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군 주둔 원하는 필라델피 회랑…땅굴 3000개, 로켓도 오간다
길이 14.5km, 너비 100m의 얇고 길쭉한 통로의 미래를 두고 가자지구 전쟁의 포화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가 다투는 필라델피 회랑(Philadelphi Corridor) 얘기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협상 중인 가자지구 휴전안은 이스라엘군이 순차적으로 철수하면 그에 맞춰 하마스 역시 이스라엘 인질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설정돼있다. 그런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가자지구 남쪽과 이집트 북부 국경의 완충지대인 필라델피 회랑에 이스라엘군을 계속 주둔하겠다고 주장하며 협상이 어그러지고 있다.
네탸냐후 총리는 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인질 석방을 원한다면 필라델피 회랑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며 “필라델피 회랑을 통해 가자(의 하마스)가 재무장될 수 있다면 가자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하마스는 이튿날 “군 주둔을 주장하며 협상을 방해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가자지구를 점령한 후 2005년 병력을 철수할 때까지 가자지구 측 필라델피 회랑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 그 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제하다가 2007년 무장봉기로 하마스에 이 지역의 주도권이 넘어갔다. 이집트도 일부 통제권을 행사한다.
필라델피 회랑이란 명칭은 이스라엘군이 임의로 붙인 암호명에서 유래한다. 원래 거주 지역이었으나, 이스라엘 측은 인근 마을과 난민촌에 지어진 가옥 수천 채를 헐고 철조망과 장벽을 쌓아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막았다.
그러나 문제는 땅 밑이었다. 필라델피 회랑 지하로 미로처럼 얽힌 땅굴 통로가 건설되면서 땅굴을 통해 이집트와 가자지구 사이에 왕래가 이뤄졌다. 사람과 가축이 오가는 건 물론이고 카츄샤 로켓, 유탄발사기, 자동소총, 폭탄 등이 땅굴을 통해 가자로 들어왔다. 땅굴 수는 약 600개로 추정되는데, 일부 언론은 3000개에 달한다고 보도한 적도 있다. 땅굴을 파는 전문업자들도 성업 중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기겁하는 이유는 이 땅굴을 통해 하마스가 수차례 재기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2008년, 2012년, 2014년, 2021년 각각 무력 충돌을 벌였다. 이스라엘의 공격에도 하마스가 금방 재무장을 할 수 있었던 건 필라델피 회랑의 땅굴을 통한 무기 밀수 때문이라는 이스라엘 측 주장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스라엘은 필라델피 회랑의 땅굴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구상했다. 한때는 지중해의 바닷물을 끌어와 땅굴을 침수시킨다는 수공(水攻)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벙커버스터로 타격하거나 지하벽을 건설한다는 구상도 나왔다.
물론 군이 주둔한다고 해도 회랑을 이스라엘의 뜻대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2005년 필라델피 회랑에서 철군한 이유 중 하나는 회랑의 폭이 너무 좁아서였다. 좁은 통로를 오가는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측의 표적이 되기 딱 좋았던 것이다.
네타냐후 내각의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도 필라델피 회랑에 군이 주둔하는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 갈란트 장관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네타냐후 총리를 “(하마스 지도자) 신와르의 지시를 받는 자”라고 비난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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