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 중국과 북한의 아쉬운 역사

최경식 2024. 9. 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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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선교 관련 분야를 살피다 보면 그 실상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랬다면 현재 탈북자들과 선교사들이 중국 내에서 겪는 어려움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역사는 돌이킬 수 없게 흘러갔지만 그래도 현재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교회 전문가들은 중국 내 기독교 인구가 2050년에 이르면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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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가 중국 통치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중국 탄생했을 수도
아쉬움의 역사 거두고 희망의 역사로
장제스(오른쪽)와 쑹메이링. 장제스는 부인인 쑹메이링의 권유를 받아들여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


통일선교 관련 분야를 살피다 보면 그 실상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탈북자들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탈출에 실패하면 북한 보위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거나 아오지 탄광 등에 가서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을 해야 한다. 설령 탈출에 성공한다 해도 어려움은 뒤따른다. 중국 공안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지하로 들어가 쥐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 삶의 기본 조건인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만약 공안에 체포되면 곧바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한다.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선교사들도 매우 힘든 환경 속에서 목숨 건 사역을 한다. 사명감에 기반해 자발적으로 사역에 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먹먹해지고 무언가 도움을 줄 방안을 구상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중국과 북한이 지금과 다른 국가였다면 어땠을까.’ 현재 두 국가는 종교의 자유가 일체 보장되지 않는 억압적인 체제를 갖고 있다.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이 바닥에 깔려 있고, 마오쩌둥과 김일성에 대한 오래된 숭배 사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모습을 갖지 않을 수도 있었던 아쉬운 순간이 있었다.

중국의 경우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국공 내전’을 통해 대륙을 차지하기 전, 장제스의 국민당이 압도적 대세를 형성했다. 장제스는 원래 유학에 뜻을 뒀지만 자신이 극진히 사랑하는 부인 쑹메이링을 만나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쑹메이링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녀는 장제스에게 신앙을 가질 것을 강력히 권고했고 이에 감화를 받은 장제스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그동안 즐겼던 술과 담배도 완전히 끊었다.

‘중일전쟁’이라는 암담한 고난은 갓 걸음마를 뗀 장제스의 신앙을 급성장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는 날마다 국가를 위해 기도를 드렸고 신앙과 관련된 내용을 일기에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장제스는 가장 먼저 무릎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고 시편 말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악인을 멸하시고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도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진실이다.”

장제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후 중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싶다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고 하지만 장제스의 국민당이 중국을 통치했다면 미국에 버금가는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도 해볼 수 있다. 그랬다면 현재 탈북자들과 선교사들이 중국 내에서 겪는 어려움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북한도 평양 대부흥 이래 기독교가 널리 확산됐다.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던 북한의 교세는 1945년 해방 후 해당 지역에 김일성과 공산당이 들어오면서 풍비박산이 났다. 미국이 불필요하게 대일전에 소련의 참전을 적극 독려하지만 않았어도, 지금과는 다른 역사가 쓰였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거둘 수 없다.

역사는 돌이킬 수 없게 흘러갔지만 그래도 현재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중국에선 기독교 인구가 급성장해 왔다. 중국 정부가 공인하지 않은 지하 교회 및 가정 교회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중국 교회 전문가들은 중국 내 기독교 인구가 2050년에 이르면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은 바 있다. 비록 시진핑 정부가 강력히 탄압해 일시적 부침을 겪고 있지만 커다란 흐름은 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나간 역사는 아쉬움의 역사였지만 앞으로의 역사는 희망의 역사가 되길 소망해본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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