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에 휘말린 일본제철 US스틸 인수…"바이든, ‘불허’ 방침"

김현예, 강태화 2024. 9. 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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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을 대표하는 철강회사의 인수·합병(M&A)으로 관심을 끌었던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계획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뉴욕타임스(NYT) 등은 4일(현지시각) 복수의 익명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불허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149억 달러(약 19조9000억원)에 US스틸를 인수하려는 일본제철의 계획은 현재 미국 규제 당국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의를 받고 있다. 절차상 바이든 대통령은 이 위원회 권고를 근거로 불허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백악관은 해당 보도가 전해지자 “아직 대통령에게 CFIUS의 권고안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WP 등의 보도에 이어 이날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CFIUS가 지난달 31일 일본제철에 서한을 보내 이번 M&A가 국가 안보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 2위 규모인 US스틸이 일본제철에 인수될 경우 자동차 산업 등 다양한 산업의 근간이 되는 철강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논리다. 관련 보도에 시장은 차갑게 반응했다. US스틸 주가는 전일 대비 17.5% 하락한 채 시장을 마감했다.


미국 대선 앞두고 정치 쟁점화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노동절을 맞아 유세에 나선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오른쪽)이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올해로 123년 역사의 US스틸은 ‘철강왕’으로 불리는 앤드루 카네기와 존 피어몬트 모건이 설립한 회사다. 한때 세계 최대 철강회사로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었으나, 20세기 후반들어 한국·중국·일본 등의 철강회사들이 약진하며 경영 악화에 시달려왔다.

지난해 12월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철강 생산량이 세계 4위인 일본제철이 세계 24위 규모의 생산량을 보유한 US스틸을 인수해 세계 3위 규모로 몸집을 불리겠다는 구상이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US스틸은 인수를 반겼다. 주주들은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졌지만, 전미철강노동조합(USW) 등 노조는 반대에 나섰다.

US스틸 매각은 곧 대선 이슈가 됐다. 민주·공화당 대선 후보 모두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노동자 표심을 고려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한때 성업했던 미국 제조업의 근거지였던 펜실베이니아는 올 11월 미국 대선의 향방을 결정할 경합주(swing state) 중에서도 핵심 격전지로 꼽힌다.

대통령 재임 당시 ‘보호 무역주의’를 앞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일본제철의 인수 발표 한 달 뒤인 지난 1월 “재집권하면 인수를 막겠다”고 공언했다. 대선 도전을 준비하던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4월 “미국 노동자에게 내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인수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일 동맹 강화에 주력했지만, 미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조차 미국 내 ‘표심’을 인식한 발언을 내놓았다.

바이든의 대선 후보 사퇴 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노동절인 지난 2일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US스틸 거점지역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를 찾아 “US스틸은 미국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으로 남아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공개 선언했다. WP는 “미국의 동맹인 일본 기업이 참여한 거래를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은 해리스가 노조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산업화를 상징하는 US스틸의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공장. AP=연합뉴스


미·일 외교 갈등 불씨 되나


해리스 부통령의 발언 직후 일본제철은 “미국 내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겠다”며 “US스틸을 미국기업으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US스틸을 인수하더라도 이사회 대부분을 미국 시민권자로 하고, 3명의 사외이사 역시 미국 시민권자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해고·공장폐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내놨다.

그럼에도 ‘인수 불허 발표’ 임박 보도가 나오자 일본제철은 “미국 정부가 법에 따라 정당하게 심사할 것으로 강력히 믿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US스틸은 반발하고 있다. 일본제철을 빼면 딱히 다른 인수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논란에도 함구하던 데이비드 버릿 US스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에 “매각 계획이 무산되면 피츠버그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제철소를 폐쇄하고 본사도 피츠버그 밖으로 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미·일간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인수가 무산되면 일본제철은 5억6500만 달러(약 7550억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US스틸 인수는 일본제철에 있어 중요한 성장 전략으로, 당국 승인을 얻지 못한 경우 새 성장전략 등이 요구된다”는 노무라 증권 보고서를 인용 보도했다. 인수 무산이 일본제철에도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일경제협의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인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에 많은 우려가 있다”면서 공정한 심사를 요구했다.

도쿄ㆍ워싱턴=김현예ㆍ강태화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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