용적률을 법정 최대 용적률인 400%까지 적용받을 수 있게 한 점도 호재다. 성수동 같은 경우 준공업지역 빌라를 개발업자들이 통째로 매입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지금까지 빌라 시장은 아파트와 달리 철저히 다주택자 등 투자자 중심 시장이었다. 요즘 빌라 매수자를 보면 대부분 투자자보다 실제 거주를 위해 비싼 아파트 대신 눈을 돌려 매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일부 수요자는 10~20년 후를 내다보고 좋은 입지에 토지지분을 갖겠다는 생각으로 빌라를 고려하기도 한다.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특히 더 주변 땅값을 함께 고려해야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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