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여성 강조한 '우씨왕후', 잘못하다 '벗방' 될라

이진민 2024. 9. 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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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우씨왕후>

[이진민 기자]

사극 드라마에 남자들만 나오는 건 역사 고증일까, 아니면 창작자의 게으른 관성일까. 제 손으로 역사를 쓰고, 그래서 그 안에 존재하는 건 남자들뿐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과거에도 여성들은 존재했다. 그들을 발굴하고 현재와 조우하게 하는 것은 여성의 역사를 조명하는 방식이다. 신윤복을 여성으로 상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나 여성들이 팽팽하게 정치 싸움을 벌였던 드라마 <선덕여왕>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우씨왕후>를 기다렸다. 갑작스러운 왕의 죽음으로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과 다섯 부족의 표적이 된 우씨왕후의 투쟁기를 그린 작품으로 주인공인 '우희'를 비롯하여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나온다. 하지만 파트 1이 공개된 지금, 드라마에 따라붙은 수식어는 '노출 논란'이다. 회차마다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의 불필요한 노출 장면에 드라마의 정체성이 퇴색한다는 반응이다.

여성 캐릭터의 노출
 드라마 장면 갈무리
ⓒ 티빙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우씨왕후>는 4부작씩, 총 2번에 걸쳐 공개될 예정이다. 현재 공개된 파트 1에서는 태왕인 고남무(지창욱 분)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며 24시간 이내에 황급히 형사취수혼(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함께 사는 혼인 제도)을 해야 하는 우씨왕후(전종서 분)와 이를 둘러싼 왕자, 부족들의 싸움이 담겨있다. 우희(우씨왕후)가 취수혼을 위해 고행길에 나선 3화를 제외하면 매화마다 빠짐없이 노출 장면이 나왔다.

1화에선 상반신을 노출한 채 안대를 착용한 여성들이 고남무의 몸을 씻기는 장면이 나왔다. 2화에선 우희와 고남무가 성적 관계를 갖는 장면과 우순(정유미 분)이 마약에 취해 여성 대제사와 성관계를 갖고 뒤이어 고남무와 다시 잠자리하는 모습이 교차해 담겼다.

핵심 캐릭터가 아닌 이들이 등장할 때도 노출 장면은 빠지지 않는다. 2화에서 우희를 보필할 만한 마부를 찾는 장면에선 캐릭터들이 도박하다가 서로를 추격하는 장면이 나왔다. 도박장에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성들이 시중을 들었고, 추격전을 벌이다 우연히 들어간 곳은 유곽촌이었다. 이처럼 줄거리와 무관한 장면에서도 노출 있는 여성 캐릭터들을 등장시킨다.

4화에서는 졸본의 대가인 연비(박보경 분)가 성관계하면서 부하들과 싸움을 벌인다. 해당 회차에서는 남성 캐릭터의 폭력성을 드러내고자 노출 장면을 잔혹하게 연출했다. 셋째 왕자 고발기(이수혁 분)가 왕후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갖다가 끝내 칼로 찔러 죽인 것이다. 카메라 앵글은 상반신을 노출한 채 칼에 찔린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담는다. 남성 캐릭터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죽은 여성 캐릭터는 배경처럼 나온다.

호위무사로 등장한 여성 캐릭터를 제외하면 <우씨왕후> 속 핵심적인 인물들은 한 번씩 노출을 감행했다. 이는 여성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연출 장치가 '노출' 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씨왕후와 태왕의 정서적 관계를 설명할 때도, 우순의 어리석음을 보여줄 때도, 연비의 지도자성을 암시할 때도 모두 '노출' 장면을 등장시켰다. 여성 캐릭터들이 가진 입체성과 주체성을 보여주기보단 그들을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으로 일단락하거나 자극성에만 쫓겼다는 것이다.

특히 <우씨왕후>는 여성 원톱 드라마로 '우희'가 모든 서사의 주춧돌이다. 그래서 작품은 어렸을 때부터 화살을 자유자재로 쏘는 어린 우희부터 왕후가 되어 국상과 전쟁을 논하고, 무위로 사냥꾼들을 제압하는 성인 우희까지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우희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의 노출 장면과 대조되며 궁극적으로 작품 속 여성 캐릭터의 쓰임을 되묻게 한다. 진정으로 여성 캐릭터가 지닌 힘과 기책에 대한 드라마라면 왜 이토록 여성들을 벗기려 애쓰는가.

불필요한 노출에 시청자가 질린 이유
 <우씨왕후> 메인포스터
ⓒ TVING
여성 배우의 노출이 드라마의 흥행 요소 내지 홍보 전략으로 쓰인 건 관례로 자리 잡았지만, 자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촬영장에서 노출신을 강요받았다거나 성공하기 위해 억지로 찍었다는 여성 배우들의 말이 하나둘 떠오르며 대중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더는 여성의 노출을 드라마 혹은 스타의 '뜨기 위한' 발판으로 삼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자극만 쫓는 노출 장면이 극의 흐름을 끊는다는 의견도 있다. <우씨왕후>에서도 1화 고남무의 목욕 장면이나 2화 우순의 성관계 장면이 2~3분에 걸쳐 방영될 만큼 비중을 차지했는데 사실상 핵심적인 줄거리와 관계가 없다. 이를 두고 "노출신이계속 나와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렇게까지 길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등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여성 캐릭터를 구축해야 할까. 그가 가진 욕망, 겹겹이 쌓아갈 선택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노출'이 아닌 다른 카드가 필요하다. 특히 <우씨왕후>는 지난 3월 방영한 <고려 거란 전쟁>과 달리 여성 서사를 토대로 삼았기에 새로운 사극 드라마로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과연 <우씨왕후>는 <선덕여왕>을 뒤이어 시청자들에게 기억될 여성 사극 드라마의 길을 걷게 될까, 아니면 '뜬금' 노출신으로 끝맺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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